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 2019.11.13 수 17:31
HOME 오피니언 칼럼
[하도겸 칼럼 16]보이차로 하는 금주, 숙취해소 그리고 다이어트②
하도겸 나마스떼코리아 대표 | 승인 2019.10.10 16:07

[여성소비자신문]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요즘 아니 21세기의 가장 큰 화두는 어쩌면 다이어트인지 모르겠다. 예전 같으면 건강한 사람이었을 텐데 요즘은 통통한 사람으로 치부된다. 심한 경우는 스스로가 ‘돼지’라는 자각마저 갖는 경우까지도 있다. 얼마 전 보이차를 함께 마신 미국인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부적절한 표현이 될 수도 있지만, ‘뚱뚱한 사람’에 대한 개념 정의가 다르다.

정말 100kg를 훌쩍 넘는 분들로 비행기 이코노미 한 자리로는 충분히 앉을 수 없는 사람이 진짜 ‘살 찐 사람’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별로 살도 안찌고 미국인의 입장에서 보면 마른 사람이 자기를 ‘돼지’라고까지 생각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한다. 정말 우리는 어떤가? 아니 우리들의 자화상은 ‘슬픈 돼지’가 맞나? 그냥 몸집이 있는 사람인데 주변 눈치 때문에 자신을 비하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돼지가 정말 비하해도 되는 동물인가도 생각해 봐야 한다. 돼지는 우리 역사와 민속에서 자주 등장하는 동물 가운데 하나이다. 부여 시대에는 관직 이름에 사용되었고, 고구려와 고려의 도읍을 정해주기도 하였다. 또한 조선 태조 이성계와 관련된 설화가 있을 만큼 우리와 친숙한 동물이기도 하다. 예로부터 우리는 제사 지낼 때 희생 제물로 사용해 왔고, 재물과 복을 가져다주는 상서로운 동물로 생각해 왔다.

올해 2019년 기해년(己亥年)은 돼지띠의 해이다. 돼지는 십이지신(十二支神) 중 열두 번째로, 잡귀를 몰아내는 신장이면서 동시에 우리 인간과 가까운 친구였다. 전통사회에서 집에서 인간과 함께 생활을 했던 ‘돼지’는 흑돼지에 가깝고 그리 살도 찌지 않았다. 지능지수도 개보다 높고 뱀이나 해충을 잡아 먹는 등 우리의 친구였다. 무식하지도 멍청하지도 않았다.

신성한 제물이 되어 준 돼지는 마을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는 제의(祭儀)에 사용되고, 제기(祭器)인 시정(豕鼎)에 반영되었다. 돼지는 돗통시 변소의 제주도 방언 등 우리의 삶 곳곳에 등장한다. 삶은 돼지고기는 삼해주(三亥酒) 등의 술과 함께 인간에게 행복을 선사했다.

“극락에는 삶은 돼지 머리와 해맑은 삼해주가 있는가? 만일 그런 것들이 없다면 비록 극락이라 하더라도 나는 가지 않겠네.”(태평한화(太平閑話), 서거정(徐居正))

삼해주 정월 첫 해일(亥日) 즉 돼지날 해시(亥時) 즉 돼지 시에 술을 담고 둘째와 셋째 돼지날을 포함하여 세 번에 걸쳐 빚는다고 하여 삼해주라고 한다. 버들가지가 나올 때 비로소 마신다고 하여 ‘유서주(柳絮酒)’라고도 한다. 저온에서 대략 100일정도 발효하여 얻는 술이라, ‘백일주(百日酒)’라고도 한다. 맛있게 여러 번 빚은, 사대부들이 즐겨마시던 고급 청주로, 춘주(春酒)라고도 불렀다. 그런데 왜 돼지날[亥日]에 술을 빚었을까?

돼지는 띠 동물 가운데 가장 느린 동물로 알려져 있다. 옛사람들은 돼지가 피도 깨끗해서 술도 제일 늦게 취할 것으로 생각하였다. 좋은 술을 만들기 위해서는 잡균을 없애는 것[殺菌]이 중요하였는데, 추운 겨울에는 균이 자라기가 힘들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선조들은 새해 첫 돼지날을 상징적인 의미에서 술 빚는 날로 정했을 것이다.

인간에게 행복을 선사해주는 주요 단백질 공급원인 돼지고기의 기름은 인체 내에 쌓이지 않고 체외로 배출된다. 온 국민이 미세먼지가 화제가 되기 한참 전부터 ‘삼겹살’에 열광하기 시작한 우리나라 사람들도 잔치 때 돼지를 잡으면 육회를 먹기도 했다. 깨끗하고 안전한 돼지를 중국 운남성의 소수민족들도 돼지고기 육회를 잘 먹는다고 한다.

옛 대리국의 상운(祥雲)의 남쪽 지역을 운남이라고 한다. 고 선지 장군이 부여계 고구려 유민을 이끌고 내려와 정착하였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돼지 탈을 의례에 사용했던 묘족 등의 소수 민족들은 동백나무과에 속하는 보이차를 마시고 이제 그 보이차가 세계에 널리 수출되는 효자 상품이 되었다.

열두 띠 동물의 운동회가 열렸다. 모두 자신의 띠를 열심히 응원한다. 오늘의 하이라이트인 마라톤에서 생쥐가 1등을 한다. 멍멍이가 11등으로 들어온 뒤에도 마지막 주자인 돼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땀샘이 없어 더워도 땀을 못 흘리는 돼지는 잠시 진흙탕에 뒹굴다가 갑자기 내린 비에 홀딱 젖었다.

엉망진창이 된 돼지가 서서히 보이기 시작하자 모두들 일제히 “돼지 힘내라!”라고 응원한다. 꼴등으로 도착한 돼지에게 1등보다도 더 큰 환호성이 이어졌다. 완주한 돼지는 물론 응원한 모두가 오늘의 주인공이다.

“우리 모두 세상에 단 하나뿐인 존재로 세상에서 당신이 가장 소중합니다.”

돼지는 고대인을 지켜준 수호신에서 선조들과 함께 한 동반자로, 그리고 내일이라는 오래된 미래를 꿈꾸는 우리 현대인의 자화상이 되어 준다. 그런 복돼지가 언제부터인가 자기관리도 제대로 못하는 뚱뚱한 사람에 대한 비속어로 변질되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외모를 폄하할 정도로 세상은 외모지상주의에 빠진 것은 아닐까 두렵다. 한번쯤 우리의 일그러진 어두운 그림자를 뒤돌아봤으면 한다. 매일매일 보이차를 마시며 삼해주로 줄인 숙취도 말끔히 해소하고 돼지처럼 몸과 마음이 건강한 아름다운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사진은 장욱진 작가의 ‘부쳐와 돼지’ 판화이다. 1995년에 만든 판화로 소장되어 있는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홈페이지에서 인용하였다. 돼지 변소에 앉은 사람이 자기 몸 크기의 대변을 보는 모습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판화이다. 절에서는 인간이 근심을 잊는 공간을 ‘해우재(解憂齎)’라고 부르고, 선불교에서 ‘똥 막대기’는 참선 수행을 위한 중요한 주제이기도 하다. 이 그림의 다른 제목은 “나 행복해도 돼지!”가 아닐까 싶다.

하도겸 나마스떼코리아 대표  dogyeom.ha@gmail.com

<저작권자 © 여성소비자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