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여성 정치/사회/교육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합니까; 극일(克日)을 넘어
조영달 서울대학교 사회교육과 교수 | 승인 2019.08.12 17:28

[여성소비자신문]최근 일본이 도발한 ‘경제 전쟁’을 경험하면서 우리는 일본이 세계 경제의 리더 자격이 없음을 충분히 느꼈다.

그 동안의 분노와 치열함 속에서 우리의 생각과 행동도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노 재팬’이 ‘노 아베’로 바뀐 것도, 민간과 정부의 행동이 달라야 한다는 목소리도, 감정보다는 이성적 대응책을 찾자는 목소리도, 또한 최근 정부 당국자의 “전략게임과 반복게임”이란 표현도 모두 이러한 흐름에서 나온 것이리라.

사실 오늘의 한국과 일본은 과거와는 확연히 다르다. 근대화를 시작조차 하지 못했던 20세기 초반의 조선과는 달리 오늘의 대한민국은 일본과 어께를 나란히 하고 4차산업혁명 시대를 걸어가고 있다.

반도체를 포함한 몇 몇 주요 분야는 수평적 공존과 협력이 가능한 상태에 있다. 또한 일본이 그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대한제국에 제공한 1300만원의 차관을 갚으려 온 국민이 한 마음으로 국채보상운동(1907년)을 펼쳤던 과거와는 달리, 세계은행에 따르면 오늘의 한국은 일본의 대략 1/3 수준인 1조6천억 달러의 국내총생산(GDP) 규모(2018년)를 지니고 있다.

구매력을 고려한 한국의 1인당 국민총소득(세계 33위)은 4만 달러 정도로 일본(세계27위)의 4만5천 달러에 비해 그렇게 크게 뒤지지 않는다. 물론 우리는 ‘남자는 담배를 끊고, 여자는 비녀와 가락지를 내면서’까지 국채를 갚으려했던 그 날의 열망을 잊을 수는 없다.

일본 제국주의에 치열하게 대항하며 나라를 구해야 했던 과거와는 달리, 감정에 얽매이거나 현재를 위한 힘겨루기가 지금 우리 행동의 주된 목표는 아닌 듯하다. 지금의 상황을 계기로 ‘미래를 위한 경주(競走)’에 마음을 모아야 함을 우리는 가슴으로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갈등이 지속된다면 우리 경제는 시장환경의 악화에 따라 단기적으로는 커다란 고통을 각오해야 할 듯하다. 최근 한국의 대일(對日) 수입액의 70% 이상이 소재나 부품 또는 설비와 같은 필수 중간재이며 우리 수출에서 중간재의 비중은 30~40% 수준이라 한다.
또한 한국의 무역의존도(2017년)는 70% 수준이나 일본은 28% 정도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 보면 다른 조건이 일정하다면 한일 경제전쟁은 한국에게 더욱 큰 경제적 불확실성과 경쟁력 약화를 가져올 것이라 짐작케 한다.

이에 따른 고통은 필연적이다. 아마도 덩치가 작은 중소기업이나 중견기업들이 더욱 크게 고통스러울 것이며, 어쩌면 우리는 꽤 긴 시간 실업과 저성장의 아픔을 경험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새로운 균형을 찾을 것이다. 기업과 시민들의 끈질긴 인내, 정부의 산업 지원과 기업의 자구 노력, 한일 관계개선을 위한 외교적 협상, 미국 등 다른 나라와의 협력이 뒤따르면서 한일 관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사이에 우리 기업과 국민들은 커다란 고통과 비용을 치루어야 한다. 새로운 균형이 지금보다 더 나으리란 보장도 없다. 외국과의 협력이 꼭 우리 뜻대로 되는 것도 아니다. 사실 변화될 상황 역시 우리에겐 여전히 불투명하다.

일본이 시작한 경제전쟁에 대한 최근의 많은 논의들은 대부분 앞서 본 것처럼 단기적이거나 중기적인 관점에 머물러 있다. 그런데 이미 지적한 것처럼 우리 마음속에 ‘미래’를 위한 도전이란 비전이 자리잡고 있다면 우리에겐 장기적인 관점도 또한 몹시 중요하다.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우리가 진정 눈을 두어야 할 곳은 어디인가? 머물 곳을 알아야 어떻게 할지 정할 수 있고 안정되고 자연스럽게 그리고 제대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다. 일본의 행동에 따라 우리의 최적 전략을 유동적으로 가져가는 단순 반복 전략 게임이 지금의 고통스러운 경제전쟁을 바라보는 눈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우리가 누구와 같이 어디에서 살고 있으며 어디로 눈을 돌려야 하는가에 따라 우리는 일본과 상관없이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긴 호흡에서 보면 우리의 미래는 항일(抗日)과 극일(克日)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을 계기로 우리는 대한민국이 세계 속에 어디에 자리매김해야 하고 어떤 국가로 발전할 것인가에 대해 깊이 논의하고 투자해야 한다. 이는 아마도 기술과 경제와 문화와 정치에 관련된 대한민국의 품격에 대한 것일 수 있다.

5G 이후의 세계 산업혁명을 주도하고 표준을 이끌어가는 대한민국, 공존의 윤리를 바탕으로 협력하고 포용하는 대한민국, 다양하고 창의로운 인재가 자유롭게 성장하는 대한민국….

한 가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이러한 모든 것의 바탕에 교육이 있다는 점이다. 우리의 비젼이 가능하도록 누구나 다양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학교제도를 혁신하고 지능정보사회에 걸맞게 대학교육을 지원하고 재편해야 한다.

전 생애에 걸친 학습이 가능하도록 학교와 산업과 사회를 평생교육의 장으로 연결시키는 노력이 절실해 보인다. 시급히 이 일을 하지 않고서는 우리 자신을 바로 세울 수 없다. 우리가 설 수 없으면 오늘 우리가 지닌 울분은 자칫 결국은 절망에 이를 수 있다.

우리가 주의해야 할 또 하나는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 것이다. 말을 내고 펼칠 때에 조급과 경망을 다스리고 신중과 절도를 더해야 한다.

우리 스스로 신중하게 말하고 절도를 지니면서 진리를 추구하는 가운데에서 천하의 인정(認定)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이야 말로 새로운 시대를 열어줄 인재를 키우는 일에 눈을 돌려야 하지 않을까! 이것이 우리의 미래를 보장해줄 것이다. 이것은 극일(克日)을 넘어서는 극기(克己)의 자세이다.

 

조영달 서울대학교 사회교육과 교수  k-leecho@hanmail.net

<저작권자 © 여성소비자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