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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갑하 시인의 시조사랑 캠페인 14]김대중 '옥중 단시'“우리 민족시 시조를 읽고 쓰자!”
권갑하 도농협동연수원장/문화콘텐츠학박사 | 승인 2020.05.15 16:19

[여성소비자신문]옥중 단시

-김대중-

면회실 마루 위에 세 자식이 큰절하며
새해와 생일 하례 보는 이 애끓는다
아내여 서러워마라 이 자식들이 있잖소.

이 몸이 사는 뜻을 뉘라서 묻는다면
우리가 살아온 서러운 그 세월을
후손에 떠넘겨 주는 못난 조상 아니고저.

둥실 뜬 저 구름아 너를 빌려 잠시 돌자
강산도 보고 싶고 겨레도 찾고 싶다
생시에 아니 되겠으면 꿈이라면 어떨까.

-하략-
1982년 청주교도소에서 지은 모두 11수의 연시조인데, 4~11수까지는 생략했다.

 김대중(1926~2009) 전남 신안 출생. 제15대 대통령.

이승만 대통령의 ‘전쟁 중의 봄’이란 시조에 이어 지난 호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시조 작품 ‘거북선’을 소개했다. 이번 호에서는 김대중 대통령의 11수로 된 연시조 ‘옥중 단시’를 소개한다.

이승만 대통령의 시조가 6·25 전쟁으로 피 흘려 싸우던 들에 봄에 되어 속잎이 돋아나는 소생의 이미지를 통해 전쟁의 막막함 속에서도 희망의 빛을 제시한 작품이었다면, 박정희 대통령의 시조 ‘거북선’은 “남들은 무심할 제 님은 나라 걱정했”다는 구절을 통해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물려준 나라사랑의 뜻을 이어받고자 하는 박 대통령 자신의 뜨거운 조국애를 담아냈다.

이번 호에 소개하는 김대중 대통령의 시조 ‘옥중 단시’는 김 대통령을 상징하는 정치적 탄압과 감옥살이를 시의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내용도 정치적 구호를 내세운 것이 아니라 잔잔한 가족 사랑과 내면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나라 사랑의 정신이 서정시조의 결로 담겨져 더욱 감동적이며 돋보인다.

첫 수는 감옥에 있는 대통령의 생일이나 새해에 세 자식들이 찾아와 큰절을 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데, 종장에서 아내까지 호명하는 치밀한 시적 구성으로 눈 앞에 장면이 펼쳐지는 듯 실감실정을 더하고 있다.

이승만, 박정희, 김대중 대통령의 시조 작품들이 보여주는 특징은 ‘때 시(時)’자를 쓰는 ‘시조(時調)’ 명칭에 너무도 잘 부합하는 작품들을 남겼다는 점이다.

시조는 시대를 외면하고 초월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아픔과 정신, 시대상을 담아내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역대 대통령의 이 세편의 시조는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20세기 한국 현대사를 기억하는데 있어 한국문학사적으로 큰 의미를 지닌 작품으로 재생될 것이라 확신한다.

시조에는 한 시대의 아픔과 정신을 오롯하게 담아내는 작품들이 적지 않다. 예를 들어, 이방원의 “이런들 어떠하리~”로 시작하는 ‘하여가’와 정몽주의 “이 몸이 죽고 죽어~”로 시작하는 ‘단심가’의 주고 받음은 조선 건국 과정의 역사를 리얼하게 재생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병자호란 때 끝까지 싸울 것을 주장하다 후에 청나라에 끌려가 6년 간의 포로생활을 했던 김상헌(1570~1652)이 소현세자와 함께 청의 볼모로 끌려가며 오늘 날 벽제 들머리에서 한양 쪽을 돌아보며 쓴 시조 '가노라 삼각산아'는 동북아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겪어야했던 한반도의 역사적 아픔을 상기시킨다.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보자 한강수야/ 고국산천을 떠나고자 하랴마는/ 시절이 하 수상하니 올동말동하여라”

시대상을 담아내는 시조는 이 외에도 수없이 많다. 이영도(1916~1976)의 시조 「보릿고개」(“사흘 안 끓여도 솥이 하마 녹슬었나// 보리누름 철은 해도 어이 이리 긴고//감꽃만 줍던 아이가 몰래 솥을 열어보네.”)는 풀뿌리와 나무속껍질로 배를 채워야했던 1950년대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절을 이해하게 한다.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감꽃을 주어 허기를 채우던 아이가 뭔가 먹을 게 있을까 싶어 엄마 몰래 솥을 열어본다는 내용을 그리고 있는 명시조다.

이 한편의 시조에는 한 권의 소설로도 부족할 가난했던 시절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필자의 시조 ‘누이 감자’(잘린 한쪽 젖가슴에 독한 재를 바르고/눈매가 곱던 누이는 흙을 덮고 누웠다/ 비릿한 눈물의 향기 양수처럼 풀어놓고~<하략>)는 1960~70년대 가족들, 특히 아들 형제를 위해 결혼과 진학 등에서 희생해야 했던 이 땅의 누이들의 아픔을 우려낸 작품이다.

이렇게 시조는 고려 말 이후 그 시대와 희로애락을 함께 해오고 있는 우리 민족의 시요, 노래다. 오늘날에도 2천여 명의 시인들이 시조 형식으로 현대시를 창작하고 있는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시조라고 하면 진부하고 고리타분한 것으로 여기는 주체적 문화의식이 부족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일제 강점기의 역사와 서구화라는 우리 문화를 왜곡하고 말살하는 잘못된 근대화 과정의 문화 인식과 주체성을 상실한 교육제도 탓이다. 일본에는 우리 시조와 같은 하이쿠를 짓고 사랑하는 인구가 1천만 명이 넘고 또 세계 곳곳에 전파해 하이쿠 짓기 문화 운동을 펼치고 있음을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시조 백일장 공모 안내-

 우리 민족시인 시조 창작 확산을 위해 ‘시조 백일장’을 공모한다. 한 수로 된 시조(기본형 음절 수 : 초장 3/4/3(4)/4, 중장 3/4/3(4)/4, 종장 3/5/4/3)를 보내주시면 매월 장원을 뽑아 상품을 드리고 시인 등단을 지원한다. 보내실 곳: sitopia@naver.com
 

권갑하 도농협동연수원장/문화콘텐츠학박사  sitopi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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