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소비자신문 한지안 기자] 롯데그룹 창업주인 신격호 명예회장이 19일 세상을 떠났다. 롯데그룹은 신동빈 회장 체제를 이어가는 한편 ‘원롯데’를 위한 필수 요소로 꼽히는 호텔 롯데 상장 등 현안에 집중할 전망이다.

남겨진 유언장 없어...신격호 지분 상속은 어떻게

신 회장의 타계에 재계의 시선은 신 회장과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 사이로 쏠린다. 신 명예회장이 별도의 유언장을 남기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만큼 재산 상속은 신 명예회장의 법정대리인인 '사단법인 선'의 주도 하에 법적 해석을 거친 뒤 가족 상의를 통해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신 명예회장이 보유한 일본 롯데홀딩스 지분율은 0.4%다. 일본 롯데홀딩스는 롯데그룹 지배 구조 정점에 있는 회사로, 광윤사가 28.1%, 종업원지주회가 27.8%, 관계사가 13.9%, 임원지주회가 6%의 지분을 나눠 갖고 있다.

이 중 광윤사는 신 전 부회장이 지분 '50%+1주'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 전 부회장이 일본 롯데홀딩스 최대 주주인 광윤사의 최대 주주인 셈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신 명예 회장 타계 후 롯데 그룹 지배구조에 변화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제기돼 왔다.

다만 최근 재계에서는 신 명예회장의 보유 지분은 신 회장과 신 전 부회장 사이 경영권 다툼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신 명예회장의 보유 지분이 분할 상속될 가능성도 크다. 이에 더해 지난해 6월 도쿄에서 열린 일본 롯데홀딩스 주주총회에서도 신 회장이 재신임된 만큼 신 회장과 신 전 부회장 간 형제의 난이 되풀이되지는 않을 것이라는게 재계의 중론이다.

특히 일본 롯데홀딩스 나머지 지분 53.9%를 보유한 경영자·주주들은 신 회장이 2018년 2월 구속됐을 때도 경영권을 인정한 상태다. 이들의 지분율에 신 회장 지분율 4%를 더하면 57.9%다. 다만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신 명예회장의 롯데 관련 지분이 더 나올지가 변수로 꼽힌다.

'포스트 신격호' 롯데, 남은 과제는 호텔롯데 상장·원 롯데 추진

롯데 그룹의 숙원으로 꼽히는 ‘원 롯데’는 신 회장이 2017년 10월 출범시킨 롯데지주를 정점으로 체제다. 지배구조 투명성을 높이고 한국 롯데가 일본 롯데 지배에서 완전히 벗어나 ‘한국 기업’이라는 정체성을 명확히 하는 작업이라는 게 재계 중론이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일본 주주 지분율을 50% 이하로 떨어뜨릴 수 있는 호텔롯데 상장 작업이 필수로 꼽힌다. 호텔롯데 상장 작업은 2016년 신 회장이 검찰의 경영 비리 수사로 수감되는 동시에 중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이 겹치면서 중단됐다.

면세점 사업은 호텔롯데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나 중국의 사드 보복 이후 매출이 연간 3000억원에서 100분의1 수준으로 내려 앉았고, 영업가치와 비영업가치를 합해 20조원에 달하던 호텔롯데의 시장 가치도 4~5조원 수준으로 줄었다.

이같은 상황에 관련업계에서는 롯데그룹이 호텔롯데의 기업 가치를 높이기 위해 면세사업 확장에 나설지 관심이 쏠린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인천공항공사는 조만간 1터미널 면세사업권 8개 구역에 대한 입찰 공고를 낼 예정이다. 오는 8월 계약이 만료되는 만큼 설 연휴 전 다시 입찰을 받는다는 계획이다. 앞서 롯데는 인천공항 1터미널 4개구역 중 3개 구역에 대한 사업권을 2018년 자진 반납했다.

당시 업계에선 중국 당국이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에 대해 단체관광을 불허하는 등 보복 조치를 취함에 따라 적자폭이 커진 상황에 인천 공항 임대료가 부담이 된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실제로 롯데는 임대료 협상 당시 공항공사를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하기도 했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철수했다. 롯데면세점이 이번 입찰에 성공하면 점유율이 늘고 기업가치도 높아져 호텔롯데 상장에 호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유통·화학 등 그룹 과제 ‘산적’...신동빈 “전부 바꿔라”

이 외에 롯데그룹은 지난해 유통·화학 등 대부분 부문에서 부진한 실적을 거뒀다는 현안도 떠안고 있다. 핵심 계열사인 롯데쇼핑이 일본의 수출규제로 촉발된 일본제품 불매운동의 직격탄을 맞았으며, 온라인 쇼핑몰들이 유통업계 신흥 강자로 떠오르며 기존 오프라인 매장들의 매출이 급감했다.

이 같은 업황 변화는 지난 15일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에서 개최된 ‘2020 상반기 롯데 VCM(Value Creation Meeting, 사장단 회의)’에서 신 회장이 “오늘은 듣기 좋은 이야기는 못 하겠다”며 “변화의 시대에 과거의 성공 방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강조한 이유다.

당시 신 회장은 “우리 그룹은 많은 사업 분야에서 업계 1위의 위치를 차지하고 성장해 왔지만 오늘날도 그러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며 “적당주의에 젖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일갈했다. 과거의 성공 방식에 매달리거나 현재의 상태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다.

이번 VCM에서 신회장은 ‘빠른 대응’을 주문하며 ‘모든 사업부문의 수익성과 미래 성장성을 면밀히 분석하고, 이에 기반한 자원 배분과 투자를 진행해 달라’고 당부했다. 시대에 뒤떨어진 부분이 있다면 전략 재검토를 재빨리 하는 한편, 미래를 위한 투자는 과감하게 진행해 달라는 요구다.

지난해 말 진행된 임원인사에 대해서는 “변화에 빠르게 대응해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 젊은 리더들을 전진 배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롯데그룹은 지난 2018년 정기 인사에서 284명이 임원으로 승진했지만 2019년에는 이보다 40.1% 감소한 170명만 승진했다.

특히 롯데는 기존 대표이사 체제로 운영됐던 백화점, 마트, 슈퍼, e커머스, 롭스 사업부문을 롯데쇼핑 통합법인의 사업부로 전환하고 유통BU장인 강희태 부회장이 롯데쇼핑 통합법인 대표이사를 겸직하게 했다.

화학부문도 김교현 화학BU장이 주력 회사인 롯데케미칼의 대표이사를 겸임하고 사업 카테고리의 전반적인 사항을 챙기게 했다.

한편 신 회장은 신년사에서도 “기존 사업 분야에 얽매이지 말라”는 주문을 한 바 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각오로 기존 사업 방식과 경영 습관, 일하는 태도 등 모든 요소를 바꿔나가야 한다”고도 말했다.

이르면 올해 상반기 롯데가 선보일 통합 서비스 ‘롯데ON’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풀이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소비자들의 발걸음은 쿠팡·G마켓·마켓컬리 등 e커머스 업체로 쏠룠다. 온라인쇼핑 거래액은 1년 만에 약 25조원 증가하며 135조원 규모로 커졌다. 이에 따라 롯데는 백화점·마트 등 쇼핑 부문 전 상품을 하나의 모바일 앱에서 구매할 수 있도록 계획한 롯데ON 출시를 앞두고 있다.

한지안 기자  hann9239@wsob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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