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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겸 칼럼 19]알아차림의 실천 수행: 차의 길 다도
하도겸 나마스떼코리아 대표 | 승인 2019.11.26 21:48

[여성소비자신문]어제 오늘 내일 늘 같은 실수를 번복한다. 꾸지람도 많이 듣고 스스로도 반성을 많이 한다. 하지만 잘 고쳐지지지 않는다. 그래서 살피고 살핀다. 조금 나아진 면도 있지만 그게 스스로의 만족일 때도 있다.

안 고치면 미리 안고쳤다고 혼나고 하면서 혼나고 해놓고도 혼난다. 남이 혼내는 것은 이제 두렵지 않고 오히려 스스로의 반성과 성찰의 시간이 무섭기만 하다. 그렇지만 늘 하루에 10분 정도 명상이라는 시간을 통해 그 무서운 시간을 반갑게 맞이해야 한다.

하루 가운데 10분도 길다면 매우 긴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3분도 내기 어려운 실정이다. 그래서 화장실에서 변기에 앉아서도 한다. 하지만, 이동하는 시간이 있다면 출퇴근 시간이라도 대중교통에 몸을 맡기고 앉아서든 서든 눈을 감은 듯 만 듯 한다. 자칫 잠을 잘 수도 있지만 그 조차도 염두에 두고 계속 명상에 든다면 그게 훌륭한 꿈수행이기도 하다. 그리고 가장 좋은 것은 역시 혼자서 차마시는 시간이 아닌가도 싶다.

때로는 점검하는 차원에서 차를 나누며 선(禪)도 나누는 담선(談禪)의 시간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차를 마시며 영원히 같은 길을 함께 할 도반과 이야기 나누는 시간도 차의 길 다도 그 자체가 아닌가 싶다. 여하튼 우리가 아는 다도는 그리 어려운 형식의 길만은 아니다. 형식도 매우 중요하지만, 그만큼 또는 그 이상 중요한 것이 바로 알아차림의 연속이라는 흔히들 의식이니 생각의 흐름이라고 떠들어대는 마음의 흐름이 아닐까 싶다.

그냥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늘 정지된 찰라의 순간이 지속된다는 측면에서 차이가 있다. 물론 그 조차도 지나면 다 같은 것이라고 대범하게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입만 보살이 떠드는 유언비어로서 실제 수행과는 거리가 있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닐 듯 싶다. 현미경까지 보지 않더라도 물의 흐름 속에서는 물방울들이 보이고 그것들이 잠시 멈춘 듯한 모습을 보지 못한다면 내 의식은 정지된 것이 아닐 수 있다. 물 한방울에도 세상이 담겨있는데 말이다.

정지라고 해서 완전히 정지된 것이라 어쩌면 0.001초 단위의 멈춤이라 정지라고 할 수도 없고, 그걸 인지할 수조차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0.001 초 사이에 모든 장면을 다 보고 기억하고 그런 필름들의 연속으로서 영화처럼 삶을 바라볼 수 있어야 명상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도 싶다. 비쥬얼이 전부는 아니지만 시각화하는 관(觀) 역시 중요한 요소라고 이해하면 좋을 듯 싶다.

여하튼 그런 무서운 반성의 시간을 즐겁게 지내면서 늘 마음 먹은 것은 늘 같은 결론이다. 참회를 제대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참은 이전에 잘못을 진정 뉘우치는 것이며 회는 앞으로는 다시 안하겠다는 뜻이라고 한다. 그래서 늘 일의 기승전결을 되돌아 보면서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점검을 한다.

그 결과, 새로 일을 해야 할 때는 이게 지금 내가 이것부터 정말 먼저 해야 할 일인지 봐야 한다는 것이다. 정해진 일이나 시킨 일이면 그냥 바로 하면 되지만 그게 아니라면 책임 있는 사람에게 물어야 한다. 그래서 하라고 하면 해야지 그런 지시를 받거나 일의 절차를 의논하지 않고 하면 안된다. 그렇게 하는 것을 제멋대로 한다고 하는데 늘 겸손하지 못해 그런 실수를 하곤 한다.

아울러 새롭게 하기 위해 미리미리 준비해야 할 것은 없는지 중간에 갑자기 뭔가 더 필요한 것은 없는지도 내다봐야 한다. 하다가 일을 중단하고 준비물을 사러 가는 일은 없어야 효율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끝으로 시작하기 전에 이미 시작한 다른 일 가운데 제대로 끝내지 못한 것은 없는지도 봐야 한다.

미완의 것이 있다면 정말 이것을 놔두고 새로 일을 해도 되는지도 살펴야 한다. 그렇게 잡초처럼 일어난 일은 가지를 치며 커다란 나무로 커진다. 하지만 가지치기를 잘하지 못하면 숲은커녕 나무도 될 수 없는 듯하다.

그래서 늘 명상에서 머리로 알게 된 것을 늘 염두에 두고 스스로에게 숙지시켜야 하나보다. 그런 지식(알음알이)에 대해서 깊이 명상해야 조금이라도 실천과 연결될 수 있다. 지행합일이라서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는 실천이 더 중요하다. 실천이 안되는 앎은 사실 허무한 것이니 그 역시 헛된 것이다.

헛되었다고 해서 공(空)이 아니라 허(虛)가 되니 속에 꽉 찬 것이 없는 겉만 화려한 공갈과자가 될 수도 있다. 물론 나름 의미가 있다고 애써 말하지만 실제로 그 의미를 아는 사람은 드물 수 있고, 그 의미도 모르고 말하는 경우도 적지 않을 수 있다.

늘 같은 실수를 번복하기 직전에 알아차려야 되는데 그게 잘 안된다. 계속 그러면 삶의 실천자 나아가 수행자가 아니며 그런 사람에게 명상은 가성비가 무척 떨어지는 소비의 시간이 되기도 한다.

더 이상 의미가 없게 되는 이런 시간이 안타깝다면 정말 진심으로 애써야 한다. 그런 습관의 끈을 단호하게 끊어버랄 수만 있다면 이미 지혜인 반야를 얻은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지혜의 보살인 문수보살은 티베트 도상에서 늘 칼을 높이 쳐들고 있는 듯하다. 실수가 시작되기 전에 언제든 자를 수 있도록 말이다.

“아 이거 아니었는데 또 실수했다. 왜 이렇지. 정말 매일….” “이렇게 하면 안되는데 또 했네”는 바보들의 행진이라는 우리 속세의 삶의 연속일 따름이다. 정말 해서는 안된다면, 하기 직전에 “아 이러면 안되는 거지, 또 실수할 뻔 했군”하면서 바로 알아차리고 단칼에 잘라버려야 한다.

늘 느끼지만, 일을 시작하기 전에 늘 의논해야 한다. 혼자서 제멋대로 하고 나서 후회하지 말고 말이다, 결국 하고 나서가 아닌 하는 중에 알아차리고 나아가 하기 전에 알아차릴 수만 있다면 그런 알아차림의 명상은 성공한 것이다. 늘 그런 알아차림에 신경을 쓰면서 차를 우리는 수많은 과정에 하나하나 정성을 쏟는다.

일기일회라고 하는데 굳이 사람이 전부가 아니다. 물아일체라고 한다. 차도 차도구도 모두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소꿉놀이하듯이 즐겁게 일생 마지막으로 최후의 차한잔을 함께 한다. 그렇게 형식이든 마음이든 최선을 다해 차를 대하고 뜨거운 물인 탕을 대하고 다구들을 접하면서 스스로 후회없는 삶의 길을 걷는다.

늘 완전한 만족은 못하지만 늘 기뻐하면 그렇게 행복의 길을 걸어야겠다. 요즘 차를 마시면서 가끔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알아차림의 실천 수행이 곧 차의 길인 다도(茶道)가 아닐까 하는.

사진은 독일 드레스덴의 궁전박물관에 소장된 자사차호이다. 소장년도 등을 보고 17세기의 것이라고 하는데 참으로 기이하다.

하도겸 나마스떼코리아 대표  dogyeom.h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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