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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어머니의 반란윤석인의 문학동네
윤석인 | 승인 2020.03.27 19:40

[여성소비자신문 ]30여년 전 내가 인천 계양구에서 동생과 함께 운영하는 미술학원에서 있었던 일이다.

실바람이 살살 부는 초가을 오후였다.

혁이와 민이의 어머니가 미술학원을 찾아와 나에게 아주 어려운 부탁을 하려는지 머뭇거리다가 상담을 요청하였다.

“어머 홈패션 배우시게요?”

“예, 그래서 우리 아이들을 귀가 시간에 보내지 말고 저희들이 돌아올 때까지 미술학원에서 놀게 했으면 해서요”

“걱정하지 마세요. 선생님들 퇴근 시간 전에만 오시면 아이들은 여기 있어도 돼요”

그렇잖아도 여자가 결혼하여 아이를 낳으면 퍼질대로 퍼지는 모습을 많이 보아온지라, 한가한 낮 시간을 이용하여 무언가를 배우겠다는 두 학부형의 이야기를 나는 높이 사 주었다.

‘요즘 어떤 어머니들은 우루루 몰려다니면서 화투판을 벌인다는데 홈패션을 배우겠다니 얼마나 참신한 생각이야…’

나는 무척 흐뭇해하며 그렇게 해 주겠노라 그들의 청을 들어주었고 두 학부형은 매우 감사해 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그 날 이후.

약속대로 두 학부형은 미술학원에 맡긴 아이들을 퇴근 시간 전에 도착하여 집으로 데리고 갔고 그때마다 무척 고마워하는 표현을 했다.

그렇게 두 달쯤 지난 어느날.

“선생님 저…”

“무슨 말씀인데 그러세요?”

“저 내일은 홈패션 수업이 끝나는 날이라 쫑파티가 있거든요…. 그래서 좀 늦을 거 같은데….”

“어머 벌써 그렇게 됐어요?”

“예 내일은 밤 9시쯤 돌아올 것 같아요. 어쩌죠?”

“내일 하루 뿐인데요 뭐,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퇴근을 안 하니까 제가 혁이와 민이를 데리고 있을께요”

그 당시 나는 미술학원 사무실 뒤편에 내가 잠잘 수 있는 방에서 기거를 했었기에 두 학부형의 부탁을, 기왕에 도와주기로 한 것 끝까지 도와주자라는 기특한? 생각에 그렇게 대답을 해주었다. 다른 선생님들이야 퇴근을 하지만 나만 두 아이들을 봐 주겠다고 하면 두 학부형의 걱정은 사라지는 것이었다.

‘잘됐다 내일은 혜숙이 오는 날이니까 심심하진 않겠구나’

다행이도 다음 날은 동생 인숙의 꽃꽂이 스승인 혜숙이 오는 날이라(그 당시 인숙은 내 친구인 혜숙에게 꽃꽂이를 배우고 있었음) 늦은 시간까지 혜숙을 붙잡아 두면 그리 심심하지 않게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음날.

인숙의 꽃꽂이 수업을 끝낸 후, 혜숙은 두 아이를 돌보며 밖에 나가지도 못하는 나를 보고, 함께 차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주었다. 날이 어두워지자 아이들은 장난감을 갖고 놀다가 쓰러져 교실 바닥에 누워 잠이 들었다. 나와 혜숙은 아이들을 사무실 쇼파에 누이면서 벽시계를 바라보았다.

“어? 10시가 넘었는데 왜 안오시지?”

“쫑파티를 한다니까 좀 늦나보지 뭐”

“그런가 보네 하지만 난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이제 가야 돼”

할 수 없이 혜숙을 더 이상 붙잡지 못하고 바래다주려 학원 앞길까지 걸어 나왔다. 그 때였다. 저만치서 헤드라이트 불빛이 이별의 폼을 잡으려는 우리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저기 오는 택시 서울 택시 맞지?”

“응 그런 거 같은데 잘 됐다. 서울 택시 만나기 어려운데”

“잘 됐다 나 서울 우리 집까지 택시타고 갈래”

혜숙의 말이 끝나자마자 택시는 끽 소리를 내며 우리가 서 있는 곳에서 정차를 했다.

“어 선생님 아니세요?”

“어머 혁이 어머니!”

공교롭게도 그 서울 택시에서 내리는 여인들은 혁이와 민이의 어머니였다.

“지금 오시는군요?”

“예 쫑파티가 늦게 끝나서…죄송해요”

“그럴 수도 있죠. 어서 들어가세요”

“아, 예”

잠시 후, 혜숙은 택시를 타고 사라져 갔고 나는 미술학원 사무실 소파에 잠들어 있는 두 아이들을 학부형의 등에 업혀 집으로 보냈다.

그날 밤, 뒤늦게 잠자리에 들면서도 나는 무척 흐믓해 했다. 지난 두 달 동안 신경이 안 쓰인 것은 아니지만 약간의 불편함을 참아준 대가로 두 학부형에게 재능을 발휘할 기회를 준 것 같아서 나 스스로에게 무척 대견해 했다.

그런데….

일주일 후, 인숙의 꽃꽂이 수업 때문에 미술학원에 들린 혜숙의 입에서 엄청난 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뭐?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그 택시 기사에게 얼마나 당했는지 알아? 그 여자들 잘 아는 사이냐고 해서 뭐 그렇다고 했더니, 그 여자들이 부천 카바레 앞에서 택시를 탔다는 거야, 그래서 내가 그 앞에서 탔다고 다 카바레에 다니는 여자라고 말하지 마세요 했더니, 참 나 기가 막혀서…. 자기네들이 그런데 갔다 왔으면 택시 안에서 입이나 다물고 있지, 별별 얘기를 다 해가지고 나까지 같은 여자 취급을 하잖아,

그래서 내가 아는 여자들이 아니고 내 친구 미술학원 학부형인데, 홈패션 배우러 다닌다고 아이들까지 맡겼던 얘기를 했더니, 홈패션 좋아하시네 하면서 자기 마누라가 그렇게 하고 다니면 다리를 분질러 놓겠다고 하더라!”

“그럴 리가…. 그 날만 늦었지 다른 날은 낮에 들어왔어”

“요즘 대낮에 시장바구니 들고 나가는 여자들 다 춤바람 난 여자라는 거 못들었어? 오죽 그 택시 안에서 하고 다닌 일을 떠들었으면 그 택시 기사가 나한테까지 막말을 하려고 했을까?!”

“하….”

정말 기막히는 이야기였다.

홈패션 배우러 다닌 것이 아니고 춤을 추러 다닌 학부형들이었다.

이럴 수가….

학부형이 자기 자식 가르치는 선생을 속이면서까지 춤을 추러 다니다니….

나는 한동안 멍청히 혜숙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결국 그녀들을 도와준 것이 아니라 춤바람 잘 피우라고 공범자 노릇을 해준 꼴이었다.

어쨌든 그 일이 알려질까 두려워 나는 입을 다물었다. 만에 하나라도 혁이와 민이의 아빠들이 알게 되면 크나큰 부부싸움이 생기는 것은 뻔한 이치이기 때문이었다.

허나 이 세상에 비밀이라는 것은 없는 법.

그 일이 있고 난 후 두 학부형은 내가 자신들의 행실을 눈치 챘다고 생각했는지 슬그머니 아이들을 안 보내기 시작했고 나 또한 왜 보내지 않느냐고 묻지도 않았다.

그렇게 한 달쯤 지난 어느 날 밤.

“언니, 그 민이 어머니…. 남편에게 머리 깍였데”

동생이 누군가에게 듣고 전해주는 이야기였다. 나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 머리만 깍이고 지나가면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역시 내 예감은 빗나가지 않았다.

이듬해 봄, 들리는 풍문에 의하면 민이의 부모가 심하게 싸웠고, 결국은 이혼까지 하여 멀리 이사를 갔다는 것이었다.

이혼….

참 웃을 수 없는 일이다. 그 춤이 무엇이 길래 6살난 아들이 있음에도 이혼까지 한단 말인가. 나는 그제 서야 혁이의 가정도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평소에 혁이의 어머니와 친하게 지냈던 설이의 어머니를 불러서 넌지시 물어보았다.

“그 집은 그냥 지나갔데요. 아, 혁이의 엄마는 성격이 괄괄하니까 그런데 다녀도 가정까지 나 몰라라 하지는 않지만 그 민이 엄마는 남편에게 머리까지 깍였는데도 가발 쓰고 또 나갔답디다”

“그래요?”

“에그 춤이 뭔지….”

설이의 어머니는 춤이 뭔지만 연발하다가 시계를 보더니 저녁 준비할 때가 되었다고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춤.

그렇다. 설이의 어머니 말대로 춤이 뭔지는 모르지만, 그 춤 자체를 즐기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다만 춤을 추는 이유로 해서 민이의 어머니처럼 가정을 버리고 자식의 가슴에까지 심한 상처를 남긴다면, 그것이야말로 즐겨선 안될 춤이 되고 마는 것이다.

갑자기 어린 민이가 지금 어떻게 컸는지 궁금해진다.

윤석인  siyoon@hanmail.m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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