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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명숙의 행복한 시 읽기] 함민복 '부부'
구명숙 숙명여자대학교 명예교수 | 승인 2019.10.11 17:06

[여성소비자신문]부부

-함민복-

 

긴 상이 있다

한 아름에 잡히지 않아 같이 들어야 한다

좁은 문이 나타나면

한 사람은 등을 앞으로 하고 걸어야 한다

뒤로 걷는 사람은 앞으로 걷는 사람을 읽으며

걸음을 옮겨야 한다

잠시 허리를 펴거나 굽힐 때

서로 높이를 조절해야 한다

다 온 것 같다고

먼저 탕 하고 상을 내려놓아서도 안 된다

걸음의 속도도 맞추어야 한다

한 발

또 한 발

-시 감상-

사랑하는 한 쌍이 평생을 함께 살고 싶다고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룬다. 결혼식에는 대개 주례가 있다. 주례사를 시로 쓴 함민복 시인의 시 ‘부부’는 부부(夫婦)란 무엇인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부부가 긴 상을 마주 들고 가는 상황을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다. “좁은 문이 나타나면/한 사람은 등을 앞으로 하고 걸어야 한다/뒤로 걷는 사람은 앞으로 걷는 사람을 읽으며/걸음을 옮겨야 한다.”

혼자서는 들 수 없는 길고 무거운 밥상을 부부가 함께 들고 가야하는데 좁은 문을 통과해야 한다. 이처럼 어려운 상황이 닥치면 부부는 의견을 서로 조율하여 힘을 보태되, 더 힘든 위치에 있는 편을 살펴야 한다. 그러면 좁은 문도 그 어떤 어려운 길도 헤치고 나아갈 수 있음을 암시하고 한다.

“잠시 허리를 펴거나 굽힐 때/서로 높이를 조절해야 한다” 높이를 조절한다는 것은 배려와 양보를 뜻한다. 양보와 배려 덕분에 무거운 밥상이 기울어지지 않고 좁은 문턱을 무난히 넘어간다. 그러나 인생은 마지막까지 끝이 중요하다. “다 온 것 같다고/먼저 탕 하고 상을 내려놓아서도 안 된다” 일관성 있게 끝가지 제 자리에 안착시켜야 함을 진중하고 정답고 은근하게 경고하고 있다.

이 시는 부부가 어떻게 함께 살아가야 하는지를 긴 상을 나르는 방법으로 펼쳐 보여준다. 부부는 누가 먼저 앞서 가거나 빠르게 재촉하거나 잘난 체 하지 않고 겸손하게 “한 발/ 또 한 발” 그렇게 변함없이 서로 존중하며 평등해야 함을 상징적으로 그려보여주고 있다.

구명숙 숙명여자대학교 명예교수  k9350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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