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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교 의원 " 어머니의 희생 딛고 정치인이 되었다"소비자 권익보호 위한 ‘소비자집단소송제도’ 도입해야
김희정 기자 | 승인 2013.03.19 17:25

   
 

[여성소비자신문=김희정 기자]전형적인 386세대의 대표 주자이자 이화여대 총학생회장 출신인 국회 법사위의 서영교 의원이 19대 국회에 입성했다.

대학교 3학년 때까지만 해도 외교관과 기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그녀는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4학년 시절 총학생 회장이 되면서 개인적인 꿈을 접었다고. 누군가가 앞에 나서서 총대를 매야 한다면 그 지휘봉을 내가 잡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학생운동을 할 때 죽음까지 각오했다는 그녀는 국가보안법, 집시법 위반으로 감옥살이를 하며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졸업 후엔 학생들과 여성들에게 책을 읽도록 하는 무료 도서대여실을 1988년부터 10년간 운영했다. 

학생운동이 한창이던 시절이 지나 어느덧 정치에서도 민주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서 의원은 늦은 나이 다시 꿈을 찾기로 했다.

2000년에 이화여대대학원에서 공공정책학을, 이후 2007년에는 같은 대학에서 동아시아학 박사과정 공부를 시작한 그녀는 오랜 기간 학생 운동을 하며 정치에 대한 비판은 많이 했지만 막상 현실 정치 자체에 대해선 하나도 아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당이란 곳이 과연 어떤 곳인지 몸담아 보기로 결심한 서 의원은 2000년 새천년민주당이 처음 만들어질 때 자원봉사를 하며 당직을 받아 현실 정치를 몸소 배우는 코스를 밟기 시작했다.

2007년 청와대 춘추관장을 거쳐 2012년에 비로소 중랑구에서 출마해 국회의원으로 당선되기까지…. 단번에 국회의원에 당선된 것 같지만 실은 오랜 기간 풀뿌리 시민운동을 해온 지역 사회의 일꾼으로 알려져 있다.

그녀는 중랑구에서 42년째 살고 있는 토박이였고 그 지역에서 역시 40여년간 재래시장에서 옷 가게를 운영한 어머니의 헌신이 있었기에 정치인으로서의 길을 걷게 됐다고 담담히 말한다.

   
 

     
-4.11총선과 18대 대통령 선거과정에서 경제 민주화가 가장 큰 화두였다. 재벌 개혁과 경제민주화에 대한 나름대로의 소신이 있는가.

“어머님이 시장에서 옷 가게를 했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일 때 가게를 시작해 얼마전 지병이 드시기 전까지 약 40여년간 장사를 했다.

과거엔 이런 가게를 하면 장사가 잘 됐다. 실제로 은행원보다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돈을 벌었다. 어머니가 장사를 해 5남1녀를 키웠고 할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그러나 요즘엔 재래시장 상인들이 다들 장사가 안된다고 한다. 단지 습관적으로 장사를 하고 있을 뿐 결국 모두들 빚을 지고 살아가고 있다.

재래시장 중간에 큰 대형마트가 있기 때문에 그 대형마트로 사람들이 다 몰려가는 것이 마치 블랙홀로 빠져드는 모습과 같다.

이런 상황에서 재래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다수의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항상 고민을 많이 하게 된다.

경제민주화는 오늘날 우리나라의 시대적 요구사항이다. 한국경제가 그동안 국가 중심으로 발전을 해왔고 국가가 기업을 육성하고 수출정책을 도와주면서 거대한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줘서 생겨난 것이 바로 재벌 기업들이다.

재벌이 정치권력, 돈과 유착되면서 공룡과 같이 커졌고 문어발식으로 모든 산업을 흡수하는 과정에서 국민들 대다수는 소외받고 희생돼 왔다. 그러나 이제는 대기업이 국민과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제는 대형마트가 재래시장을 흡수해버리는 것을 막아야 하고 대기업이 순환출자를 통해 기업을 문어발식으로 계속 확장해 나가는 것을 개혁해야만 대기업들도 투명하게 세계 시장에서 살아남고 마찬가지로 서민들도 살아남는다고 생각한다.”

   
 

      
-경제관료들이 전관예우를 통해 손쉽게 기업체 사외이사 자리를 꿰차는 경우가 많다. 이 같은 관행을 법이나 제도로 바꿀 수 있다고 보는가.

“이것도 마찬가지의 경우이다. 그동안 대형로펌이 계속 만들어지면서 소규모 변호사 사무실의 사건을 뺏어가는 일들이 벌어졌다. 또 대형 로펌들은 경찰이나 금감원, 공정위, 감사원 등의 고위직 관계자를 계속 영입하면서 어마어마한 돈을 주고 있다.

얼마전 황교안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도 황교안 후보자가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17개월 동안 16억원이 넘는 금액을 보수로 받은 것을 지적한 바 있다. 

기업이 이런 전관예우로 사람을 영입하기 위해 거액을 사용하게 되면 이런 돈을 어디서 받아내겠는가. 결국은 소비자 즉 국민에게서 받아낼 것이 뻔하다. 전관예우로 영입한 사람에 대한 대가가 가격인상이나 소비자 부담으로 되돌아 올 수 있다는 말이다.  

현재 공직자윤리법은 퇴직 후 2년 동안은 퇴직 전 5년 간 몸담았던 부서의 업무와 관련 있는 민간기업에 취업을 할 경우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승인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도 고위 공직자들이 퇴임 후 대형로펌이나 민간 기업에 고문으로 취업해 수십억의 연봉을 받고 있다가 다시 고위 공직자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윤리위원회의 심사를 거친다 해도 거의 대부분이 유관 기업에 취업을 하고 있고 심사를 거치지 않고 취업하는 경우도 많다.

이 같은 관행을 바로 잡기 위해서는 고위 공직자들의 도덕성이 가장 큰 문제이겠지만 법이나 제도로서 고위 공직자들이 유관 기업에 취업할 경우에는 좀 더 엄격하게 심사를 하고 심사를 통과해 취업하게 되면 취업한 업체를 공개하고 향후 몇 년 간은 근무상태나 급여를 보고할 수 있게 개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최근 소비자 개인정보 유출 등으로 인한 소비자 피해사태가 되풀이되고 있는 가운데 소비자 권익보호를 위한 ‘소비자집단소송제도’ 도입을 대표 발의할 예정인 것으로 안다. 집단소송제도의 필요성에 대해.

“소비자집단소송제도는 날로 심해져가는 재벌 기업들의 담합이나 개인정보 유출 등으로 피해를 받고 있는 소비자들의 권익보호를 위해 꼭 필요한 제도이다.

저축은행 사건 피해자들이나 CD금리 조작사건, 통신사 개인정보 유출 사건 등으로 피해를 보는 소비자들은 불특정 다수이고 피해액도 막대한 반면 개개인으로 보면 피해금액이 소액이고 피해 사실을 입증해 소송을 진행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때문에 소비자집단 소송제도로서 좀더 편하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소비자들의 피해를 보상해주고 기업들에게 경각심을 심어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를들어 석유값이 약 2000원인데 원래 가격을 환산하면 900원 정도라고 한다. 나머지 부분은 대기업들의 담합에 의한 가격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문제들을 소비자들이 문제 제기를 해서 고발을 하긴 해야 하는데 개인이 고발하기는 힘이 든다. 이것을 누군가가 고발을 해서 소비자의 권리를 찾게 되면 그 혜택들이 골고루 소비자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얼마전 소비자집단소송제도 도입을 위한 정책토론회를 지역에서 가졌는데 변호사들의 설명을 듣고 지역 주민들이 이렇게 훌륭한 법이 있느냐면서 감동하는 것을 보았다.”       

-22조원이 투입된 국책사업인 4대강 사업에 대해 정권이 바뀐 시점에서 이에 대한 조사나 검증을 계속 이어나갈 예정인지.

“지난 정부의 국책 사업이었던 4대강 사업은 얼마전 발표된 감사원의 감사결과로 총체적 부실공사였다는 것이 밝혀졌고 앞으로 보수와 유지를 하는 데만 천문학적인 금액을 투입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감사원의 발표 후 총리실은 감사원의 발표 결과를 부정하며 자체적인 감사를 진행하겠다고 하는 등 부실로 밝혀진 사업을 눈가리고 아웅식으로 막기에 급급하다.

이에 국회 차원의 국정감사를 통해 보의 안전성과 녹조 등이 발생하는 수질문제 등을 철저히 검증하고 입찰비리나 담합비리, 즉 국민 혈세로 특혜를 받은 건설사들과 4대강 사업 책임자들을 밝혀내 국민이 낸 세금을 돌려 받고 책임을 분명하게 물을 것이다. 현재 감사원에서 대기업들의 4대강 담합에 대한 감사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정치인으로서의 길을 걷게 된 특별한 동기라면.

“대학 때 학생운동을 하며 감옥에 갇혀 있는데 어머니가 한 번도 면회를 빠뜨린 적이 없다. 그 때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들 중 가장 면회를 많이 온 사람이 우리 어머니이실 것이다.

어머니는 감옥 바닥이 너무나 차갑고 안좋은 곳이기 때문에 당신이 면회를 와야만 면회 오는 그 시간 동안 내가 운동장이라도 걸어나오면서 바깥 공기를 쐬고 내 몸이 건강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셨다. 보약을 지어 옥바라지를 하신 분이 바로 우리 어머니이시다.

우리 어머니는 또 내 아이들을 모두 돌봐주셨다. 어머니는 여성도 사회적인 일을 해야 한다면서 ‘네 아이들은 내가 다 돌봐줄 테니 너는 사회활동을 하라’고 하셨다. 당시엔 아이들을 돌봐주는 영유아 제도가 없어 아이를 낳는 순간 집에 눌러 앉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한 여성이 국회의원으로 크기까지 또 한 여성인 어머니를 딛고 일어설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어머니라는 또 한 여성의 희생이 함께 했기 때문에 나는 두 몫을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다.

어머님은 장사를 하며 손님을 대할 때도 한번도 싸운 적이 없다. 언젠가 내가 정치를 할 것이라고 믿어서 나쁜 소리를 들으면 안된다고 생각해 늘 조심하셨던 것이다. 

10년 동안 무료 도서 대여실을 운영하고 돈이 없어서 공부를 하지 못했던 주부들을 대상으로 주부대학에서 강의를 할 때 먹고 사는 것은 어머니가 늘 책임져주셨다.

그 어머님이 재작년 81세 때 파킨슨병이라는 몹쓸 병에 걸렸다. 몸이 점점 굳어가고 움직임이 둔할 수 밖에 없어서 당신이 죽음을 직감하신 상황에서 ‘너는 정치 지도자가 돼야 한다. 40년을 기다렸는데 왜 아직도 망설이느냐’고 말씀하셔서 출마를 결심하게 됐다.” 

-법사위원을 하면서 특별히 관철하고 싶은 목표가 있나.

“사실 일반 국민들은 국회에서 만든 법을 지키느라 정신이 없고 이 법을 잘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정작 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은 소수의 가진 자들이다.

법사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느낀 점은 우리나라의 사법부가 강자에게는 한없이 약하고 힘없는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힘을 행사한다는 점이다. 내가 법을 전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법사위를 하는 것이 어려울 것으로 생각했다.

박영선 의원이 법사위를 같이 했으면 좋겠다고 제안을 했고 박지원 전 대표도 추천하기에 법사위를 하게 됐다.   

처음 국회의원으로 출마하면서 정해 놓았던 목표였던 ‘서민의 눈으로, 서민을 위해’ 처럼 비리와 범죄를 저지르는 힘있는 사람들에게 엄격하고 서민들의 눈높이에 맞는 사법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검찰, 법원 등으로부터 억울하게 피해를 당하는 사람들을 구제해 줄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 의미있다고 생각한다.”

-가정생활과 정치인으로서 의정생활을 병행하는데 어려움은 없나. 어떤 마인드로 병행하고 있는지.

“나는 가정주부이다. 그래서 사실은 집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갖다 버리기도 한다. 그러면 주민들이 ‘국회의원도 이런 것을 해요?’라고 말한다. 당연히 이런 것도 버려봐야 가정주부로서 이런 것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알게 된다.

또한 나는 학부모이기도 하다. 학부모로서 교육의 문제점을 많이 느끼게 된다. 우리 아이들은 둘 다 자기주도 학습을 통해 공부를 했다.

청와대 춘추관장 시절 큰 아이의 성적이 곤두박질치는 바람에 한때 학원 문앞에서 기다렸다가 아이를 실어나르는 일도 한 적이 있으나 별 효과가 없었다.

외국의 경우 사립학교는 대체로 기숙사 생활을 한다. 우리 아이들이 학원 차에서 시달리는 동안 그 아이들은 농구를 하고 동아리 활동을 한다. 개인적으로 기숙사 학교를 선호하게 됐다.

지금 대학교 4학년생인 첫째 딸은 중랑구에 있는 혜원여고를 다녔다. 기숙사가 생겨서 거기서 생활했는데 공부 시간도 절약되고 선생님들이 철저히 신경을 써 주었다.

둘째 아들은 기숙사 학교가 어디 있는가를 찾아보다가 전주에 있는 상산고에 보냈다.  학원비를 절약할 수 있고 가계 경제에도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에도 기숙사형 학교가 많이 생겨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가정생활을 하는 국회의원, 가정주부 출신, 학부모 회장 출신인 국회의원이 서민들의 아픈 곳을 잘 가려낼 수 있는 적임자라고 생각한다.

과거엔 공부 잘하고 엘리트 코스를 밟았던 남자 국회의원들이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여성 국회의원, 학부모 국회의원이 엘리트 코스만 밟았던 검사 출신, 판사 출신 국회의원이 알지 못하는 것을 찾아내 법을 만들 수 있다고 본다.

어느 날 한 후배가 전화를 했다. 자신이 이혼을 했는데 남편이 양육비를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착안을 해 이혼을 했을 때 아이들 양육비를 국가가 먼저 주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직업이 있는 남편일 경우에 국가가 그 남편으로부터 양육비를 대신 받도록  하는 법이다.

그밖에도 실제로 나는 재래시장에서 물건을 많이 사는 편이다. 어떻게 하면 재래시장을 살릴 수 있을까를 생각하다가 재래시장의 가장 큰 문제는 주차 문제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방안이 재래시장과 아파트를 오가는 셔틀버스를 운영하는 것이다. 이 법안도 이미 만들어 발의해 놓은 상태다.

그리고 주부들이 주로 재래시장을 주로 이용하는 시간대인 4시나 5시경에는 재래사장 주변에서 불법주차 딱지를 끊지 않도록 하는 방안도 생각하게 되었다. 이렇듯 가정주부이기 때문에 오히려 의정활동에 오히려 도움이 되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한다.”
 
 

김희정 기자  penmoim@wsob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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