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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소비자주권 확립을 위한 법제정비 시급하다
연기영 동국대 법대 명예교수 | 승인 2019.12.30 14:47

[여성소비자신문]  2019년 10월 11일 싸이월드가 사전에 아무런 통보 없이 갑자기 접속 불능 상태가 됐다. 싸이월드를 가끔이라도 접속했던 사람들은 그야말로 ‘멘붕’에 빠졌다.

싸이월드가 불러온 데이터 소비자주권 논쟁

그 안에 담겨 있는 글과 사진, 동영상이 한순간에 사라졌기 때문이다. 한때 월간 이용자가 2000만명에 달했다. 그러나 지난 수년간 새로운 소셜미디어들과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싸이월드의 서버를 운영하던 회사는 경영난으로 이미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싸이월드 외에도 그동안 많은 인터넷 서비스가 사라졌다.

포털 서비스 프리챌 역시 2000년대 초반 전성기를 누렸지만 싸이월드가 인기를 끌면서 서비스가 종료됐다. 데이터 백업을 위한 기간은 한 달이 주어졌지만 해당 기간 내에 백업되지 않은 데이터는 그대로 폐기됐다.

아무리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이 보유한 사이트라고 하지만 개인이 남긴 잊혀질 데이터를 이용자 스스로 삭제하거나 다운로드할 수 있는 데이터 주권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요구가 강력하게 제기되었다. 결국 정부의 중재 노력으로 싸이월드 도메인 사용기한을 연장하기로 하여 한시적으로나마 싸이월드 사이트는 다시 접속이 가능해졌다.

이른바 ‘싸이월드 접속 불능 사태’는 ‘데이터 소비자주권’에 대한 논쟁에 불을 지피게 되었다. 데이터 소비자 주권이란 ‘소비자 자신에 관한 데이터의 생성, 저장, 유통 및 활용에 대한 정보 주체인 소비자의 배타적 권리로 소비자 이익을 위해 데이터의 흐름, 공개 비공개 여부, 사용 등을 소비자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

개인정보보호 법제의 근간을 이루는 개인정보 자기 결정권과 상당 부분 유사한 측면도 있으나, 권리의 주체와 객체의 접근 방향에서 일부 차이점이 있다. 소비자 자신의 데이터가 어디서, 어떻게, 어떤 목적으로 사용될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이다. 개인 정보에 대한 권리는 자신에게 있으며 자신의 데이터가 어디에서 어떻게 쓰이는지 알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현행법에는 서비스 업체가 폐업해 데이터를 삭제해 버리면 이용자는 이를 보상받을 방법도 전혀 없고, 데이터 ‘폐기’는 불법도 아니다. 정보통신망법 제29조에 따르면 인터넷 사업자가 사업을 폐업하게 되면 보유한 개인정보는 모두 파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사이트의 폐쇄는 곧 정보의 폐기를 의미한다. 개인정보를 보호하고 정보 유출을 막기 위함이다.

이 법에 따르면 이용자가 1년 기간 동안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을 경우 이용자의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개인정보 파기도 가능하다. 따라서 싸이월드 서비스가 종료되거나 이용자가 싸이월드에 오랜 기간 접속하지 않으면 데이터를 싸이월드가 삭제하는 건 불법이 아니다.

최근에는 특정 SNS나 클라우드에 축적되는 데이터를 다른 서비스로 쉽게 이전할 수 있도록 하는 데이터 이전 서비스(Portability Service)가 제공되는 시스템을 보유하고 있는 정보회사들이 많아졌다. 싸이월드엔 없었지만, 페이스북의 경우엔 이용자가 쉽게 자신이 올렸던 사진이나 댓글, 영상 등 모든 데이터를 모아 다운로드할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

세계 각국의 ‘데이터 소비자주권’ 관련 법

미국은 개인의 소비자의 데이터 주권을 보호하는 법률의 규정이 있다. 캘리포니아 주는 소비자 프라이버시 법(Consumer Privacy Act of 2018 : CCPA)을 2018년 6월에 제정해 2020년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미국은 연방법이 있고 각 주(State)마다 별도로 제정해서 시행하는 주(State)법이 있는데, 이 법은 물론 캘리포니아 주에서 제정하여 시행하는 법이다. 연방법이 아님에도 이 법이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이유는 캘리포니아 주는 미국 인구의 10% 이상을 차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세계 5위의 경제 규모를 가진 곳이기 때문이다.

구글, 애플, 페이스북, 트위터 등 글로벌 아이티(IT)기업의 출발지인 실리콘 밸리가 있는 곳으로 수많은 데이터 거래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거점이기 때문에 향후 미국 내 관련법제의 제정 또는 개정에 지대한 영향을 줄 수 있다.

이 법은 미국 내 기존의 산업 별 개인정보 보호법들과는 달리 광범위하게 개인정보보호 관련 내용을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자연인 뿐 아니라 가계(household)에 관한 정보도 보호 대상에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정용 전자 제품 및 각종 사물인터넷(IoT) 제품들도 모두 적용 대상이 되며, 법정 손해 배상과 집단 소송을 인정하고 있어 데이터 소비자주권이 확실히 보장될 수 있다고 본다.

유럽연합(EU)은 일반정보보호법(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 : GDPR)을 제정하여 2018년 5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유럽연합 내에서 운영하는 회사 또는 모든 시민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는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새로운 개인정보 보호 지침을 준수해야 한다. 유럽연합 내에서 본인의 개인정보가 수집된 모든 소비자에게 적용되므로 유럽인이 아니더라도 유럽 내에서 개인정보를 처리하게 되는 외국인에게도 적용된다.

이 법을 위반하는 기업은 연간 매출의 4%에 해당하는 벌금을 물어야 한다. 이 법은 소비자(이용자)가 기업이 보유한 자신의 개인 데이터를 삭제하거나 다운로드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고, 자신의 데이터를 자신이 지정한 제3자에게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데이터 결정권을 인정하고 있다.

유럽연합이 이 법을 시행함에 따라 호주, 일본, 브라질, 캐나다 등 많은 국가들이 개인정보와 데이터 보호에 관한 법률에 그 내용을 수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

일본은 2017년 개인정보보호법을 개정하여 새로운 데이터 유통 모델로 정보주체인 개인 중심의 데이터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일본은 개정 개인정보보호법에서 익명가공정보 개념을 도입해 데이터 유통 시장의 기반을 마련했다. 정보거래 중개기업이 정보주체의 위임을 받아 타당성을 평가한 후 데이터를 제공하는 새로운 데이터 유통 모델을 제시하면서 정보주체인 개인 중심의 데이터 생태계 구축에 나서고 있다.

반면에 중국은 개인의 데이터 권리보다 국가의 데이터 권리를 내세우며 자국 기업들의 데이터 활용을 장려하고 있다. 2017년 6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네트워크보안법은 중국에서 생성된 데이터의 중국 내 저장을 강제하고 정부가 요구하는 기술적 협조를 기업의 의무로 규정하고 있어 정부의 요구가 있을 경우 기업은 데이터 암호해독 정보도 제공해야 한다.

데이터 소비자주권 확립을 위한 법제 정비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데이터 소비자주권에 대한 논의를 이제 막 시작한 단계이다. 아직 국내 데이터를 보호하기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가 미흡하고 세계 데이터 주권 확보 경쟁에서도 후발주자가 되고 있다. 가장 심각한 것은 외국 기업들이 국내에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데이터를 수집하고 무분별하게 반출하는 것을 막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 국민들은 일상생활의 대부분을 디지털 서비스에 저장하고 있지만 데이터 주권이 소비자에게 없다 보니 이용자가 각종 서비스에 남은 자신의 정보를 수집하거나 요청하는 것이 쉽지 않고 업체가 폐업하면서 데이터를 삭제해도 손해배상이나 보상받을 방법이 없다.

이제 국가적 차원에서도 데이터 주권의 확립이 절실하다. 미국 등 데이터산업 강대국들로부터 국가정보를 보호할 필요가 있다. AWS와 구글 클라우드, 마이크로소프트의 애저에 데이터를 저장하는 글로벌 클라우드 시대를 맞아 데이터의 흐름에는 국경이 없어진지 오래다.

개인적인 데이터의 소비자 권리 침해는 더욱 심각한 수준이다. 구글 및 페이스북 등 글로벌 플랫폼의 ICT 서비스 독과점 및 시장 지배력 강화로 인해 데이터에 대한 소비자의 선택권 제한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또한, 고도화된 데이터 분석 기술과 복잡한 알고리즘은 기업과 소비자간의 기술 격차를 심화시키고 소비자의 알 권리를 약화시킨다.

미국과 유럽연합의 새로운 법제를 모델로 삼아 소비자의 데이터 주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법제도의 정비가 신속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개인정보 자기 결정권은 헌법에 보장된 기본적 인권이며 정보 주체성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을 보장하는 것임을 새삼 강조하고 싶다.

연기영 동국대 법대 명예교수  yeunky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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