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오피니언 칼럼
삶에서 부분과 본질의 조화
김혜숙 백석대학교 교수 | 승인 2020.02.25 10:51

[여성소비자신문] 일차적(Primary)인이란 말은 근본적인, 중심적인, 본래적인 핵심적인 본질적인 의미를 뜻한다면 이차적(secondary)은 부수적인 더불어 생긴. 지엽적인 표면적인 의미를 갖는다.

삶의 방향을 가는 사람들 가운데 자신의 신념이나 가치를 추구하며 핵심적인 것에 초점을 두고 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부수적이고 이차적인 것에 에너지를 쏟느라 삶의 근본적인, 중심이 되는 것을 놓치고 에너지를 쓰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자신의 중심적인 경험과 부수적인 경험을 구분 못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대화에서도 핵심은 어디로 가버리고 부수적인 말투나 단어로 더 싸우는 사람들이다. 유아의 정서발달 과정에서도 5-6세까지는 일차적인 과정이고 6세 이후는 이차적인 과정으로 정신분석가들은 일차적 과정의 경험을 더 본질적으로 본다. 자신의 삶에서 중심적인 경험이 무엇이고 주변적이고 부수적인 것이 무엇인지, 나의 경험이 뿌리인지 줄기인지 가지인지 나뭇잎에 불과한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강박성 성격장애를 갖는 사람은 흔히 작은 일의 시시비비를 따지느라 몸통은 놓치고 매사에 신경이 예민하고 정리정돈, 청결에만 에너지를 쏟느라 정작 자신의 본질적인 것을 잃어버린다.

일 중독자들은 행복을 느낀다거나 소중한 사람과 소소한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는 일에만 매진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일을 통해 인정받고 목표에 이루어야 한다는 것에만 올인하다 보니 자신의 건강은 돌볼 여유가 없다. 아무리 일을 잘해서 큰 돈을 벌어 재산은 쌓았지만 자신의 건강을 잃으면 모두가 무용지물이 된다.

자녀 양육에서도 마찬가지다. 아이를 사랑하고 키우는 엄마나 아빠가 아이를 제대로 양육하지 못하고 방치해버리면 자녀는 세상과 경계선을 바로 세울 수 없게 된다. 자신의 진정한 욕구나 원함도 모르고 자란다. 상대방에게 맞추기에 급급할 뿐 상대방의 부탁이나 요청에는 ‘노’ 라고 말하지 못한다.

또한 부모가 너무 강압적으로 비난과 위협, 지시, 명령 등을 하면서 아이의 자율성이나 선택권을 인정하지 않을 때는 자신의 욕구나 진짜 감정을 속이고 가짜 자아로 ‘~하는 척’ 할 뿐이다. 이때 내면의 자율적인 세계는 억압당하여 많은 분노를 가지고 산다.

바위씨는 버럭버럭 화를 잘 내는 사람이고 피해의식이 많다. 그래서 부인은 가능하다면 갈등상황을 피하기 위하여 말도 섞고 싶지 않다고 한다. 아내가 “당신 어디가세요?”라고 물으면 자신이 어디 가는지 모르냐며 화를 버럭 내고 말도 해주지 않는다.

늦어도 왜 늦은지 상대방은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별것도 아닌 일로 불같이 화를 내는 남편이 무섭다. 함께 사는 아내의 관심으로 보지 않고 감히 여자가 남자를 통제한다고 생각한다.

정신분석적 관점에서 헤밀턴은 화를 잘 내는 사람은 분노를 통해 다른 사람을 지배하고 통제하려 하고 이들은 항상 전적으로 좋거나 나쁘거나 이분법적인 사고를 한다고 본다. 대상관계이론가는 종종 표출하는 분노나 화는 이미 아동기부터 부모와 같이 중요한 사람들과 관계에서 경험한 상처, 억울함, 사고나 행동, 태도 등의 유형이 현재 만나고 있는 부인이나 자녀들에게도 안전하다는 사람에게 다시 나타난다고 한다. 이런 과정들은 상당 부분이 무의식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자기 안에서 발생하는 감정이나 태도, 사랑이나 억울함, 미움, 증오들의 감정의 원천을 잘 알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행복의 감정을 많이 느낀 사람은 앞으로도 행복의 감정을 더 느낄 가능성이 높고 우울이나 외로움을 자주 더 느낀 사람은 유사한 상황에서도 다른 사람보다 더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

상대방의 말을 듣고 무조건적인 자동 반응은 파충류나 포유류처럼 생존을 위한 방식으로 본다. 위험하다고 생각되면 싸우고, 도망가고, 죽은 듯 숨어야하고 복종한다. 안전하다고 생각되면 우리 뇌는 함께 즐기고 춤을 추고, 배우고, 짝을 이루고, 목표를 향한 창의적인 생산 활동에 전념할 수 있게 된다.

바위씨의 반응은 그동안의 삶에서 얼마나 통제를 심하게 받았는가에 대한 생존하기 위한 자동반응으로 볼 수 있다. 어린 시절부터 불안, 두려움 공포를 많이 경험한 사람들은 사람에 대하여 하물며 그 사물에 대하여도 자동반응을 한다. 아버지가 아들을 감나무에 묶어서 자신의 혁대를 풀어서 체벌을 하곤 하였다.

식사 때도 말 한마디 해서는 안 되는 분위기 속에서 성장했다. 이 아들은 커서도 권위자 앞에만 있으면 말이 덜덜 떨려 안 나오고. 혁대나 밧줄 같은 것만 봐도 몸이 경직되고 두려움을 느꼈다. 우리가 흔히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하는 것과 같다.

이런 긴장 에너지는 자신을 보호하는 자기방어에만 급급해 할 뿐 다른 대상이나 사물에 집중하고 몰입을 하는 것은 어렵다. 무엇인가 창의적인 일을 하는 데 사용할 수 없다. 자신의 두려운 감정과 불안, 공포는 긴장에너지로 본질적인 것을 무시해버리고 부수적인 것에 더 에너지를 쏟기 때문에 비효율적이 된다. 코헛(Kohut)은 건강한 개인은 건강한 자기구조의 확립으로 자기의 응집성, 확고함, 활력, 생명력, 그리고 조화로움을 강조한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부수적이고 작은 지엽적인 일에만 몰두하다가 본질적인 핵심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

김혜숙 백석대학교 교수  kimhyesok@hanmail.net

<저작권자 © 여성소비자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