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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명숙의 행복한 시 읽기]고매
구명숙 숙명여자대학교 명예교수 | 승인 2019.06.24 09:31

[여성소비자신문]고매 古梅
       
-조운-

매화梅花 늙은 등걸
성글고 거친 가지

꽃도 드문드문
여기 하나
저기 둘씩

허울 다 털어버리고 남을 것만 남은 듯

-시 해설-

겨울이 쉬이 물러서지 않으려 버티고 있을 때, 얼어붙은 땅 속을 뚫고 일어나 제일 먼저 피어나는 강인하고 고결한 꽃, 그 매화가 눈 속을 떨치고 쏘옥 얼굴을 내밀면 “봄이 왔구나!” 우리는 탄성을 지르며 감격한다.

옛 부터 매화는 결백하고 지조 높은 선비 정신을 표상한다. 학 같은 선비나 군자, 절개 그리고 정절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 때문인지 매화를 주제로 한 시조와 시 작품이 많다.

시조 시인 조운은 ‘고매’라는 제목의 시에서 매화를 지극히 절제된 언어로 정감있게 노래하고 있다. 첫 연은 “매화 늙은 등걸/성글고 거친 가지”로 시작한다. 뜰 앞에 말없이 서 있는 늙은 매화는 울퉁불퉁 굽은 가지 몇 개를 남겨두고 있는 듯하다.

오랜 세파에 시달려 쭈글쭈글 거칠어진 나무 등걸은 인생 깊게 파인 주름을 연상케 한다. 숱한 세월을 꿋꿋이 견뎌낸 매화는 “꽃도 드문드문/여기 하나/저기 둘씩” 띄엄띄엄 피워 놓는다.

하지만 “여기 하나, 저기 둘씩” 환히 피어 있는 하얀 꽃은 검고 늙은 가지와 대조를 이루며 빛나고 있다. 여기보다 조금 떨어진 저기에는 둘씩 짝지어 한결 다정해보이며, 새 봄 새 희망이 깃들어 있는 풍경을 느끼게 한다.

“여기 하나, 저기 둘씩”은 참으로 절절한 표현이다. 피어 있는 꽃들이 공간적으로 먼 듯 가까운 듯 정감 있게 돋보인다. 시공간적 여백을 통해 여유와 기품을 상징적으로 드러내 보이며 피어날 곳에 제대로 피었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연 “허울 다 털어버리고 남을 것만 남은 듯” 이 구절은 욕망과 절제의 삶에 대한 긴 여운과 진실함을 전하고 있다.

조운 시인의 시 ‘고매’는 한 글자도 더하고 뺄 수 없는 최소의 언어로 응축·표현하여 웅숭깊은 의미를 내포한 절제의 미학을 보여준다. 허울 다 털어버리고 남을 것만 남은 듯.

 

 

구명숙 숙명여자대학교 명예교수  k9350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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