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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단체협의회 60년 여성운동사]가족법 개정운동 오랜 끝에 호주제 폐지되다여성노동운동 전개, 버스 차장 전화교환원 기자 등 차별에 맞서다
김희정 기자 | 승인 2019.11.12 12:03

[여성소비자신문 김희정 기자]가족법 개정운동은 한국여성단체협의회(이하 여협)와 회원단체들 그리고 다수의 여성단체들의 협력으로 전개되었다. 여협은 1964년 여성문제상담실을 개설하고 여성의 불평등한 제도, 관념을 철폐하기 위한 여성운동을 펼쳤다.

범여성 가족법개정촉진회(가칭) 결성대회 사진 1973년 6월 28일 <사진제공 한국여성단체협의회>

1970년 제8회 여협 전국여성대회에서 남자 본위의 현행 가족제도는 남아선호도를 높이는 요인이 되므로 가족법상의 남녀차별을 폐지하라는 건의문을 채택하고 가족법 개정운동을 전면적으로 개시했다.1973년 이숙종 여협 회장은 67개 여성단체들과 연합하여 ‘범여성가족법개정촉진회(촉진회 회장 이숙종)’를 결성하고 호주제 폐지를 포함한 10대 개정요강을 발표했다. 그 개정요강이 다수 반영되어 1977년 12월 가족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그 개정내용은 부(父)만이 행사했던 친권을 부(父)와 모(母)가 공동으로 행사하게 하고, 남녀차별이 있었던 상속분을 동일하게 하는 등의 내용이다(미혼자녀의 경우만 해당). 하지만 호주제를 비롯한 일부 가족법 조항에 여성에게 부당한 제도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1970년대 가족법 개정운동은 여성계의 연대활동과 국회 및 정부의 협조로 이뤄졌고, 국제적으로는 여성지위 향상을 위해 UN이 1975년~1985년 10년간을 ‘세계여성의 해’로 선포함으로써 이에 힘입어 이 10년 동안 한국을 비롯한 유럽 각국에서 남녀차별적 가족법 규정이 대폭 개정되는 등 전반적으로 법적 발전이 있었다.

가족법 개정을 위해 국회 공청회에 참석한 본회 대표들. 1977년 11월 7일 <사진제공 한국여성단체협의회>

가족법 개정운동의 핵심내용은 가족법상의 남녀차별 해소, 즉 아들보다 딸을 우선하여 상속시키는 불합리한 호주상속제 개정, 부모의 동등한 친권 행사, 동성동본불혼 원칙(성과 본이 같으면 촌수가 멀더라도 무조건 혼인금지) 폐지, 이혼시 재산분할청구권 인정, 남녀평등한 재산상속분 인정 등이었다. 가족법 개정운동의 주체는 집단적·조직적 연대활동의 전략 차원에서 ‘여성단체들 간의 연대’를 통해 구성되었다.

처음 가족법 개정운동은 여협과 회원단체인 가정법률상담소의 역할이 컸다. 1957년 12월 친족상속편을 포함한 신민법(1960년 시행)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여성단체들의 의견은 반영되지 못했다.

195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가족법 개정운동은 여협이 창립(1959년)되기 전에 이뤄졌고, 이때 참여한 여성단체는 대한YWCA연합회, 대한부인회, 대한여자청년회, 대한여자국민당, 대한조산협회, 여성문제연구회, 여자선교단 등 7개 여성단체였다.

이후 여학사협회를 포함한 다른 여성단체들까지 연대하여 이를 관철하기 위한 가족법 초안 심의요강에 대한 의견 제출, 가족법 개정 필요성에 대한 강연과 좌담회 개최, 민의원 의장과 국회의원 전원 및 대통령에게 청원서 제출과 시위 등 다각도의 개정운동을 펼쳤다. 이러한 여성운동의 힘은 이후 여협의 회원단체가 된 이들 여성단체들이 주축이 되어 1959년 여협을 창립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가족법 개정 추진을 위한 여성 단체장 회의 1984년 7월 18일 <사진제공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여성단체들과 법학자들의 노력으로, 1980년 개정헌법에 ‘혼인과 가족생활에서의 개인의 존엄과 양성평등’ 규정(제34조)이 신설되었다. 여협 손인실 회장과 여성단체장들을 비롯하여 당시 보건복지부 김정례 장관의 협력으로 1983년 한국여성개발원이 설립되었다.

그해 5월 ‘유엔여성차별철폐협약’ 서명(세계여성의 해 선포의 실천사항)과 12월 국무총리 산하 ‘여성정책심의위원회(여성부 전신)’ 설치 등 여성관련 정책과 입법이 구체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었다.

한국여성단체협의회는 1983년 제20회 여협 전국여성대회(당시 손인실 회장)에서 채택된 ‘가족법 개정 완결’ 결의문을 정부에 건의했으며, 1984년 여성단체 대표들을 결집해 ‘가족법 개정을 위한 여성연합회’를 발족했다.

이후 여협은 가족법개정 촉진대회 개최, 가족법개정 촉구 성명서 발표, ‘개헌과 여성-양대 정당에 묻는다’ 공청회를 개최하고 가족법개정 촉구를 위한 건의문 발송 등 끊임없이 가족법 개정운동을 전개했다.

마침내 1989년 12월 19일 대폭적인 가족법 개정이 이뤄졌다. 개정가족법에는 친족범위의 남녀평등(8촌 이내의 부계혈족과 4촌 이내 모계혈족으로 나누던 것을 ‘8촌 이내 혈족’으로 단일화하는 등)과 이혼시 재산분할청구권이 반영되었다. 그 사이 여협 등 여성계의 많은 노력으로, 1987년 제9차 개정헌법에 혼인과 가족생활에서의 개인의 존엄과 양성평등에 대한 ‘국가의 보장의무’조항이 신설되었다(제36조 제1항).

2003년 호주제 폐지를 위한 민법개정(안) 국회의원 입법 발의 및 272인 발족 기자회견 <사진제공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여협은 가족법에 여전히 남아있던 호주제 폐지를 위해 1990년 개정가족법 해설책자 발간과 1993년 가족법개정 국회청원 등 계속적인 운동을 벌였다. 2000년에 여협은 다른 여성단체들과 함께 ‘호주제 폐지를 위한 시민연대’를 결성하고 탈호주제 대안사회운동본부 사이트 운영 및 아이디어 공모, 거리 캠페인 등 여협 자체 활동과 연대활동을 펼쳤다.

여협은 2005년 2월 3일 헌법재판소의 호주제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민법 제781조 제1항 본문 후단부분 위헌제청 등)을 이끄는 데 중심적 역할을 했으며, 그해 3월 31일 호주제가 가족법에서 폐지되는 성과를 이루었다.여협은 여성운동의 주된 맥을 이어온 가족법 개정운동을 통해 호주제를 청산하고 부부평등 등 민주적 가족관계의 토대를 놓았다. 이제 여협은 실제적인 양성평등 실현을 위한 가족법 개정운동을 펼치면서 향후 가족법개정 과제인 자녀양육비의 공적 지원, ‘혼인 중’재산분할청구권 신설, 1/2의 배우자 재산상속분 보장 등을 위해 경주할 것이며, 더 나아가 남북교류를 통한 ‘통일가족법’제정운동을 펼칠 것이다.

한국여성단체협의회 60년 여성노동운동 전개
버스 차장 전화교환원 기자 등 차별에 맞서다

한국여성단체협의회(이하 여협) 여성노동운동의 역사는 60여년의 긴 세월 동안 진행되어왔다. 여협은 1959년 12월 창립 초기부터 근로여성문제를 주된 활동으로 여겨 1963년 건립된 부녀회관(여성회관으로 개칭)에 직업여성을 위한 숙사를 마련하는 한편 1964년 여성문제상담실을 개설해 남녀차별 철폐를 위한 활동을 본격화했고 특히 직장에서의 여성지위향상 운동에 집중했다.

여협은 1966년 여차장의 인권보호문제와 간호원의 처우개선문제에 관한 좌담회를 수차례 개최하고, 잇달아 관계부처에 건의문을 발송해 교통부로부터 ‘여차장인권보호에 관한 건의문’처리에 대한 회신을 받기도 했다.

당시 버스 승무원인 여차장들은 장시간(하루 18시간) 근무하는 것에 비해 낮은 급여와 수입금(요금) 관리라는 명목으로 차주 측의 몸수색 등 비인도적이며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 1960년대 여협은 근로여성의 처우개선을 위한 좌담회, 근로여성문제 세미나 개최, 건의문 발송 등을 통해 관계부처의 시정을 이끌어냈다.

‘한국산업발전에 있어서의 근로여성의 위치’ 근로여성문제 세미나 1977년 11월 26일 <사진제공 한국여성단체협의회>

1970년대 여협은 여성문제상담실에 들어온 진정이나 상담을 통해 여성근로자의 노동권침해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아 이를 이슈화했다. 1960년대~1970년대 우리나라 경제개발계획에 따른 급속한 산업화과정에서 근로여성의 문제점이 축적되어 왔다. 이 시기 낙후된 복지정책과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취업여성의 수는 나날이 증가했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받는 등 문제가 점점 더 심각해졌다.

여협은 1975년에 불우근로여성의 당면 문제와 국가개발 세미나를 개최했다. 1976년에는 전국여성대회 주제를 산업사회와 여성으로 정해 “취업문제에 있어서 남녀 기회균등 실현을 위하여 노동법이 철저히 시행될 것”을 정부에 건의했다.

또 여협은 1977년 근로여성문제연구위원회를 설치해 근로여성문제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고 공론화했다. 이는 UN 여성10년(1975~1985)의 영향 아래 여성의 취업관련 문제에 대해 국제적으로 논의되는 상황과 국내적으로는 급속한 산업발전의 그늘에서 부당한 처지에 놓여있는 여성근로자의 상황과 맞물렸다.

남녀차별정년 철페를 위한 기자회견 1993년 5월 25일 <사진제공 한국여성단체협의회>

1980년대 여협은 활발한 여성노동운동을 펼쳤는데, 특히 ‘여성근로자의 직장내 차별문제’해결전략 마련에 힘썼다. 여협의 근로여성문제연구위원회는 매년 모집, 채용, 배치, 정년에서의 남녀차별문제와 관련한 주제를 걸고 세미나와 토론회 등을 개최했다.

1982년에 여협은 근로여성의 인력개발과 그 활용이라는 근로여성문제 세미나에서 불우근로여성문제로 한정시켰던 문제를 취업여성으로 확대해 그 대안을 모색했다. 1983년 대표적 사례인 한국통신공사 교환원 김영희씨 사건을 계기로 남녀차별 정년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크게 대두되었다.

1983년 1월 김영희씨는 한국통신공사의 정년퇴직(당시 43세 정년) 처분에 불복해 차별정년 무효확인소송을 했다. 이에 여협은 1983년부터 1989년 승소하기까지 여성차별정년문제를 통해 우리사회의 남녀차별문제를 재조명하고 시정을 촉구하는 좌담회를 지속적으로 개최했다.

당시 여성단체들이 나서서 소송당사자들을 적극 지원했다. 여협은 “근로여성문제가 해결되면 여타의 여성문제가 해결된다”는 신념으로 이들을 후원했다.

6년여에 걸친 법정투쟁 끝에 승소했고, 이에 여협은 1989년 4월 26일 여성차별정년무효확인소송 승소 축하회를 열었다. 여협은 1986년 근로여성고발창구를 개설해 직장내 여성근로자들의 침해사례를 상담하고 그 문제해결을 위해 적극 협력했다.

1990년대 여협은 구체적인 여성노동이슈를 가지고 운동을 펼쳤는데, 남녀고용평등법, 근로기준법 등 여성관련 노동법규정 개정 청원, 의견서 제출, 성명서 발표, 정책토론회(각종 세미나) 개최 등을 이어갔다.

여협은 1993년 남녀고용평등법 개정방향에 대한 세미나를 열고 근로기준법과 남녀고용평등법의 벌칙 통일에 의한 처벌강화, 여성고용할당제, 육아휴직의 남녀공유,  모성보호기능의 공공부담원칙, 기혼여성 재고용 요구, 직장내 성희롱 금지, 비정형 여성근로자의 법적 보호 등을 주장했다.

신동식 여기자 승소 축하 간담회 1998년 9월 7일 <사진제공 한국여성단체협의회>

또한 여협은 1997년 여러 단체들과 함께 여성노동자 고용안정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이어 1999년에는 남녀차별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률제정 환영 성명서를 발표했다.
특히 1997년 여기자 정년차별문제인 서울신문사 신동식 심의위원의 부당해고(중앙노동위원회의 해고 부당 판정)사건에 대해 1998년 여협은 공동변호인단을 구성하는 등 법적 지원과 고등법원 승소를 위한 여성운동 기금마련 등의 활동을 펼쳐 승소했다.

2001년 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 개최한 모성보호관련법 시행촉구 기자회견<사진제공 한국여성단체협의회>

2000년에 발족된 여성노동법개정연대회의(여협을 비롯한 여연 등 8개 단체)를 통해 2001년~2002년 모성보호정책 강화와 모성보호비용 사회분담화시행 촉구 및 모성보호관련법 제 개정 등의 운동을 해왔다.

여협은 2000년부터 고용평등상담실운영을 통해 직장내 성차별과 성희롱에 대한 상담을 해주고 있다. 또 2015년부터는 여성일자리 창출,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권리보장, 여성의 경력단절 해소, 중장년여성의 인력 활성화 등의 노동운동을 강화해왔다. 최근 여협은 2018년 직장내 #MeToo운동을 계기로 미투지원본부를 발족해 이를 위한 활동을 해오고 있다.
 

 

김희정 기자  penmoim@wsob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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