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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단체협의회 60년]한국여성운동사에 이정표 될 만한 여성운동 이끌어 와여성운동을 돌아보다
김희정 기자 | 승인 2019.10.28 18:16

[여성소비자신문 김희정 기자]한국여성단체협의회가 창립 60주년을 맞았다. 한국 여성운동사에서 이정표가 될 만한 여성운동을 이끌어 온 여협은 여성의 권익신장 및 지위향상에 관한 법과 제도를 구현해 왔다.

김활란 박사가 세계여성단체협의회(International Council of Women, ICW)를 보고 1959년 12월 26일 박마리아 등 26명의 여성 선각자들과 힘을 합쳐 당시 8개 여성단체-대한여학사협회, 대한YWCA연합회, 여성문제연구회, 한양여성클럽, 부녀보호사업전국연합회, 대한어머니회, 대한부인회, 학생문제상담소 -와 함께 순수 민간단체로서 여협을 발족시켰다.

60년이 지난 2019년 현재 여협은 국내 여성단체를 회원으로 하는 연합체로서 전국 61개 회원단체, 17개 시·도 여성단체협의회, 시·군·구 457개 여성단체협의회, 전국 500만 회원으로 구성된 최대의 여성단체협의체다.

창립 당시는 여성의식과 여성주체성이 미미했던 시절이었다. 무엇보다도 여성 스스로 여성의 문제해결을 위한 목소리를 내기 위해 여성의 힘을 한데 모아야 할 때였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여 여성단체들이 한데 모여 연대하여 힘을 결집시키기 위해 여협이 설립되었다. 여협의 창립 목적은 여성운동을 이끄는 것뿐 아니라 여성발전을 통한 국가발전이라는 큰 목표를 향해 모든 활동을 이어가는 국내 최초의 여성 연대기구로서의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었다.

여협은 창립 이듬해인 1960년 8월 27일 세계여성단체협의회에 가입함으로써 국제적인 여성연대를 구축하였다.

이를 계기로 지금까지도 UN의 UNICEF, UNESCO, 여성지위위원회 등 국제기구와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세계 인류평화 기여에 동참하고 있다.

여협은 창립 목적 달성을 위해 1962년 첫 번째 전국여성대회를 시작으로 매년 10월 말에 대회를 개최해 왔다. 올해로 54회째를 맞는다.

전국에 있는 회원 여성단체들이 한자리에 모여 결속을 다지고, 당면한 여성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해 결의문을 채택, 대정부 건의문을 발표하고 이를 여성정책 및 제도 수립으로까지 이어지도록 노력해왔다.

또한 지속적으로 해결해야 할 여성문제에 대해서도 그 방안 마련을 촉구하여 소기의 성과를 달성했다.

예를 들면, 첫 전국여성대회 결의를 통해 여성센터와 가정재판소 설치를 촉구하고, 수차례 정부 건의를 통해 이듬해 우리나라 최초 부녀회관(여성회관으로 개칭)과 가정재판소 설립의 성과를 이루어냈다. 여협이 한국사회에서 여성의 인권신장을 위한 여성운동을 주도하고 현실화시킨 사례는 1960년대부터 2019년 오늘에 이르기까지 계속되고 있다.

여성운동의 구심체 역할해 와

여협은 지난 60년 동안 한국여성운동사에 이정표가 될 만한 여성운동을 이끌어오는 데 구심체 역할을 해왔다.

초창기부터 가족법개정운동을 주도하고, 열린사회에서의 여성의 역할을 모색하는 등 선각자적인 통찰력을 가지고 여성운동의 과제를 설정하고 실천해왔다.

설립 당시는 여성운동의 진행이 어려웠고 국내에 여성단체들 간의 협의체가 없었지만 여협은 이런 때에 최초로 만들어진 여성 단체들의 협의체로 만들어져 여권신장과 여성역량 강화를 위해 꾸준히 목소리를 내왔다.

특히 여협은 여성 관련 대정부 정책 및 법·제도 건의기구로서의 역할을 담당해왔다. 초기 여성운동은 여성의 지위향상, 여성인력의 활용, 여권신장, 여성교육의 중요성을 각성시키는 일에 집중되어 있었다. 이후 점차적으로 영역을 넓혀 사회전반에 걸친 다양한 여성문제를 다루는 여성운동을 이끌어왔다.

여성운동사에서 여협이 주도하고 성과를 낸 대표적인 여성운동은 다음 7가지를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첫째 근본적인 남녀차별의 문제가 되었던 호주제의 폐지 등 가족법개정운동, 둘째 모성보호와 일·가정양립 정책으로까지 발전시킨 남녀차별금지 및 고용평등운동, 셋째 여성문제에 국한되지 않은 소비자보호 및 환경보호운동, 넷째 국내여성운동에 머물지 않고 확장시킨 국제여성연대활동, 다섯째 국회의원 비례대표 50% 여성할당제 등 여성의 정치참여확대운동, 여섯째 #MeToo운동까지 이어진 여성폭력반대운동, 일곱째 통일시대를 위한 남북여성교류운동 등이이다. 이밖에도 여성문제 전담기구 설치와 법·제도 수립 촉구활동 등을 해왔다.

여협은 1969년부터 우리나라 행정부에 여성정책 국가전담기구 설치와 여성정책 개발 및 연구를 위한 여성연구센터 설립에 대한 목소리를 내왔다.

그 결과 1983년 한국여성개발원, 1998년 여성특별위원회, 2001년 여성부가 설립되기에 이르렀다. 여협은 한국사회에 양성평등이 실현될 수 있도록 법제도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기여하였다. 1973년 모자보건법과 1995년의 여성발전기본법)을 비롯해 1987년 남녀고용평등법, 2018년 여성폭력방지기본법 등의 제·개정 성과에도 기여했다. 여협은 국내 여성운동에 있어서 실천적 영역과 법 제도적 영역에서 국내 여성운동을 힘차게 이끌어왔고 그것을 현재의 여성들이 누릴 수 있도록 했다.

여협 초반 30년을 이끈 사람들

여협 초반 30년 6명의 회장

여협 초반 30여년을 이끌어온 여성지도자들은 한국사회에 여성에 대한 성별고정관념이라는 인습을 깨고 정년차별을 철폐하는 등 권리를 찾아가는 여성운동의 자리매김에 힘을 기울였다.

이 시기는 모자보건법 제정, 가족법 개정, 성폭력특별법 제정, 남녀고용평등법 제정, UN 여성차별철폐협약 가입 등 여성정책의 제도화에 힘써온 때였다.

한국여성단체협의회의 60년의 역사는 사회 전 영역에 뿌리깊게 만연했던 양성불평등 의식과 행태에 맞서 여성운동을 이끌어온 여성지도자들의 헌신이 응집된 산물이었다.

그들은 한국사회가 당면한 여성문제들에 민첩하게 반응하고 해결하기 위해 여성단체들을 결속시켜 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했다.

김경오 회장 기증 공군복 1950-1953

지난 9월 30일, 한국 공군 여성비행사 1호 김경오 여협 전 회장은 국립여성사전시관에 자신이 입었던 공군조종사 군복을 기증했다. 이전에도 미국으로부터 기증받은 비행기 1대를 1973년에 정부에 기증한 바 있다.

여협이 창립되기도 전에 세계여성단체협의회(International Council of Women, ICW)의 지도자들로부터 한국의 가입을 권유받아오던 가운데 여협이 태동되었다.

ICW 참여 및 국제여성운동을 주도하면서 한국을 대표할 여성단체가 필요했을 뿐 아니라 국내 여성단체들의 의견을 수렴할 협의체기구가 필요했기에 여성지도자들은 여협을 설립하게 되었다.

1959년 1월 15일 첫 모임에 참석한 여성지도자들은 김활란, 박마리아, 박에스더, 박인순, 박덕순 등 5인의 위원을 선출해 기성회를 결성했다. 이어 1959년 6월 12일에는 발기회를 통해 여협의 규정 초안과 창설 취지문을 채택했다. 그해 12월 26일에 가회동에서 여성 지도자 26명과 보건사회부 부녀국이 참석한 창립총회에서 여협이 공식적으로 설립되었다.

김활란 초대 회장

여협이 걸어온 초반 30년이라는 한 세대 동안 김활란, 이숙종, 이철경, 손인실, 홍숙자, 김경오 회장이 있었다.

김활란 초대회장은 임원들과 함께 1960년 민·참의원 선거 때에 축첩 정치인을 몰아내는 ‘축첩자와 부정부패자 축출’ 운동을 펼치면서 우리나라 첫 여성운동의 시작을 알렸다.

1961년 여협 이사로 임명된 고 이희호 여사(당시 YWCA 사무총장 및 여협 이사) 및 정충량 이사, 이소란 이사와 함께 당시 보건사회부 부녀국이 아동국으로 바뀔 위기에 처해있는 부녀국의 존속을 위해 국가최고회의에 진정서를 제출하고 보건사회부 장관을 면담하는 등 힘을 더헀다.

이숙종 회장

1970년 초대 회장으로부터 바통을 넘겨받은 이숙종 회장은 창립 때부터 부회장을 지내며 활동을 해왔다. 이 회장은 여성정책추진위원회 발족, ‘범여성가족법개정촉진회’ 결성, 범여성총력안보궐기대회, UN 여성 10년 사업결성대회, 매점매석 방지와 물가안정을 위한 소비자보호운동 등 여성운동을 본격적으로 이끌기 시작했다.

이 회장은 특히 67개 단체로 구성된 범여성가족법개정촉진회 회장으로서 부(父)뿐 아니라 모(母)에게도 자녀에 대한 친권을 인정하는 등 대폭적인 가족법 개정의 성과를 냈다. 여성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고 이로써 한국여성정책연구원과 정부내 여성특별위원회를 만들어내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철경 회장

1979년에 취임한 한글 서예가 이철경 회장은 여행원 제도 폐지와 남녀고용평등법 제정 촉구운동을 펼쳤다. 그는 특히 1981년 UN 여성차별철폐협약 가입 촉구운동을 펼쳤다.
이를 이어 1982년에 취임한 YWCA회장 출신 손인실 회장은 비준 청원서를 국회에 제출하여 1983년 우리나라도 이에 가입하는 성과를 얻었다.
여협은 1983년 ‘퇴직 무효소송을 낸 전화교환원 김영희 사건(당시 전화교환원 정년은 43세)’을 계기로 직장여성의 정년차별문제를 공론화하는 좌담회를 개최하고, 매스컴의 성차별 조장여부를 모니터링하는 세미나를 개최했다.

홍숙자 회장

1985년 취임한 외교관 출신이면서 세계여성단체협의회 회장에 선임된 홍숙자 회장은 근로여성을 위한 고발창구를 개설했다. 홍 회장은 전화교환원 외에 교사, 영양사, 교수 등 고용에서의 성차별과 기혼여성의 퇴직문화에 대한 여성문제를 사회적으로 부각시키려 노력했다. 매스컴 모니터링을 통해 성별차별문제의식을 이어가는 한편 여성에 대한 성고문에 관해 7개 정부부처에 강력히 항의했다.

김경오 회장

1988년에 취임한 김경오 회장은 1989년 가족법 개정에 대한 건의문 수백 통을 발송하였고, 근로여성 차별문제 사례집 발간, 수차례의 관련 세미나·좌담회 개최 등을 통해 여성차별문제를 꾸준히 제기했다.

이 시기에 대기·수질오염, 핵문제 등 환경보호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간통죄 폐지에 관한 토론회 개최, 성폭력특별법 제정촉구를 위한 범여성·사회단체 공동기자회견 등을 했다.

여협 후반 30년 5명의 회장들

한국여성단체협의회의 후반 30년의 역사는 1990년대부터 시작된다. 여협 창립연도인 1959년부터 1989년까지가 초반 30년이라면, 1990년부터 2019년까지는 후반 30년이다. 이 시기에는 이연숙, 최영희, 은방희, 김화중, 김정숙, 최금숙 회장이 여협을 이끌었다.

이연숙 회장

1994년 국회내 ‘여성특별위원회’가 설치된 것은 그해 취임한 이연숙 회장의 신설 청원에 따른 것이었다. 이 회장은 1994년 ‘할당제 도입을 위한 여성연대’를 구성, 여연의 이미경 상임대표와 함께 공동대표로서 여성할당제를 건의했으며, 1995년 지방선거참여 여성후보자 격려회’를 열었다.

또한 가족법개정을 위한 여성연합회 발족, 남녀고용평등법 개정 청원 등의 활동을 했다. 특히 이 회장은 NGO 한국위원회 공동대표로 선출되어 1995년 ‘북경 세계여성회의’에 한국대표단 일원으로서 여협 임원 13명(최영희 회장 및 여협 국제관계위원이었던 강경화 현 외교부장관 등)과 함께 참석했다. 이후 1997년 정무 제2장관, 2000년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다.

최영희 회장

여협의 후반 30년 주요성과는 여성할당제와 군가산제 폐지, 여성부 설치라고 할 수 있다. 이 중심에 최영희 회장이 있다.

특히 여성할당제는 최회장이 김대중 대통령의 협조를 받아 당시 한나라당 국회의원인 김정숙 회장과의 긴밀한 공조 속에서 이뤄졌다.

최 회장은 1997년 언론중재위원회에 여성위원 30% 할당 촉구와, 1998년 정부에 ‘여성부 신설 및 정부위원회 여성할당, 여성고용 불안정 해소에 관한 건의’를 했으며, ‘여성정책기구 개편 및 정치구조개혁을 위한 범여성공청회와 6·4지방선거 여성할당 촉구집회를 열었다. 군가산제 폐지와 관련해서는 1998년 한국여성단체연합(이하 여연) 등과 공동으로 군가산점제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여 1999년 위헌결정을 얻어냈다.

은방희 회장

2000년대 들어 여협은 여성의 노동권보장에 중점을 두었다. 2000년 당시 은방희 회장은 기업의 여성직원 부당해고 철회 요청, 고용평등상담실 개소, 비정규직 노동자 기본권보장 공동대책위원회 발족, 여성 관련 노동법개정 청원서 제출 등의 활동을 했다. 한편 정당법에 비례대표 여성 30% 할당 명시와 제16대 총선에 여성후보자 30% 할당을 촉구했다. 특히 ‘호주제 폐지를 위한 시민연대’를 발족해 2001년 ‘호주제 위헌판결’촉구 캠페인과 2002년 ‘호주제 폐지 272’발족 등을 통해 가족법개정운동을 이어나갔고, 마침내 2005년 호주제가 폐지되었다. 아울러 성매매근절대책 정책토론회, 모성보호관련법 개정 촉구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김화중 회장

2006년과 2008년 사이 여협은 정부정책 바로알기, 출산·건강가정운동, 안전운동, 여성정책 바로알고 제안하기 등 4대 중점사업을 추진했다. 이는 복지부장관을 역임한 김화중 회장 때에 이뤄진 일로, 김 회장은 저출산·고령화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협약서에 서명하는 등 건강가정운동을 펼쳤다. 2006년 ‘북한수재민돕기 쌀 모금운동’을 통해 북한에 쌀을 보냈고,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 여성대표단장으로 참석했으며, 금강산관광사업 9주년 기념식에도 참석했다.

김정숙 회장

여협은 환경운동에도 관심을 가져 2009년 저탄소 녹색성장 정책실현 대토론회 개최, “WE Green 네트워크(여성·시민사회가 함께 녹색생활을 실천해 나간다는 의미)” 결성 등 녹색생활실천 운동을 추진했다. 이는 3선 국회의원을 지낸 김정숙 회장 때의 활동이다.

김 회장은 2009년 비정규직관련 법안표류에 대한 입장 성명서 발표, 2010년 청렴사회 실현과 여성의 역할 대토론회 및 고령친화도시 조성관련 포럼 등을 개최했다.

특히 ‘2010지방선거 남녀동수’ 연대를 출범시켜 여성의 정치세력화운동을 본격화했다. 2011년과 2014년 동안 여러 성명서를 발표했는데, 청소년보호법 개정안 즉각 통과, 군필자 공무원채용 할당제 의견, 국회의원 지역구 공천과 여성30% 실천 강력 촉구, 탈북자 강제북송 즉각 중단, 6·4 지방선거, 지역구 여성공천 30% 보장 등에 관한 성명서였다.

2014년 여성발전기본법 전부개정에 대한 의견을 피력해 ‘양성평등기본법’ 탄생에 기여했다. 한편 김 회장은 활동의 폭을 넓혀 세계여성단체와의 교류에 주력했다. 여협에서 매년 3·8세계여성대회 기념식 실시와, UN여성지위위원회에 NGO대표로 참석하여 여협 세션을 여는 등 국제여성연대에 힘썼다. 특히 2012년 제33차 세계여성단체협의회(ICW) 총회를 서울에서 개최했고, 2014년 제21차 아시아·태평양 여성단체연합 총회도 개최했다. 2015년 이후 ICW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 여협은 여성폭력과 관련하여, 2018년 #MeToo운동에 부응해 ‘전국미투지원본부’를 발족했고, 여협내 여성가족정책연구원을 설치해 ‘권력형 성폭력과 비동의간음죄’ 도입 정책포럼을 개최했다.

최금숙 회장은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원장시절부터 여성폭력관련 정책연구를 해왔던 터라 발 빠르게 대응했다. 최 회장은 2015년 ‘간통죄 폐지에 따른 후속대책 논의 필요’ 성명서 발표, 여성대표성 확대관련 법 개정 포럼과 미혼모 편견 없애기 대토론회 개최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한편 각 정당 대표에게 ‘지역구 여성공천 30% 의무화 법개정 촉구 1만명 서명’을 전달했다. 2016년과 2017년 중·장년층 여성인력활성화 심포지엄과, 2017년 ‘여성(女聲), 청렴을 청(靑)하게!’ 대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여성운동이 국가여성정책으로 이어지는 제도화에 기여해왔다.

김희정 기자  penmoim@wsob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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