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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 인쇄 골목 디채 기획실 장영진 실장 “인쇄업의 명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변화를 몸소 느꼈어요”스마트폰과 디지털 보급으로 충무로 인쇄골목에도 변화 일어나...충무로 인쇄골목의 부활은 계층 간의 협업으로
김경일 기자 | 승인 2019.11.12 14:46

[여성소비자신문 김경일 기자]‘충무로 인쇄골목’이라 일컫는 곳은 을지로 3가역 인근과 명보아트홀(구 명보극장)을 지나 중구청에 이르는 1.5km 구간으로 국내 최대 규모의 출판, 인쇄업체 밀집지역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충무로 인쇄골목은 인쇄 관련 업체가 약 5500여곳이 있다. 종사하는 인력만 1만2000여 명으로 서울 전체 인쇄업의 67.5%가 이곳에 있다. 이곳에서는 카달로그, 명함, 스티커, 청첩장, 카드, 다이어리, 팜플렛, 학위논문, 달력, 등 각종 인쇄물을 취급하고 있다.

충무로 인쇄골목은 광고와 홍보물을 생산하는 기지로 수많은 장인들이 생업을 하고 있는 곳이다. 그곳에서 1997년부터 기획사를 운영하는 장영진 실장은 국민대 패션디자인과를 졸업한 후 기업체 홍보실을 거쳐 22년간 기획사를 운영하고 있는 충무로 인쇄골목의 터줏대감이다.

충무로의 지명은 이순신 장군이 태어난 곳은 조선 한성부 건천동(현 서울특별시 중구 인현동 1가 31-2/을지로18길 19)으로 광복 후 이순신 장군의 시호를 따 온 데서 유래된다.

또 충무로는 조선시대 활자의 주조를 담당하던 관청인 주자소(鑄字所)가 있던 곳으로, 남산스퀘어빌딩(구 극동빌딩 충무로 3가 60-1)에 가면 표지석이 있다.

역사적으로 충무로는 영화의 메카로 부르기 전부터 인쇄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충무로 인쇄 골목의 역사는 일제 강점기 때 ‘경성인쇄공업조합’이 중구 삼일대로에 설립된 후 일본인 인쇄업체들이 밀집하면서 시작되었다.

해방 이후 중구와 종로구일 때 다수의 인쇄업체들이 운영되었지만 6.25전쟁 때 시설이 파괴되었다. 그후 1968년 세운상가가 종로 3가와 퇴계로 3가를 잇는 상가단지로 조성되기 시작하면서, 충무로 일대에 인쇄, 홍보 판촉물 등을 취급하는 인쇄업체들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인쇄골목은 자연스럽게 시작했다.

1983년 장교동(長橋洞) 일대의 도시재개발로 인해 500여 개의 인쇄공장들이 인현동(仁峴洞) 인근으로 이전하면서 충무로 인쇄골목은 인쇄업의 중심지로 본격 부상했다.

충무로 인쇄골목은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 충무로의 절정을 이루었지만, 2000년대로 들어서면서 제3차 산업 혁명의 핵심 기술인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과거에 비해 규모가 축소되었다.

한때 충무로 인쇄골목은 인쇄산업의 쇠퇴와 폐수와 분진 등의 공해와 소음 문제 등에 인해 철거대상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최근에 서울을 대표하는 도심 5대 특화 제조업 집적지구로 맞춤형 도심재생산업을 추진하겠다는 계획 발표로 인쇄골목은 현대화와 첨단화를 위해 모색하고 있다.

충무로 기획사를 통해 들어본 인쇄골목

기획사는 고객사의 의뢰에 따라 디자인기획과 운영을 통해 인쇄물 또는 판촉물등 결과물을 납품하는 회사이다.

최상의 결과물을 도출하기 위해 기획사는 디자이너를 통해 그래픽디자인, BI, CI, 편집 등을 하며, 좋은 디자인 재료를 위해 카피라이터, 포토그래퍼, 일러스트레이터를 고용하기도 한다. 고객사는 주로 기업체나 관공서이며, 그동안 대기업 및 중소기업과 광고대행사 등이었다. 충무로 인쇄골목에서는  디자인, 인쇄 후 가공까지 한곳에서 할 수 있다.

“이곳 충무로 인쇄골목에서는 대량인쇄부터 다품종 소량의 인쇄, 특수 인쇄까지 모두 가능합니다. 따라서 업무 처리를 빠르게 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고 이곳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수십년간 한 분야에서 일을 해온 장인분들이기 때문에 변수가 발생하더라도 신속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장 실장이 처음 기획사 운영을 시작한 1997년 당시가 바로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변화하는 시기였다. 당시에는 식자집, 소보집, 드럼스캔집, 이미지CD집, 필름현상소 등 많았다. 그러나 이런 곳들이 이제는 명맥만 겨우 이어가거나 사라진 상태이다.

그 당시 편집은 주로 애플의 맥킨토시 컴퓨터로 했다. 그러나 이제는 누구나 윈도우 PC로 편리하게 편집을 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의 변화를 몸소 느낀 업종이 바로 인쇄업이라고 할 수 있다.

디지털의 보급으로 인한 인쇄업의 쇠퇴

<사진 여성소비자신문 김경일 기자>

예전에는 작은 가게가 오픈을 하면, 전단지를 만들어 배포를 하며 광고를 했다. 그러나 요즘은 블로그, 인스타그램, 페이스북을 통해 광고를 하기 때문에인쇄 일거리는 예전에 비해 많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환경이 되었다.
“2000년에 접어들면서 인터넷이 보급되고 기술이 발달하면서 기업체 인쇄물이 서서히 줄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2007년경 아이폰 출시를 시작으로 스마트폰 보급화가 급속히 이루어졌잖아요.

이렇게 모바일 시대로 접어들면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했던 홍보물로 사용되었던 카달로그나 브로쉬어, 리플렛 등의 일감이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충무로 인쇄 골목의 일감은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어요.

2019년 9월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인쇄업체이자 100년의 역사를 지닌 '보진재'가 10년간 적자를 이기지 못하고 폐업하게 된 게 바로 인쇄업의 쇠퇴를 알려주는 신호탄이었습니다.“

보진재는 1912년 8월 15일 종로 1가 '보진재석판인쇄소'라는 상호로 처음 문을 열었다. 고(故) 김진환 창업주부터 현 대표까지 4대째 인쇄업을 이어온 회사다. 1933년에 국내 최초로 크리마스씰을 인쇄한 곳이기도 하다. 1960년~70년대에는 이곳에서 국민학교 교과서를 찍었고, 세계 성경 인쇄 물량의 30%를 확보한 기업이기도 했다.

“인쇄업의 역사를 대표하는 기업이 폐업하게 된 것은 인쇄업에 종사하는 사람으로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시대가 원하는 인쇄 시장의 변화에 대한 준비를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시대가 요구하는 인쇄시장 변화와 굿즈와 독립출판

장 실장은 “인쇄골목의 경기가 예전처럼 좋지는 않지만, 긍정적인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고 말했다.

“K-POP의 붐으로 굿즈 시장의 인쇄 수요가 증대되고 있어요. 또 소확행, 가심비, 그리고 레트로가 유행하면서, 다시 아날로그의 감성을 찾는 이들이 증대되고 있어요. 이런 추세를 타고 1인 출판이 일반화되는가 하면 독립출판물도 다시 늘어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장 실장은 “지자체 별로 각종 축제와 프리마켓이 많아짐에 따라 젊은 작가들의 예술활동과 마켓이 공존하는 공간이 제공되어 좀더 특별한 인쇄를 원하는  계층이 증가되고 있다”고 말했다.

충무로 인쇄 골목은 ‘힙지로’라고 불리우는 을지로 3가 일대가 포함되어 있고, 다시·세운 프로젝트 구역인 진양·인현상가가 있다. 서울시에서는 2020년 4월까지 지역의 랜드마크가 될 ‘창작인쇄산업’ 거점공간을 마련한다고 밝혔다.

세운상가 일대 산업재생을 위해 1단계로 세운상가, 청계상가, 대림상가에 공중 보행로를 연결했다. 그리고 디지털 기술과 청년기술자들을 연결하는 스타트업 창작, 공간을 마련했다.

프로젝트 2단계로 삼풍상가, 인현상가, 진양상가를 공중 보행로로 연결해 충무로, 인현동, 을지로, 오장동 일대의 인쇄골목을 창작인쇄산업 거점으로 재생하는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앞으로 진양상가는 독립출판물을 제작하고 구매할 수 있는 공간이 들어서고, 인현 지하상가에는 박물관과 인쇄기술학교 및 인쇄공방 같은 시설이 만들어질 예정이다.

“세운상가 앞 종묘에서 시작해 남산 밑에 진양상가까지 이어지는 보행 축이 완성되어 힙지로와 더불어 새로운 명소가 될 것이라고 해요. 젊은 층에서 레트로가 유행을 하면서 이곳 충무로 인쇄골목도 관광객들과 젊은이들이 많이 오고 있어요. 특별한 카페나 식당 등이 생기는 것을 보면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요.”

예술가들의 성지, 충무로의 변화를 위해

을지로의 건물은 일률적인 공간이 아니기 때문에 그 공간이 젊은 예술가들로 재탄생, 재해석되면서 많은 젊은 층의 호응을 입어 ‘힙지로’로 알려지게 되었다. 구 도심의 아름다움을 보존하고, 재생시키고자 하는 바램을 도시 곳곳에서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충무로 인쇄골목 역시 예술가들이 모이면서 새로운 인쇄 상품이 기획되어 상품화되고, 있다. 특히 이곳은 예술가들의 생산기지로 혁신되고 있으며, 주변은 전시장과 판매를 함께 할 수 인프라가 조성되어 가고 있다.

장 실장은 디자이너 출신으로 이런 변화에 디자인부터 인쇄가 완성되는 전 과정을 이미 구축된 인쇄 장인들과의 네트워크로 협업하여 납품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하고 있다. 즉 충무로 인쇄골목의 ‘조율자’의 역할을 하는 기획사가 돼야겠다고 마음 먹은 것이다.

“좋은 작품을 위해 색깔이 강한 예술가들의 요구를 원할하게 중간에서 소통하고, 조율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젊은 작가들이 직접 인쇄를 모두 할 수는 없죠. 특히 독립출판시장이나 굿즈 시장은 대부분 대량생산이 아니라 다품종 소량생산을 원하고 있어요. 반면 작업의 난이도는 높아지기 때문에 이를 원할하게 처리하기 위해서는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협업을 통해 새로운 명소로 재탄생

천편일률적인 도시에 구 도심은 역사적으로도 시각적으로 색다른 신선함을 준다. 이것이 바로 요즘 젊은 세대의 마음을 움직였을 것이다. 아주 오래된 골목에 빼곡히 들어선 인쇄관련 가게를 보면서 이들은 어쩌면 하나를 위해 움직이는 조합 같은 느낌을 받았다.

장 실장은 작은 인쇄물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 이 작은 가게들을 돌아다니며, 다음 공정을 처리하기 위해 분주하다. 이 모습은 마치 이미 수십년 전부터 협업과 공유경제의 논리를 받아들인 곳으로 보여진다. 이런 모습은 새로운 변화의 물결을 맞이하기 위해 이미 준비하고 있었다는 느낌을 받게 한다.

“세운상가와 진양상가를 잇는 새로운 길과 주변 ‘힙지로’라고 불리우는 곳이 만나는 중심에 ‘충무로인쇄골목’이 있습니다. 그곳에는 젊은 예술가들의 수많은 작품의 생산기지로 재탄생할 것이 이곳에서 희망의 등불이 되는 것이 제 꿈입니다.”

 

김경일 기자  imagemod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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