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소비자신문] 치유농업에 대한 관심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생존경쟁이 치열해지고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은 것이 로망이 됨에 따라 ‘치유’적 삶에 대한 관심 또한 높아지고 있음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식물은 사람을 치유하는 만병통치약”이란 말처럼 흙을 만지고 동식물을 키우는 농축산업은 스트레스 해소와 강퍅해진 심성을 어루만져주는 명약으로 인식되고 있다. 빌 게이츠가 “이제 혁명이 일어날 산업은 농업밖에 없다”고 한 것도 농업의 이러한 치유 기능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치유농업은 네덜란드, 이탈리아 등 유럽에서 주5일제가 확산된 1950년대부터 시작됐다. 치유농업을 하는 케어팜(Care farm)이 네덜란드의 1,100여 곳을 비롯해 벨기에 595개, 프랑스 500개, 오스트리아 250개, 독일 162개 운영되고 있는 것은 그만큼 인기가 높음을 말해준다. 돌봄 서비스가 필요한 대상자가 농장에 참여해 체험, 치유, 관광 등을 즐기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비용을 부담한다. 이탈리아는 농업을 고용과 연계하는 형태로도 발전했는데, 장애인 같은 취약계층을 치유농장에서 고용하면 임금을 지불한다.

우리나라도 2000년대 주5일제가 도입되고 웰빙문화, 전원생활이 확산되면서 농업·농촌 체험 프로그램 형태로 치유농업이 시작됐다. 이 가운데 허브를 이용한 원예치료가 먼저 관심을 끌어 지금은 기업 형태로 운영하는 곳도 적지 않다. 허브는 식물에서 내뿜는 방향제가 사람의 심신을 안정시키고 식물이 갖는 독특한 향이나 성분이 약리작용을 갖고 있어 재배와 돌보는 과정에서 치유를 얻게 되는데 화장품과 향수, 음료, 식재료 등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이미 지방자치단체들도 치유농산업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고 있다. 강원도의 경우 2017년 국내 최초로 ‘치유농업 육성 조례’를 제정해 시군 단위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강원도 농업기술원은 동해안 대형 산불 진화에 참여한 소방관을 대상으로 ‘소방관 심신건강 농촌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해 참여한 소방관들의 스트레스 수치를 크게 낮춰주는 성과를 거뒀다.

농림부도 치유농업에 대한 정책적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그동안 도농교류, 농촌체험, 농촌휴가, 농촌관광 등의 농업·농촌 활성화 정책들이 치유와 힐링 관점의 농산업으로 확장되고 있다. 치유농업은 ‘사회적 농업’이란 용어로 정책에 반영되고 있는데, 이를 수행하고자 하는 단체들을 사회적 농업 활성화지원 시범사업 대상자로 선정해 지원하고 있다.

경북 경산 소재 (주)뜨락원예치료센터는 농촌체험을 중심으로 청소년 심리치료, 장애인 재활, 주부 우울증 치료, 고령자 치매예방 등 전문적인 치유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충남 홍성의 행복농장협동조합은 만성 정신질환자들의 재활을 위해 허브, 쌈채소 등을 재배하는 농사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전남 영광여민동락영농조합법인의 경우 노인들에게 삶의 보람을 일터에서 찾아 선물한다는 취지로 노인들이 하기 쉬운 야생화 재배 활동을 하고 있다.

치유농업은 농업·농촌 관련 활동을 통해 신체적·정신적 건강증진을 도모하는 농업의 하나다. 일반농업과 달리 농사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건강 회복을 위한 수단으로 농업을 활용하는 형태다. 그러나 농가소득 증대에도 도움이 된다. 농업·농촌을 활용해 도시민들의 건강한 삶을 돕는 측면이 핵심이지만 프로그램 운영에 여성들의 역할이 중요한 만큼 농촌여성들의 농외소득 증대 활동 측면에서 그 의미가 크다.

이탈리아의 협동조합 아그리콜투라 카포다르코(Agricoltura Capodarco) 농장은 농민, 원예치료사, 멘티, 정신과 의사 등의 도움으로 발달장애인, 약물중독자, 정신질환자, 치매노인 등의 재활치료를 돕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그런 점을 생각할 때, 우리나라도 특히 농협에서 치유농업을 적극 지원하고 운영할 필요가 있다. 지역이나 마을의 고유한 자원을 활용해 체험형, 정주형 등 다양한 형태의 치유관광농업프로그램을 운영할 필요가 있다. 도시농협이 농촌농협과 연계하여 도시민들이 참여하는 치유힐링프로그램을 운영하면 큰 인기를 끌 것이다.

우리나라 치유농업은 아직 도입 초기 단계다. 그런 만큼 정부의 정책이 매우 중요하다. 자칫 퍼 주기식이나 전시행정이 될 경우 또 다른 농업정책 실패 사례가 될 것이다. 정책 도입에 몇 가지를 제안하면 첫째, 한국적 치유농업의 틀을 마련해야 한다. 외국의 것을 복사해서야 성공할 수 없다. 규모화도 지양해야 한다. 우리 농업정책이 대농을 지향하다 실패한 것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둘째는, 의료비법 등 규제를 풀고 재원도 정부와 민간이 함께 지원하도록 해야 한다. 

권갑하 농협중앙회 도농협동연수원장  sitopi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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