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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이혼녀[윤석인의 문학동네]
윤석인 시인/한국문인협회 강화지부 사무국장 | 승인 2020.01.14 10:55

[여성소비자신문]내가 잘 다니던 카페가 있었다.

그 카페는 30대 중반의 여주인이 운영하고 있었는데, 그녀는 미인은 아니지만 술집 여자치고는 우리 동네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세련된 용모를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의 카페에는 3,40대 남자들이 들끓었고 심지어는 이 변두리에서 보기 드문 깔끔한 얼굴의 청년들도 눈에 띄었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같은 여자이면서도 처세까지 세련된 여 주인이 마음에 들어 시간만 나면 커피를 마시러 가기도 하고 술 마시는 친구들을 만나면 꼭 그 집에 들르기를 권하였다.
그러다 보니 자연 여주인과 친해졌고, 그녀가 말하지 않아도 가게 돌아가는 거하며 주변의 상태 등, 이혼 경력이 있는 그녀의 사생활까지 알 수 있었다.

시간이 흘렀다.
오고 가는 단골손님들의 발걸음으로 카페는 날로 번창을 했고 여 주인에겐 어느덧 고독을 달래줄 K라는 젊은 남자까지 생겼다.

“어디 갔어요?”
그녀가 보이지 않을 때마다 묻는 내 말에 여종업원은 대답 없이 약지 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함께 나갔다는 싸인을 해주었다. 허나 참 묘한 것은, 나야 들렀으니 차를 마시거나 술을 먹고 가면 그만인 손님일 뿐인데 그녀가 없는 카페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 어쩐지 서운해지며 내키지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술집 여 주인에게 남자가 생기면 손님이 줄어든다는 말이 생긴 것 같았다.

몇 달 후.
그 카페의 계속되는 출입으로 어렵지 않게 여주인의 연인까지 알게 되었다. 또한 그 남자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도….

남자는 뜻밖으로 순진한데가 있었으며, 그녀보다 서너 살 연하였음에도 무척 그녀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아니 푹 빠져 있었다.
“그 남자가 되게 좋아하나 봐요.”

 아주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어쩌다 그녀와 함께 마주 앉아서 차를 마시게 되었을 때 그녀에게 그렇게 물으면 그녀는 늘 빙그레 웃으며 자신도 싫지 안노라는 기색을 보이곤 하였다.

어느 날.
그날도 나는 집 안에 있기가 답답하여 역시 차 한 잔 마시려고 여느 때처럼 그녀의 카페에 들어섰다. 역시나 그녀는 그 애인과 동행하여 나갔는지 실내엔  간간한 음악과 함께 여종업원만이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또 나갔나 보죠?”
“예…”
여종업원의 대답을 들으며 평상시 잘 앉는 탁자에 자리를 잡았다.

‘어?’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그녀가 없는 날이 처음이 아닌데도 어쩐지 다른 날과 다르게 썰렁한 분위기였다.
“무슨 일 있었어요?”
“아녜요….”

여종업원 답변과는 달리 그녀의 얼굴엔 무언가 있었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추궁할 수가 없었다. 본인의 일도 아닌 것을 일하는 사람에게 주인의 사생활을 묻는다는 것이 어쩐지 겸연쩍어서였다.

나는 그 날 차 한 잔만 마시고 그 집을 빠져나왔다.
며칠이 흘렀다.

쓰고 있던 소설의 핵심 부분이 잘 피력되지 않아 바람도 쐴 겸해서 그녀의 카페에 또 들렀었다.
그녀는 평상시와 같이 반갑게 맞아 주었는데, 나는 며칠 전 일이 생각나 자리에 앉으면서도 그녀의 얼굴만 살피고 있었다.

“K씨와 헤어졌어요”
눈치 빠른 그녀가 내게 시큰둥하게 눈길을 던지며 마주 앉았다.
“왜요?”
“그 사람이 가정을 버리려 해서요”
“…?…”

참 의아했다. 그래서 헤어졌다니, 믿기지 않는 이야기였다.
“저는 요, 남자와 연애는 해도 가정을 파괴하고 싶지는 않아요.”
 “……”
 “그 사람이 이젠 집에 들어갈 생각도 않고 무조건 나와 있겠다는 거예요.   회사에서 퇴근하면 곧장 여기로 오는 거 아시죠?”
 “아, 예”

 “저는 그게 부담스러워요. 혼자 지내는 것도 그렇지만 남자가 날 구속하는  것도 싫고, 남의 가정을 깨면서까지 만나고 싶지 않아요.”

“그런데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이 쉽게 헤어지려고 해요?”
“방법을 썼죠 뭐.”

“……”
나는 너무 놀라 말보다 표정으로 물었다.

“부인에게 전화를 했어요, K씨가 매일 우리 집에 오니까 와서 데리고 가라구요.”
 “……”

“얼마 전 오셨다 가신 날, 그 날 낮에 부인을 만나서 얘기했어요. 내가 좋아서 우리 집에 자주 와 술 마시는 건 좋은데 개인적인 관계는 원치 않   는다구요, 조금 있으면 당신 남편이 여기로 올 거니까 아무 말 말고 데리고 가라구요.”

“그랬더니 뭐래요?”
“뭐라긴요, 부인이 아주 순진하던데요 뭐.”

“아니 내 말은 K씨가 뭐라더냐구요?”
“남자들은 다 뻔해요 나 없으면 못산다고 해도 조강지처 나타나면 다 꽁지   를 빼요. 푸훗- 그래서 그 걸 이용한 거죠.”

냉소를 띄는 그녀의 얼굴에 계속 듣고만 있을 수 없었다.

 “그렇게 끝나서 다행이네요 공연히 일 만들어 시끄럽게 하면 골치 아팠을 텐데….”

“이런 일 벌써 두 번째예요. K씨 만나기 전에 있던 사람도 몇 달 만나 주   니까 아예 여기서 살 생각을 해서 똑같은 방법으로 떼어냈어요.”

“예?”
결국 나는 놀라고 말았다. 그녀의 말대로라면 그녀는 최대의 방법으로 남자들을 떼어내는 것이었다. 정말 대단한 방법이었다.

대부분의 그런 여자들은 (이혼녀나 술집 여자를 비하 시키는 말이 아님) 남자가 그렇게 나올 때 내심 좋아하며 자신의 남자 사로잡는 매력으로부터 도취되어 ‘부인만 모르면 그만이지’하고 안이한 태도를 취하는 게 일반적인데…….
그 남자들이 그녀의 결단에 얼마나 혼이 났을까?

“허-허-허-헛”
그녀의 집을 나서면서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녀를 사랑한다고 갖은 아첨을 떨다가 부인이 느닷없이 나타나니까 황당한 표정을 지었을 남자들.

어이가 없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나는 소름이 돋았다. 뒤가 깨끗한 여자라기보다는 어쩐지 무서운 여자라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자신이 필요할 때는 언제든지 남자를 구할 수 있고 불편할 때는 가차 없이 버릴 수 있는 여자. 그렇게 자신있고 용감한 여자….

남자의 가정을 깨고 싶지 않다는 그녀의 말은 떼어버리기 위한 구실에 불과한 변명이었다.
“등신같은 남자들!”

정말 등신 같았다. 저토록 아얏 소리 못하고 떨어져 나갈 일을...
“저 남자도 주인 언니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언젠가 여주인이 자리를 비웠을 때, 혼자 맥주잔을 거푸거푸 비우던 남자를 보고 여종업원이 던지던 말이다.

‘그 남잔 다음 타자인가?’
갑자기 그 카페에 드나들면서 여 주인에게 잘 보이려고 주머니를 터는 남자들이 불쌍해졌다.

여자가 없다면 몰라도, 아니 자신에게 충실한 아내를 두고도 왜 그리 임자 없는 떡에 집착을 하는지….

정말 딱한 일이다.
‘또 다시 어떤 남자가 걸려들지 말아야 하는데….’

나는 정말 그렇게 바랬다.
더 이상은 더 이상은 어느 남자이든 간에 그녀의 필요에 의한 제물로 전락되지 않기를 말이다.


사랑하겠습니다
                                     윤석인(본명:윤인선)

사랑하겠습니다.

누군가 나를 떠민다 해도
이젠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지만
사랑하겠습니다.

벼랑 아래 바위틈에서도
피는 꽃처럼
나는 뒤로 떨어지면
부셔져버릴 몸이지만
사랑하겠습니다.

사랑하겠습니다.

내게로 오는 들꽃향기가
어울리지 않아도
그것이 다가오는
꿈이라고 생각하며
사랑하겠습니다.

나의 눈에 눈물 꽃이
떠나지 않지만
먼 미래에 타오를
불꽃이라 생각하며
사랑하겠습니다.

네!
사랑하겠습니다.

 


윤석인 시인/한국문인협회 강화지부 사무국장  siyoon717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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