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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명숙의 행복한 시 읽기]까치밥
구명숙 숙명여자대학교 명예교수 | 승인 2019.07.23 15:08

[여성소비자신문]까치밥

-황송문-

우리 죽어 살아요

떨어지지 말고 죽은 듯이 살아요
꽃샘바람에도 떨어지지 않는 꽃잎처럼
어지러운 세상에서 떨어지지 말아요

우리 곱게 곱게 익기로 해요
여름날의 모진 비바람을 견디어내고
금싸라기 가을볕에 단맛이 스미는
그런 성숙의 연륜 대로 익기로 해요

우리 죽은 듯이 죽어 살아요
메주가 썩어서 장맛이 들고
떫은 감도 서리 맞은 뒤에 맛 들 듯이
우리 고난 받은 뒤에 단맛을 익혀요
정겹고 꽃답게 인생을 익혀요

목이 시린 하는 드높이
홍시로 익어 지내다가

새 소식 가지고 오시는 까치에게
쭈그렁바가지로 쪼아 먹히고

이듬해 새봄에 속잎이 필 때
흙속에 묻혔다가 싹이 나는 섭리
그렇게 물 흐르듯 순애(殉愛)하며 살아요

-시 해설-

삭풍 몰아치는 한 겨울, 앙상한 가지에 두 서넛 남아 간당간당 흔들리는 홍시가 눈앞에 보이는 듯하다. 금방이라도 떨어져 깨질 것 같은 곱디고운 홍시, 봄에는 “꽃샘바람에도 떨어지지 않는 꽃잎처럼/어지러운 세상에서 떨어지지 말아요”라고 서로 격려하며 마음 굳게 세상 풍파를 잘 견디어 내자고 다짐한다.

여름 태풍도 이겨내고 가을볕에 잘 익어 홍시가 되기 위해 또 죽은 듯이 죽어 살자고 속삭인다. 그리고 “정겹고 꽃답게 인생을 익혀”서 “새 소식 가지고 오시는 까치에게/쭈그렁바가지로 쪼아 먹히고” 새 봄에 다시 태어나는 섭리를 노래한다.

황송문의 시 ‘까치밥’은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죽음도 넘어서는 고고한 삶에 이르도록 참고 살아내자는 생명사상을 담고 있다. 그 생명은 나 자신과 동시에 남을 위한 것이며 우주만물 순환하는 자연의 섭리임을 사계절의 흐름으로 묘사해 보여준다.

다른 한편, 모자랄지언정 홍시를 다 따지 않고 몇 개는 까치밥으로 남겨두는 옛 어른들의 사랑과 여유, 나눔, 배려의 삶과 정신을 엿 보게 하는 작품이다. 뿐만 아니라 홍시가 되기까지 참고 숨죽인 날들 모두 춥고 배고픈 새들을 위한 것, 즉 공생을 위한 삶이었음을 깨닫게 한다.

한 번 살고 가는 인생, 까치밥처럼 살다 가면 어떠할까. “그렇게 물 흐르듯 순애(殉愛)하며 살아요” 한 몸 모두 주고 가는 아름다운 사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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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명숙 숙명여자대학교 명예교수  k9350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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