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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인의 문학동네]박력있는 남자
윤석인 한국문인협회 회원 | 승인 2020.02.13 16:11

[여성소비자신문]30년 전.

은지는 나와 함께 미술학원에 근무하였다. 당시 은지는 스물 아홉이었으며 키는 작아도 요정처럼 깜찍한 얼굴이 잘 어울리는 세련된 아가씨였다.

“어? 너…코?”

오랜만에 만난 은지를 보고 깜짝 놀랐지만 곧 입을 다물었다. 작은 키와 코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민감한 반응을 나타내는 은지의 성격을 건드린 것 같아서였다.

“어머 미안해 은지야”

“아냐 언니, 나 코 수술했어”

“그~랬~구~나”

“괜찮아 언니, 나 이젠 코 얘기 꺼내도 화 안내!”

작은 얼굴에 톡 솟은 매부리코가 아닌 일직 사선의 중심부를 자신만만하게 드러내며 하는 말이다. 기가 막혔다. 예전의 그녀는 코에 대한 콤플렉스가 심하여 그 누구도 그녀 앞에서 ‘바브라 스트라이 샌드’의 ‘바’자도 꺼내기 힘들었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달라진 코를 보고 기뻐할 수가 없었다. 작은 키와 어울리는 이목구비 (耳目口鼻) 중에서 유난히 격해 보이는 코였지만 나는 그것이 그녀의 개성미로 보여서 남들이야 뭐라 하든 특이한 미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성형 수술이 그래서 좋다는 건가?’

얼굴이 예뻐진다는 것보다 콤플렉스가 해소된다는 차원이라면 성형수술도 해볼 만한 것이리라.

어쨌든 나는 은지와 호흡을 맞추며 일을 하였다.

“언니, 나 이젠 집에 들어가기 싫어”

어느 맑은 가을 날, 그녀가 퇴근하지 않고 내 방에서 묵으며 던진 말이다.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기에 그녀의 하소연을 들어 주었다.

그녀는 1남 3녀 중 둘째 딸이다. 그녀의 언니와 여동생은 벌써 결혼하여 아이를 둘씩이나 낳았기 때문에, 서른이 가까이 되자 집안 어른들로부터 심한 눈총을 받았다.

“결혼하면 되잖아”

“언니도 안했으면서 왜 나보고 하래?”

그 말에 대꾸할 말이 없었다. 그 당시 나도 데이트 상대자가 없어서 쉬는 날만 되면‘방콕’(방구석에 콕 틀어박혀 있는 사람)을 면치 못하는 신세였기 때문이다.

“도대체...요즘은 왜 남자들이 하나같이 그 모양이야?”

“……”

“쫌보같은 놈들하고 사느니 혼자 사는 게 낫지 뭐!”

달리 대답할 말도 없는 나는 그녀가 잠들 때까지 퍼붓는 한탄만 듣고 있었다.

그 후, 12월이 찾아왔다.

수업이 끝난 금요일 오후에 방학 준비를 서두르던 우리는 한가한 시간이 나자 차를 마시며 마주 앉았다.

“언니, 나 선보래”

그녀는 다른 선생들이 들을까 눈치를 보면서 속삭이더니 이내 고개를 숙였다.

“언제?”

“내일 오후에…”

그날 은지는 들뜬 마음으로 퇴근을 하였다.

서른이 임박한 은지가 선을 본다니까 내가 주인공이 된 것처럼 가슴이 설레었다. 성형 수술 하기 전엔 아예 남자 만날 생각도 안하더니 이젠 외모에 신경 안 써도 된다는 건가 하면서 어떤 남자가 깐깐한 은지의 반려자가 될지 궁금도 하고 첫선을 보는 것 만큼 제발 인연이 닿았으면 하고 기대까지 하였다.

다음 주 월요일 출근한 은지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한숨이 터져 나왔다.

“참, 기가 막혀, 아주 촌놈이 나와 있어 글쎄”

“왜? 키는 크다며?”

“키만 크면 뭐해?! 양복을 입었는데 넥타이도 안 매고 앉아 있고, 식사했냐고 물으니깐 하고 왔데잖아!”

“…….”

“그래서 나 혼자 돈까스 먹고, 계산도 내가 나오면서 했다구!”

키가 작은 콤플렉스가 있는 은지에겐 늘 키 큰 남자가 원이었다. 중매장이들은 키가 작으면 아예 처다보지도 않는 그녀의 성미를 알고, 1미터78센티의 남자를 간신히 주선한 모양인데 촌스럽고 매너도 모르는 남자라고 그 자리에서 딱지를 놓고 온 모양이었다.

“에이, 다시는 선 안 봐!”

은지는 씩씩 거리며 일에 열중하였다.

그 후, 2주일간의 겨울방학이 지나고 또 다시 봄방학이 찾아올 무렵이었다.

“언니, 나 또 선보래”

“그래? 이번엔 또 어떤 사람이래니?”

“몰라, 하여튼 키는 크데”

“웬만하면 잘 봐줘라 얘, 중매쟁이도 힘들겠다”

“……”

“날짜는 언제로 잡았니?”

“그냥 봄방학 하는 날로 잡았어”

선을 보겠다는 그녀의 말을 듣고도 이번에는 가슴이 뛰지 않았다. 지난번 헛물을 켜서 그런지 공연히 시큰둥해지며 청첩장 받을 때까지 그녀의 결혼을 믿을 수 없었다. 그래도 나는 봄방학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은지의 선 본 결과에 대해 큰 기대를 걸지 않으면서….

“언니, 나 결혼해야 돼?”

개학식 날 커피를 마시다가 갸웃둥하며 꺼내는 은지의 말이다.

“왜 이번엔 마음에 드니?”

“아이, 그게 아냐 언니”

“그럼 또 뭐야?”

“일이 아주 이상하게 됐어”

은지의 말을 듣고 보니 정말 묘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선보기로 한 날, 은지는 아침부터 서두르고 있는데 초인종 소리가 들려 나가보니 뜻밖에도 처음 선 본 촌 남자가 문 앞에 서 있었다. 은지는 그 당시 파주에 있는 부모님의 집으로부터 독립하여 서울 근교 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어머, 여긴 웬일이세요?”

“저 10분만 시간 좀 내 주세요, 할 얘기가 있습니다.”

“저 약속이 있어서 곤란한데요”

“10분도 안 됩니까? 온양에서 당신을 만나려고 왔는데”

“정말 10분이죠?”

“예”

“그럼 잠깐만 기다리세요, 옷 갈아입고 나올께요”

“잠깐이면 되는데요 뭐, 저기 차도 갖고 왔으니 저 아래 다방에서 애기하면 금방 끝나니까 옷에 신경 쓰지 마세요”

그 말에 은지는 까다롭게 굴기가 뭐해서 저만치 서있는 승용차에 올라탔다. 헌데 승용차는 저 아래 다방에서 서는 게 아니고 두어 시간 지나 삽교천에 서는 것이었다. 물론 도중에 내리려고 했으나 운전하는 사람이 촌 남자의 동생이라 세워달라고 해도 통하지가 않았고 옆에는 촌 남자가 딱 버티고 앉아서 굳은 표정을 지었기에 가슴이 쫄아서 말조차 걸을 수가 없었다.

“오늘 딴 남자하고 선 보기로 했다는 거 다 알고 왔어요!”

“……”

“중매 선 아주머니께 당신을 다시 만나게 해 달라니까 틀렸다고 하면서 그런 얘기를 해주더라구요!”

“……”

“그래서 부랴부랴 오늘 시간을 낸 겁니다! 나 혼자 오면 당신을 태우지 못할까봐 내 동생까지 회사에 못 나가게 했어요!”

“……”

“나하고 결혼 할거요, 안할거요? 그것만 말해요!”

삽교천 부근에 은지를 옆에 앉히고 깡소주를 마시며 협박 비슷한 청혼을 하는 촌 남자를 보고 은지는 겨우 한마디 했는데….

“저…그럼…결혼을 전제로 해서…사귀어 보죠 뭐….”

“결혼을 하면 하는 거지 사귀어 보는 건 뭡니까?”

“……”

“좋아요 그럼 일어나요!”

그 말이 끝나자마자 촌 남자는 또 다시 은지를 태우고 온양 자신의 집으로 달렸다.

“너, 결혼을 해야 하나가 아니라 그 남자하고 결혼하는 거네 뭐”

은지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는 그렇게 대꾸했다.

“아냐, 아직 날짜 안 잡았어”

“너, 그 집 어른들이 우리 며느리감 왔냐구 무척 좋아했데며?”

“그야 집에까지 갔으니까 그렇지”

“어쨌든 그 남자는 너와 결혼하는 걸로 알고 날짜 잡겠다고 한 거잖아?”

“그래도…”

두 번째 선을 보려다가 급작스럽게 나타난 촌 남자의 화끈한 납치극에 매료된 은지.

그녀는 그 날 그렇게 말을 맺고 있었다.

그 후, 3월 중순으로 결혼 날짜가 잡히자 “언니 그게 아니라까….” 하면서도 은지는 결국 촌 남자 옆에서 웨딩드레스를 입었다. 그것도 서울이 아닌 촌 남자의 고향이며 자택 근처의 예식장에서….

“왜 요즘엔 남자들이 그 모양이야?”

“쫌보같은 남자들하고 사느니 혼자 사는 게 낫지 뭐!”

그녀의 결혼식에 참석하고 돌아오는 고속버스 안에서 문득 지난 가을에 툭툭 뱉어내던 은지의 말이 떠올랐다.

“푸후훗”

나는 피식 피식 터지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랬다.

쫌보 같은 남자.

그녀의 말대로 은지는 정말 쫌보 같은 남자하곤 결혼하지 않은 것이다. 겉모습이야 훤출한 키가 아까울 정도로 약간? 촌스럽지만...

남자 중의 남자.

박력 있고 멋있는 남자하고 결혼한 것이다.

윤석인 한국문인협회 회원  siyoon717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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