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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성상의 그 노래 그 사연]‘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민중가요로 유명한 국민애창곡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1991년 노찾사 멤버 안치환 취입…노랫말 원작자는 박영근 시인
왕성상 언론인/가수 | 승인 2020.05.26 13:24

[여성소비자신문]‘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거센 바람이 불어와서 어머님의 눈물이 가슴 속에 사무쳐오는 갈라진 이 세상에

민중의 넋이 주인 되는 참 세상 자유 위하여 시퍼렇게 쑥물 들어도 강물 저어 가리라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샛바람에 떨지 마라

창살 아래 네가 묶인 곳 살아서 만나리라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샛바람에 떨지 마라

창살 아래 네가 묶인 곳 살아서 만나리라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창살 아래 네가 묶인 곳 살아서 만나리라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샛바람에 떨지 마라

창살 아래 네가 묶인 곳 살아서 만나리라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샛바람에 떨지 마라

창살 아래 네가 묶인 곳 살아서 만나리라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는 주요 행사, 시위·집회 때 자주 불리는 국민애창곡이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약칭 노찾사) 멤버 안치환이 부른 민주화운동 계열의 민중가요로도 유명하다. 노찾사가 1997년 다시 부르고 MC스나이퍼(본명 김정유)가 2002년 리메이크해 불렀다.

이 노래는 안치환이 민중시인 김남주와 박노해의 시집을 탐독하던 1986~1987년 연세대 재학시절 만들었다. 총학생회장에 출마한 어느 후보가 선거운동에 쓸 노래를 부탁하자 요청을 들어준 것이다.

운동권 노래로선 처음 공연윤리위원회 검열을 무삭제 통과한 게 이채롭다. 그렇게 태어난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가 처음부터 인기를 끈 노래는 아니었다. 1987년 초 만들어졌을 땐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그러다 6공화국이 들어서면서 표현의 자유가 일부 보장되자 정식음반 모양을 갖췄다. 운동권노래임에도 방송인기가요순위에 3위까지 오르며 민초들의 막힌 가슴을 뚫어줬다. 1989년 한해 이 노래 음반이 20만장 가까이 팔렸다.

“노래가사 저작자는 박영근 시인”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노랫말은 시 구절이다. 그래서 ‘작사(作詞)’가 아니라 ‘작시(作詩)’란 표현이 옳다. 시를 가사로 썼다는 얘기다. 노랫말 원작자는 노동시인 박영근(1958~2006년). 박 시인이 지은 ‘솔아 솔아 푸른 솔아’ 시가 노랫말이 됐다.

4분의 4박자 슬로우 리듬으로 나가는 이 노래는 한동안 음악인 안치환씨가 작사․작곡하고 노래까지 부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작곡은 그가 한 것으로 돼있지만 작사는 박 시인이 한 것으로 고쳐졌다. 2009년 5월 박 시인 부인(성효숙 씨)이 사실규명에 나서면서다.

성씨는 “민중가요를 넘어 국민애창곡이 된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시(詩)의 저작자가 남편 박영근 시인이란 사실을 알려 달라”며 언론에 호소했다. 그는 2009년 5월 11일로 박 시인 타계 3주기를 맞아 서울 광화문에서 기자들과 만나 그처럼 주문했다.

그 자리엔 소설가 겸 문학평론가 김이구씨, 박영근 시선집 ‘솔아 푸른 솔아’(백무산·김선우 엮음)를 낸 강출판사 대표 정홍수 문학평론가 등이 함께 했다.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노래는 1984년에 나온 박영근의 시집 ‘취업 공고판 앞에서’(청사)에 실린 ‘솔아 푸른 솔아-백제 6’과 ‘고향의 말 4’를 비롯한 시들을 손질해 만든 가사에 안씨가 곡을 붙인 것이다. 그럼에도 1989년 노찾사 2집 음반 첫 곡으로 담길 때 ‘노찾사’이름으로 발표됐을 뿐 작사·작곡자 이름은 공개되지 않았다.

그래서 1994년 안씨의 1+2집 음반이 나왔을 때부터 ‘안치환 작사․작곡’으로 통용되기 시작했다. 1998년엔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도 ‘안치환 작사’로 등록됐다. 2009년 가을 동료문인들이 만난 자리에서 “이 노래 원저작자를 찾아주자”는 얘기가 나와 안 씨 쪽에 전해졌다.

이에 안씨는 박 시인 유족에게 “공동저작으로 하자”고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안씨 쪽은 박 시인 유족들 동의가 없자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공동저작자로 등록해놨다는 게 성 씨의 설명이었다.

노래를 부른 안치환은 1965년 11월 화성시 우정읍 매향리에서 태어난 ‘386가수’다. 남강고, 연세대 사회사업학과(1984학번)를 졸업한 그는 1984년 언더그라운드 라이브클럽에서 포크록 가수로 노래 삶을 열었다.

1989년 5월부터는 노찾사멤버로 뛰었다. 이어 1990년 1집 음반 ‘안치환 첫 번째 노래모음’으로 가요계에 공식데뷔 했다. 1999년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대중예술부문에서 상을 받았다. 대표곡으론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내가 만일’, ‘자유’, ‘인생은 나에게 술 한 잔 사주지 않았다’, ‘처음처럼’, ‘광야에서’, ‘우리가 어느 별에서’, ‘소금인형’, ‘귀뚜라미’, ‘당당하게’, ‘수풀을 헤치며’, ‘평행선’, ‘위하여’ 등이 있다. 올해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새 디지털 싱글 음반 ‘봄이 오면’을 냈다. 남경필 전 경기도지사와는 연세대 같은 학과 동기다.

김대중 전 대통령 장례식 때 추모곡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는 2009년 8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례식 추모곡으로도 불렸다. 그해 5월 노무현 전 대통령 장례식 땐 안치환이 양희은, YB(윤도현 밴드)과 추모노래를 불러 눈길을 모았다. 2009년 5월 29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노제 때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노래로 달랜 것이다.

안치환은 ‘마른 잎 다시 살아나’와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을 불렀다. 양희은은 노 전 대통령이 2002년 대선 때 홍보영상에서 기타를 치며 부른 ‘상록수’를, YB는 ‘후회 없어’ 등을 불렀다. 전날 새벽 김해 봉하마을 합동분향소에 조문을 다녀온 안씨 쪽은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노래를 요청받았으나 안치환 씨가 고심 끝에 2곡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안씨가 노 전 대통령의 삶과 닮은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을 오랜만에 부르며 눈물이 나 못 부르겠다 말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그 노래 가사 끝 대목은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 나 이미 떠났다고, 흙먼지 재를 쓰고 머리 풀고 땅을 치며, 나 이미 큰 강 건너 떠났다고 대답하라’로 돼있다.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에서 나오는 솔은 우리 겨레의 삶과 함께 한 소나무다. 모진 바람, 서리에도 한국인의 꿋꿋한 기상을 말해주는 선비정신의 상징나무다. 구과목 소나무과 식물로 우리나라와 일본이 원산지다.

특히 십장생(十長生)의 하나로 나무 중의 으뜸이자 절개를 지닌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늘 푸른빛으로 청춘과 온갖 역경에서도 굽히지 않는 기상, 오래 산다는 뜻으로 한국화의 소재로 많은 작품들이 전해지고 있다.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 일세’로 나가는 애국가 2절에도 소나무가 등장한다.

필자 왕성상은 마산중·고, 중앙대 신문방송학과, 신문방송대학원을 나와 1979년 한국경제신문 기자를 시작으로 언론계에 몸담고 있다. 특히 ‘남인수가요제’ 우수상을 받아 한국연예협회 가수분과위원회 등록(865호), ‘이별 없는 마산항’ 등을 취입했다. ‘기자가수’로 노래관련 강의와 무대에 서면서 글을 쓰고 있다. 20년 가까이 전국을 다니며 노래봉사에 열심이다.

 


 

왕성상 언론인/가수  wss404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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