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소비자신문]해외에서 처음 맞이하는 연말연휴로 1975년 크리스마스를 미국 북쪽 비스마르크시의 미국인 한 가족과 보내게 되었다.

남편과 어린 아들을 하나 둔 30대 여성인데 알고 보니 남자친구와 동거중인 이혼 가정이었다. 크리스마스 예배를 드리기 위해 찾아간 교회에서 그 아이의 아빠 즉 재혼하지 않은 전 남편을 만났고 동거중인 남자친구 그 밖의 교인들과 식사도 같이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녀의 전 남편은 대학까지 같이 다닌 고향친구이고 지금도 좋은 친구로 지내고 있다고 소개해주었다. 그녀의 전 남편은 남자친구와도 허물없이 담소하는 모습에 참으로 어리둥절했던 40여년 전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서양 사람인들 이혼의 아픔이나 자녀문제가 심각하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그들은 그들 자신의 문제를 남의 탓으로 돌리고 원망하기 보다는 문제의 본질과 현상을 사실 그대로 바라보고 현실적인 대안을 찾아 서로에게 합당한 방향으로 합리적 접근을 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음을 알게 되었다.

서로 상대방에게 잘못을 전가하여 서로가 불행한 결혼공해에 시달리는 우리와는 사고방식에 큰 차이가 있었다. 얼마 전 제주도에서 전 남편을 살해하여 시신을 끔찍하게 훼손한 고유정 사건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겪는 결혼과 가정 문제 처리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

살해범 고유정은 전 남편을 같은 대학에서 5년 동안이나 사귄 후 결혼하였다. 그러나 결혼생활에 실패하였고 전 남편이 2년 동안이나 만나보지 못한 아들을 보고 싶어 법원에 면접교섭권 소송을 제기한 것이 범행 동기라는 것이다.

살해당한 전 남편은 박사과정의 대학원생이었다. 2013년 고려대학교 화공생명공학과 살인사건도 대학동문간의 대학커플 사이에 일어났었다. 남자를 혐오하는 급진적 여성우월주의 커뮤니티 워마드(womad) 인터넷 게시판에는 전 남편을 죽인 고유정을 ‘제주 전사’로 칭송하였다.

이는 사건의 진실이나 팩트 보다는 남성 혐오의 편견이 우선이다. 더욱 놀랍고 안타까운 것은 이 모두가 자유로운 사고를 지향하는 지성인들이 저지른 범죄이다. 어떤 문제가 있으면 질문을 제기하고 현상을 자유롭게 검토하는 비판적 사고로 해답을 찾는 것이 지성인들의 특징이다.

오직 자신의 감정과 이데올로기 및 이기적 개인주의에 사로잡혀 잘못의 책임을 타인이나 상대방에게 떠넘기려는 것은 비합리적이고 반지성적인 자세이다. 이러한 비합리적 사고가 일상화할 때 모든 잘못을 나 이외의 타인이나 환경에 떠맡기는 비난본능만이 살아남는다. 비난본능은 문제를 검토하여 팩트(fact,사실)를 이해하려는 객관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를 방해한다.

우리는 내가 아닌 다른 희생양을 찾으려는 원초적 본능이 매우 강하다. 성숙된 인격자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편견을 버리고 문제의 본질과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들을 객관적으로 찾으려는 사실검토(팩트체크, fact check)를 우선해야 한다.

감성이 풍부하고 타인을 의식하는 것이 일상화되어온 우리나라 사람들은 개인이나 사회현상의 특수성을 검토하고 이해하려는 합리적 사고에 취약하고 다양성을 포용하고 자신 나름의 철학과 비전을 세우는 일에도 소홀하다.

최근 SNS를 비롯한 온갖 사회적 통신 매체를 통해 난무하는 정보를 사실 확인 없이 자신의 일반화된 주관적 사고와 판단을 함으로서 발생하는 사고들 또한 합리적사고의 결함에서 나타난다.

요사이 TV 방송을 비롯한 공중매체에 자주 등장하는 사건인물 가운데 영화배우 윤지오가 있다. 자신이 2009년 자살한 배우 장자연의 성적학대(sexual abuse) 사건의 증인이라고 주장하며 여당 국회의원들을 비롯하여 유명 방송인들의 지원 아래 방송에 출연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증언 활동이 자신의 신변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하여 상당한 금액의 후원금을 모았다. 그러나 그 후 그녀의 증언은 대부분 거짓임이 들어났다.

이밖에도 후원금 횡령 및 유용사건으로 소송을 당한 뮤지컬배우 박소연 사건도 꽤나 요란스럽다. 성금을 모아 버려진 애완견 즉 유기견 보호센터를 운영하고 있었지만 실상은 상당수의 유기견을 안락사시켰음이 세상에 알려졌다.

동물보호단체는 박소연을 사기 횡령죄로 고발하였고 많은 반려동물 사육 및 애호가들은 그녀의 배신행위에 분개하고 있다. 유기동물보호센터의 간판을 걸고 사람들의 동물보호 본능을 자극하여 모금 운동을 하고는 있지만 정작 여기서 벌어지는 갖가지 동물학대와 안락사에 대한 사실점검은 없는 셈이다. 유명 국회의원이나 방송신문사에서 윤지오에 대한 사실점검 즉 팩트체크를 약간만 했더라도 국민들이 윤지오와 거짓 증언에 우롱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요즈음 일상생활에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하는 단어가 팩트이다. 가짜가 아닌 진실 또는 사실을 일컫는다. 아마도 세상에 너무 거짓과 가짜가 넘쳐나고 있으며 때로는 일부러 사실을 감추고자하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상대방이 감추고 싶어 하는 사실을 들추어내어 괴로움을 가하는 행위를 팩트폭력(fact 暴力)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실상 우리가 어떤 일을 판단하거나 결정할 때에는 팩트를 무시하거나 관심이 없다.

이러한 아이러니를 지적한 것이 통계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스웨덴의 한스 로슬링((Hans Rosling) 교수이었다. 세계적인 팩트에 관한 인간들의 판단 정확도가 침팬지보다 못함을 통계학적으로 제시하였다.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인간의 오류는 인간의 극적본능 즉 통계나 자료 등 사실에 근거하려 하기 보다는 자신의 바램이나 선호하는 이념을 극대화하려는 의도 때문이라고 한다.

세상의 참모습을 보고 올바르게 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보고 바라는 대로 보려는 본능적 반응을 버리고 겸손과 비판적 사고로 세계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를 팩트풀니스(factfulness)라는 신조어로 이야기하였고 우리나라 말로는 ‘사실충실성’이라고 말한다. 즉 로슬링 박사는 느낌을 사실로 인식하는 인간의 비합리적 본능과 그로 인한 편견 때문에 인간의 많은 스트레스와 사회적 갈등이 야기되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이러한 잘못을 바꾸어 나가기 위해서는 명확한 사실에 근거한 판단과 행동이 일상화되어야 할 것이다. 느낌이 우선시되고 합리적 사고에 취약한 우리들에게 꼭 필요한 제안이다. 정책을 결정하는 정치인들에게는 더욱 필요한 덕목이다.

포퓰리즘과 사회주의 이념에 매몰된 우리나라 대통령과 정치지도자들의 정책결정 결과야말로 로슬링 교수가 가장 우려했던 현상이다. 대지진으로 원자로가 폭발사고를 일으킨다는 영화 판도라를 보고나서 탈원전 정책을 밀어 붙이고 여름철 녹조 때문에 4대강 댐을 모두 철거하겠다는 것들이 사실충실성 부재의 결과이다.

빠른 변화의 시대에 개인과 가정의 문제 해결은 물론 사회와 국가의 미래 설계를 위해서도 느낌보다는 사실에 충실한 합리적 사고와 판단이 더 효과적이다. 따라서 우리 모두 사실충실성의 지혜와 실천을 일상화하자.

강창원 건국대학교 명예교수  kkucwkang@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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