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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소비자신문 한지안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무역대표부(USTR)에 “한국, 중국 등 국가들을 세계무역기구(WTO) 상 인정되는 개발도상국(개도국) 지위에서 배제해야 한다”고 지시한 것을 두고 정부와 국책 연구기관이 입장차를 보이고 있다.

한국은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면서 선진국으로 선언했지만 농업 부문에서는 개도국으로 남았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한국이 WTO가 인정하는 개도국 지위에서 배제될 경우 쌀 등 농업 관련 품목에서 관세나 보조금 등의 혜택이 대폭 축소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있다. 반면 정부는 “관련 다자 협상 재개가 요원한 상태라 그간 적용되던 혜택이 당장 사라지는 건 아니다”는 입장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에 따르면 농산물에 대한 관세 감축은 WTO 협정 내에서 선진국과 개도국 간 의무 차이가 가장 큰 규정이다. 선진국이 5년간 관세를 50~70% 감축하는 동안 개도국은 10년간 33~47%를 감축하고, 감축률 차이는 평균적으로 20%포인트(p)가량에 이르는 탓이다. 이에 더해 개도국은 ‘특별품목(special products)’ 지정을 통해 관세 감축을 면제받을 수도 있다.

한국은 2001년 진행된 WTO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에서 쌀 관련 품목 16개를 특별 품목으로 지정해 513%라는 고율의 관세를 인정받았다. 만약 선진국으로 지위가 바뀔 경우 쌀에 대한 관세는 70% 감축률이 적용돼 154% 수준으로 대폭 낮아진다. 이를 민감 품목으로 지정하고 관세 감축 폭을 3분의 1로 줄이더라도 관세를 393%까지 낮추게 된다. 이 경우엔 국내 소비량의 4%에 해당하는 쿼터(TRQ)를 제공해야 한다는 조건도 붙는다.

개도국 지위에서 벗어나게 되면 쌀 외에도 핵심 농산물의 관세를 감축해야한다. 이 경우 고추 관세는 270%에서 81%로, 마늘은 360%에서 108%로, 양파는 135%에서 41%로 낮추게 된다. 감귤도 144%에서 43%로 감축해야하고 인삼도 754%에서 226%로, 분유도 176%에서 53%로 관세를 감축하게 된다.

KIEP는 “감축 대상 보조가 대부분 쌀 변동 직불금 지급에 사용되고 있다는 점과 최근 쌀 가격 급락으로 변동 직불금 규모가 상한에 근접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선진국 의무 이행은 쌀 소득보전제도의 운용에 상당한 제약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AMS 지급 상한이 8195억원에 묶일 경우 쌀 가격 급락 시 변동 직불금 지급이 불가능해 쌀 소득보전직불제도의 변경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또 “DM 기준이 급격히 내려가면 감축 보조가 대폭 증가할 수 있어 감축 보조 정책의 운용에도 상당한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반박에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와 별개로 현재 적용되고 있는 농산물 관세나 보조금은 그대로 유지된다는 것이다. 관세율이나 농업 보조금 등에 대해선 개도국 지위에 포함되는지와 관계없이 추가 협상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현재 농업 분야를 포함한 WTO DDA 협상이 10여년 넘게 중단된 상태인 탓이다. 선진국과 개도국 간 입장차가 상당해 추가로 예정된 협상도 요원하다.

김경미 농식품부 농업통상과장은 2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해당 이슈는 지난해 말부터 미국이 중국과 무역 분쟁을 하는 과정에서 시작된 것”이라며 “당시 WTO 회의에서 미국 대표단은 지금 누리는 특혜에 영향을 주는 건 아니고 미래에 있을 통상에서 포기하라는 메시지를 여러 차례 냈다”고 밝혔다.

김 과장은 “개도국 지위를 포기한다 해서 과거에 받던 혜택까지 소급해서 되돌려지는 건 아니”라며 “미국 측은 WTO에서 관련 논의가 나온 지난해 말부터 현재 누리고 있는 특혜엔 영향이 없다고 여러 번 밝혀 왔다”고 설명했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앞서 대만, 브라질 등이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면서 작성된 문서에는 기존에 농산물에 적용돼 온 관세율과 보조금에 영향이 없다는 점이 적시돼 있다. 김과장은 이어 KIEP의 분석에 대해서는 KIEP가 기반한 자료는 2008년도 WTO 문서로 죽어버린 옛날의 협정문을 기반으로 한 분석이라 신빙성이 없다는 입장을 전했다.

김 과장은 “현행 농산물 관세율은 WTO 협정문과 일체를 이루는 문서로서 미국과의 양자적인 문제로 변경되는 것이 아니”라며 “WTO 협정문을 수정하기 위해선 WTO 회원국의 컨센서스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를 통해 쌀을 제외하면 자율화가 거의 된 상태”라며 “10~15년 지나면 관세가 대부분 제로(zero)가 될 예정이라 농산물 관세율만 일방적으로 내릴 실익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보조금 한도 축소 우려에 대해서는 “역시 2008년도 WTO 문서에 따른 분석으로, 향후 실현 가능성은 희박하다”며 “차기 협상까지는 현재의 농업 보조금 한도가 유지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김 과장은 그러면서 “차기 협상의 개시 여부나 일시 등을 현재로서는 알 수 없지만, 개도국 지위를 미리 포기할 경우 차기 협상 내용에 따라 농업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면밀하고 신중하게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농식품부는 조만간 농업인들을 상대로 해당사안에 대해  설명한다는 계획이다. 김 과장에 따르면 현재 농식품부는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관련사항을 내부 검토 중이다. TF 단장은 박병홍 식품산업정책실장이 맡았다. 김 과장은 "언제가 됐든 농업 협상이 재개될 가능성에 대비해 농업 민감성을 보호하기 위한 시나리오별 대응책을 조만간 세우겠다"고 밝혔다.

한지안 기자  hann9239@wsob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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