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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그램 아동 성착취 사건으로 본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보안’과 ‘익명성’의 두 얼굴
김혜진 글로벌 디지털 성범죄 연구소 대표 | 승인 2020.04.03 12:57

[여성소비자신문]최근 우리 사회를 경악하게 한 ‘텔레그램 아동 성착취 사건’의 가해자는 검거되기 직전까지도 절대로 잡히지 않는다는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고 한다. 심지어 운영자인 조주빈(25)이 검거된 후에도 N번방 이용자들은 경찰 수사를 조롱하는 여유까지 부렸는데 이것은 해외에 서버를 둔 텔레그램의 강력한 보안성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텔레그램은 안전하다?

다른 메신저 프로그램보다 강화된 ‘보안성’이 특징인 텔레그램은 메시지 로그가 서버에 저장되지 않고, 사용자가 확인한 메시지는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삭제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 토르 브라우저나 다크웹 포럼보다도 보안성이 우수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IS 조직원이나 테러범 같은 범죄자도 수사기관에 개인정보를 알려주지 않아 갓갓이나 박사 같은 범죄자들 사이에서 안전한 앱으로 통용되고 있다.

하지만 텔레그램을 사용했다고 해서 범죄자 추적 및 처벌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N번방 사건의 가해자들은 단속을 피하기 위해 이용자들에게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같은 암호화폐로 거래할 것을 유도했는데 현재 국내 4대 암호 화폐 거래소들이 모두 수사기관에 적극적으로 협조할 뜻을 밝혀 상당수의 이용자들을 찾아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시스템의 부재이다
 
하지만 조주빈(25)이 이용자들에게 송수신 기록이 공개되지 않고 해외에 거래소를 둔 모네로를 사용해 달라고 강조한 것으로 드러나 해외 거래소를 이용한 경우 사실상 거래내역을 확인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특히 거래소를 통하지 않고 직접 암호화폐를 송신한 경우 개인지갑 자체를 압수하기 전까지는 추적이 불가능해 이용자 파악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잔인하고 주도면밀한 수법을 동원해 아동의 성을 착취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일부 이용자 들의 추적 및 처벌이 지연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디지털 성범죄에 대응하는 컨트롤 시스템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디지털 성범죄에 상대적으로 미온적인 대응을 해 온 우리 사회 전체의 책임이자 부채라고 할 것이다.

특히 N번방 사건이 일어난 텔레그램의 경우 ‘종단 간 암호화’를 기반으로 한 시스템으로 서버가 해외에 있어 사법 공조가 쉽지 않은 상태인데다 N번방 사건이 이슈화되면서 텔레그램 가입자들이 대거 탈퇴, 범죄에 이용된 채널들을 연쇄적으로 폭파하고 있어 기록이 삭제되는 등의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이것은 우리 사회가 N번방 사건과 같은 지능적 디지털 성범죄에 체계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쌓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제공조만 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나요?

텔레그램 가입자들의 연쇄 탈퇴가 이어지면서 ‘디스코드’와 ‘위커’, ‘와이어’ 등 텔레그램보다 한층 보안성이 강화된 메신저로 성 착취물을 유통시킨 정황이 포착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앱들의 특징은 텔레그램과 마찬가지로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다는 것이며 국제공조를 통한 수사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허점을 노린 것으로 파악된다. 게임 유저들이 주로 사용하는 메신저인 ‘디스코드’에서 무려 6161명에 달하는 인원이 음란물 영상을 공유하고 채팅창에서 대화를 나눈 정황이 드러났으며 이에 디스코드 역시 경찰의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다행히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둔 디스코드의 경우 아동에 관한 범죄는 어떤 종류든 엄격하게 처벌하는 미국 사회의 특성상 법집행기관에 적극적으로 협조할 뜻을 밝혀 수사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디지털 성범죄를 엄중하게 처벌하는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의 경우 사건이 터질 때마다 국제공조의 필요성만 부각하며 정작 근본적인 해결책 마련에는 소홀해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CNN을 비롯한 외신과 국제인권단체는 우리나라의 디지털 성범죄 관련 처벌과 예방책 마련이 미흡하다고 지적한 바 있으며 특히 N번방 사건을 최초로 경찰에 신고한 사람이 두 명의 대학생이었다는 사실을 비중 있게 다루었다. 디지털 성범죄에 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안이하게 대처하고 있다는 것을 꼬집은 것이다.

국제 사회의 이러한 지적은 우리가 국제공조만 부르짖을 것이 아니라 성범죄에 대한 강력한 처벌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사법 당국은 초범이거나 자백을 했다는 이유로 선고가 유예되거나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 일이 없도록 국제 사회의 눈높이에 맞춰 형량을 높일 필요가 있으며 디지털 성범죄 동영상이 유통되는 플랫폼이 국내 법 체계가 미치지 않는 사각지대라는 이유로 수사 대상에서 배제되는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해결책 또한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N번방의 괴물이 탄생한 이유

N번방 사건이 알려진 이후 정부는 선대위 산하에 ‘디지털 성범죄 근절 TF’를 신설, 성착취 동영상을 이용해 피해자를 협박하는 행위를 처벌하기 위한 ‘n번방 3법(형법, 성폭력처벌법,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그것만으로 디지털 성범죄를 근절할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아동 성 착취물을 호기심에 한 번 쯤 볼 수 있는 포르노로 간주하는 문화가 암암리에 퍼져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은 것을 감사한다’

웰컴 투 비디오 사이트의 한국인 이용자가 재판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후 인터넷에 올린 글이다. 돈은 지불했지만 영상을 다운받지는 않았으므로 무죄라는 주장이 받아들여져 무죄판결을 받은 그는 아동 성범죄자의 경우 종신형까지도 선고되는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은 것에 감사하다는 글을 올렸다. 그리고 참담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그 동안 고생많았다는 축하 댓글을 달았다.

현재 미국을 비롯한 해외 주요국들은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을 피해자 보호와 가해자 추적에 적극 활용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인공지능을 범죄 예방 및 피해자 보호에 활용하겠다는 것은 디지털 성범죄를 바라보는 근본적인 인식이 우리와 다르다는 것을 알려 준다. 또한 이러한 인식의 차이가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N번방의 괴물을 탄생시킨 근본적 원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아동이 성적으로 착취당하는 영상을 ‘호기심’에 한 번 쯤 볼 수 있는 것으로 치부하는 한 언제든지 제2, 제3의 N번방은 출현할 수 있다. 개인의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 개발된 SNS의 익명성과 보안성은 디지털 성범죄를 저지른 가해자들과 이용자들의 죄책감을 덜어주는 용도로 변질되었고 끝없이 이어지는 디지털 세상에서 피해자들의 영상은 영속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다행히 N번방 사건을 계기로 디지털 성범죄를 바라보는 국민적 인식이 조금씩 바뀌어가고 있어 정부가 실효성 있는 새로운 정책과 법안을 마련하고 시민 사회가 적극적인 감시자가 되어 동참한다면 디지털 성범죄로 인한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디지털 성범죄에 지나치게 관대했던 우리 사회를 자정하고 피해자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는 최소한의 조치가 될 것이다.

 


 

 

 

 

 

 

 

 

 

 

김혜진 글로벌 디지털 성범죄 연구소 대표  rossoj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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