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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각은 자유윤석인의 문학동네
윤석인 | 승인 2020.03.10 11:24

[여성소비자신문]정 시인에겐 아주 재미있는 친구가 있다.
평소엔 어디 한군데 흠잡을 데 없는 ‘미’라는 친구인데 술만 마시면 아주 묘하게 변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주사가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기엔 그녀의 행동이 아주 흉하게 보이진 않는다.

단지 술을 많이 마셔서 의식이 불분명해지면 가깝게 있는 남자의 품에 안기곤 하는 것이다. 아마도 이혼 전 남편에게 안기는 버릇이 술에 몹시 취했을 때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인 것 같았다. 허나 직접 그 경험을 치룬 남자들은 하나같이 그녀가 사랑을 고백하는 것이라 착각을 하고, 더욱이 그녀가 돌싱이라는 것을 알면 더더욱 그런 현상이 심해지는 것이었다.

“정 시인, 네 친구 미 좀 만나게 해줘”
“그 여자 멋있던데!?”
정 시인은 그녀를 품에 안았던 남자들로부터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무어라 이야기를 해 줘야 할지 난감에 빠지곤 한다.

지난 여름엔 땅달이 화가가 미의 행동을 오인하여 무척이나 들뜬 감정으로 그녀의 핸드폰에 문자 사랑을 고백하더니, 가을엔 키다리 시인이 술 취한 미를 한번 안아보더니 무조건 돌격대장이 되었다. 그녀의 집에 여러번 전화를 한 것도 모자라서 그녀의 스케줄을 용케도 알아내어 주변에서 서성거렸다. 너무 놀란 그녀가 자신의 취향이 아니라면서 의식적으로 키다리 시인을 피했더니, 키다리 시인은 닭 좇던 개 지붕 쳐다보는 몰골을 하고 돌아서야만 했다.

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그럼 왜 하필 남자만 있으면 안기냐?’
누군가는 이렇게 의아한 질문을 던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자에게만 그런 것이 아니다. 미는 술에 취하기만 하면 같은 여자들에게도 평소답지 않은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아, 나도 꽃이 되고 싶어!”
“날 보고 느낌이 좋데, 어떤 남자가 섹시하다고 했어”

미는 무슨 나르시즘에라도 빠진 것처럼 자신의 예쁜 목소리와 같은 묘한 표정과 분위기를 자아내면서, 모든 여자가 갈망하는 신비한 매력의 소유자인 것 같은 말을 곧 잘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미인 축에나 끼는 외모의 소유자라면 인물값을 한다고 하겠는데, 전혀 그쪽과는 상관없는 얼굴임에도 상당한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 옛날 ‘요괴인간’이라는 만화의 주인공 벰 베라 베로 중에서 베로와 가깝게 생겼다고나 할까?

헌데 주변의 남자가 섹시하다는 말을 던졌다고 해서 그 말을 자신의 무기로 삼는 것을 보면 ‘착각은 자유다’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어안이 벙벙해진다.

"나 요즘 유 시인과 함께 시 배우러 다녀“
머리와 수염을 하얗게 기른 도사?에게 시론을 배우면서부터는 그러한 현상이 더욱 심해졌다. 마치 자신만이 해박한 지식의 소유자라도 되는 양 그 도인이라는 분에게 들은 이야기를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꼭 써먹으려 드는 것이다.

“인간이 제일 아름다워, 왜 그럴까? 나는 인간에게 상처만 받았는데”
“시는 그런 것이 아니야”

미에게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사람들은 멍청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만 보았다. 더욱이 시인들은 그녀가 시 한편도 써내지 못한 사람이란 것을 알고 나면 어처구니 없는 표정이 되고 마는 것이었다.

뭐랄까?
딱 꼬집어서 말할 수는 없으나 그녀의 그런 행동은 평탄치 않은 결혼과 이혼에 의한 무슨 피해의식에서 나오는 것이라 여겨진다.

지식이 많은 학자들은 자신의 강의 시간이 아니면 무슨 토론이나 논쟁을 하려들지 않는다. 꼭 어설프게 배운 사람들이 모래벌판에서 조개껍질 만큼의 지식을 누군가에게 꼭 자랑하려 들곤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무슨 큰일이라도 나는지….

다행히도 미의 그런 행동은 술에 취했을 때만 보여지는 것이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그냥 술에 취했으니까 하며 넘어가곤 한다. 하지만 깔끔하게 정돈된 맨 정신의 그녀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무척이나 안타까워한다.

그러니 미와 술을 마시고 싶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남자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술에 취하면 나르시즘 비슷한 착각에 빠져든 미를, 얼결에 안아줬던 남자들이 착각에 빠지는 것도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봄의 정령(精靈)
                                      윤석인

진달래꽃 피기 전에
내가
진달래꽃 되어
그대에게 가리라

진분홍 빛 입술 가득히
긴 겨울밤
내내 품어온 그리움 되어
그대 가슴 한 복판에 파묻혀 보리라

천년이 지난 봄에도
만년설 얼음같이
티 묻지 않은 향기로
그대 뜨거운 심장 속으로 흘러가 보리라

진달래꽃 피기 전에-

저 허무히 부서지는
낙조처럼
붉은 회오리 되어
그대 망막 깊숙이 비집고 안겨 보리라.

 

윤석인  siyoon717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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