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소비자신문]구명숙의 행복한 시 읽기

엄마 걱정
  기형도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춧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어두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시 해설 

이른 아침, 엄마는 열무를 삼십 단이나 이고 시장으로 가셨다. 열무를 다 팔아야 돌아오실 것을 알기 때문에 어린 아들은 하염없이 엄마를 기다리며 빈 방을 지키고 있다. “해는 시든지 오래/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엄마 안 오시네, 배춧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안 들리네” 해는 이미 서녘으로 넘어가고 창밖은 점점 어둠이 짙어 가는데, 시들어 늘어진 배춧잎 같은 엄마의 발자국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이 구절은 여러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바, 우선 착한 아들은 숙제를 다 해놓고 또 다른 공부도 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자신의 책임을 다 하고 창가에 귀를 대고 타박타박 들려올 엄마의 발소리를 간절히 기다린다. 긴 ‘기다림’의 안타까움으로 독자들의 가슴도 졸이게 한다.

일찍 철이든 참을성 많은 아이는 드디어 기다림에 지쳐 가는데, 어둠 속 바깥상황은 더 나빠진다. 엄마의 발자국소리가 아닌 금이 간 창틈으로 ‘빗소리’ 가 들리는 것이다. 이에 엄마 걱정이 고조되고 빈방에 혼자 엎드려 울고 만다.

방 하나의 공간이 우주이고 엄마의 존재가 곧 그의 세계이다. 지친 엄마를 안심시키기 위해 외로움을 달래며 기다리던, 기형도 시인의 유년 시절의 한 단면을 그려놓은 시 '엄마생각'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불러오게 한다.

구명숙 숙명여자대학교 명예교수  k9350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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