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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갑하 시인의 시조사랑 캠페인 10]하여가(何如歌)“우리 민족시 시조를 읽고 쓰자 !”
권갑하 도농협동연수원장 | 승인 2019.12.31 10:07

[여성소비자신문] 하여가(何如歌)

이방원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 백 년까지 누리고저


단심가(丹心歌)

정몽주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태종의 친필. 이성계 집안의 유일한 문과 급제자

이방원

조선 제3대 왕(재위 1400∼1418). 세자책봉에 불만 품고 정도전 등을 살해, 왕자의 난을 일으킴. 즉위 후 의정부(議政府) 설치 등 관제개혁을 통해 왕권을 강화하고 최고의 법사(法司)인 의금부(義禁府) 설치. 조선조 국가 운영의 밑그림을 완성한 군왕.

 

정몽주

고려 말 문신 겸 학자. 의창을 세워 빈민을 구제하고 유학을 보급, 성리학에 밝았다. ‘주자가례’를 따라 개성에 5부 학당과 지방에 향교를 세워 교육진흥에 힘썼다. 시문과 서화에도 뛰어났다.

방송인 설민석은 조선시대 최고의 명장면으로 이방원과 정몽주의 결판을 들었다. 조선 500년 역사에는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사실이 적지 않은데, 최고의 장면이 이방원과 정몽주의 권력 투쟁이라니 씁쓸하기만 하다. 그런데 설민석이 이 장면을 조선 최고의 명장면으로 뽑은 배경에는 ‘하여가’와 ‘단심가’라는 두 편의 시조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시는 이미지라고 일찍이 플라톤이 얘기했는데, 위 두 편의 시조는 고려 말과 조선 초, 특히 조선 건국과정의 권력 투쟁을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문학적 의미 또한 높다. 내용을 조금만 듣게 되면 당시 두 사람의 대립 상황이 눈앞에 펼쳐지며 이방원의 권력욕이 빚은 잔인함과 선비 정몽주의 충성심이 뜨겁게 교차한다.

詩(시)가 아닌 때 時(시)자를 쓰는 ‘시조(時調)’라는 명칭이 “그 시대의 노래”라는 의미를 지닌 ‘시절가조(時節歌調)’에서 온 것임을 생각하면 시조야 말로 시대 정서와 상황을 잘 담아내는 대표적인 시 그릇이라 할 수 있다.

위 두 편의 시조를 통해 우리는 고려 말에서 조선 초로 이어지는 격변의 한 시대를 만나게 된다. 그야말로 그 시대의 노래요, 시인 것이다.

‘보릿고개’라는 이영도 시인의 단시조는 1960년대 전후 춘궁기 상황을 리얼하게 담아내며, 필자의 시조 ‘누이감자’는 1960~7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 남아선호문화에 희생된 이땅의 누이들의 아픔을 상징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이처럼 시조는 그 시대의 정서를 담아내는 오늘의 문학이다.

요동정벌을 가다 군사를 돌려 ‘위화도회군’이란 정변을 일으킨 이성계는 권력을 장악하고 역성혁명을 노렸지만 고려의 충신 정몽주라는 큰 산이 가로막고 있었다. 정도전을 보내 회유를 했지만 효과가 없었다. 그런 와중에 이성계가 사냥을 하다 다치는 일이 발생했고 정몽주가 병문안을 가게 되었다.

이때 이성계의 둘째 아들 방원이 정몽주 제거 계획을 세우고 ‘하여가’로 마지막 회유를 하였다. 이에 정몽주는 그 유명한 '단심가'로 대응했다. 정몽주의 속내를 읽은 방원은 더 이상의 회유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고 정몽주를 선죽교에서 죽이게 한다.

새 왕조 건설을 반대한 최대 세력을 제거한 이성계는 자신을 따르는 정도전 등과 새 왕조를 건설하니 그게 조선이다.

권갑하 도농협동연수원장  sitopi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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