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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경 백파선역사문화아카데미 대표 “조선 도공 백파선의 리더십 다시금 조명돼야”
김희정 기자 | 승인 2019.06.11 16:58

[여성소비자신문 김희정 기자]지난 6월 8일 국립중앙박물관 소강당에서는 국제공예 학술포럼이 개최됐다.

백파선은 1623년경 심해종전의 미망인 백파선이 동족인 조선 사기장 960명을 이끌고 아리타의 히에고바에 가마를 연 여성이다. 그는 500여년 전에 조선에서 태어나 400여년전 일본에서 생을 마감한 여성이다. 조선에서 살 때는 김해의 도공 김태도의 아내로만 불렸으나 일본에 가서 도자기의 어머니가 된 조선의 여인이다. 조선을 떠나 일본에서 살았던 60여 년의 세월 동안 백파선에게 어떤 일이 있었기에 이름 조차 없었던 도공의 아내가 일본 도자기의 어머니가 되었을까?

이혜경 백파선역사문화아카데미 대표는 한일 백파선 국제포럼을 개최하게 된 배경에 대해 “가장 가까운 나라이지만 가장 먼 나라가 된 한국과 일본 간의 정국이 점점 경색되고 있다”며 “그간 정치인들이 나서서 한국과 일본의 얼어붙은 정국을 풀어내려는 노력이 있기도 했으나, 양국 간의 첨예한 이해관계가 등장하며 정국은 더욱 얼어붙었고, 반일이나 혐한 등 서로를 반목하는 분위기가 거세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때 양국의 얼어붙은 분위기를 문화를 통해 풀어보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던 중, 한·일 간의 공동역사 연구 및 문화교류를 목적으로 하는 포럼을 기획하게 됐다. 이번 포럼의 부제는 한국인과 일본인 모두에게 다소 생소한 이름인 조선의 여인 ‘백파선(百婆仙)’으로 정했는데, 이는 양국 모두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적 인물을 공동발굴하며 그녀를 통해 양국에 사랑과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일본 아리타에서는 조선 도공 이삼평을 ‘도자의 신’, ‘도자의 시조’로 추앙하고 있지만 함께 도자기를 만들었던 백파선은 주목받지 못했다. 백파선도 실제 이름이 아니라 머리카락이 흰 할머니라는 의미로 후손이 지은 것이다.

아리타에서는 매년 5월 도자기 축제와 도조제를 열어 이삼평을 기린다. 이삼평의 공덕비에는 ‘대은인’이라고 씌여져 있다. 그러나 백파선에 대한 관심은 지역 차원이 아닌 백파선에 주목해 활동하고 있는 지역의 독지가인 구보타 히토시씨가 백파선 갤러리를 운영하면서 전파시키고 있다. 다음은 이혜경 백파선역사문화아카데미 대표와의 일문일답.

-백파선이란 여성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백파선은 정유재란 당시에 일본으로 가서, 일본의 사가현 아리타를 세계적인 도자기의 메카로 부흥시킨 위대한 여성이다. 특히 냉혹한 현실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인생과 960여명의 조선 도공들의 삶을 강인하게 개척한 여성인데,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고 있어 안타까웠다. 백파선이라는 인물을 연구하고 탐구하면 할수록 21세기를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롤모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국제 학술포럼을 통해 한일 관계의 개선을 어떻게 기대하는가.

“역사를 고증하고 발굴하는 것만으로 끝난다면 단순한 역사공부에 지나지 않는다. 본 포럼은 역사의 발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백파선이라는 콘텐츠를 개발해 통해 한국과 일본의 문화교류의 미래상을 제시하는데 목적이 있다. 문화를 통해 양국이 함께 손잡고 미래를 이야기 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백파선의 리더십을 오늘날 여성에게 접목해 볼 때 어떤 점을 우리가 특별히 받아들이고 배울 수 있는가.

“요즘 1030 여성들이 닮고 싶어 하는 걸크러시의 원조는 백파선이 아닐까 생각한다. 남성들 사이에서 자기 주장을 하는 스마트한 여성의 이미지는 백파선에게 그대로 투영된다. 조선시대의 상황은 어떠했는가. 당시 도공들의 세계는 여성들은 접근하지 조차 힘든 곳이었다.

조선에서 도공들은 천민으로 대우받았는데 여성들은 도자기를 만드는 가마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여자가 가마 근처에 오면 그릇이 시샘해서 좋은 자기가 나오지 않는다는 미명 하에, 천민보다 더 천한 존재로 취급되었다.

그래서 백파선은 조선에서는 그릇을 굽는 사기장의 아내 ‘김씨댁’에 불과했으나, 일본에서는 960여명의 조선도공들을 이끌고 일본의 도자기 산업을 부흥시키는 혁신의 리더가 되었다. 백파선을 조선의 도공이라고 명명하는 곳이 있으나 엄밀히 말하면 그녀는 조선에서는 도공이 아니었고 일본에 가서 도공이 되었다.

전쟁포로로 일본에 간 백파선은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고 일본 최고의 도공이 되었다. 지금도 우리는 해외 이민자들 중에 성공한 이들의 영웅담에 열광한다. 이는 해외이민자들이 주류사회에 편입하기 위해 얼마나 힘이 드는지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녀가 살았던 시대는 지금으로부터 무려 400년이 훨씬 넘는 시대가 아닌가. 운명에 굴복하지 않는 그녀의 삶을 특별하게 생각한다.“

-앞으로 백파선 역사문화아카데미에서는 어떤 일들을 계획하고 있는가.

“백파선에 대해 알게 되면서 역사에 대해 알아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래서 2019년 2월에 백파선의 이름으로 역사문화아카데미를 설립하고 매월 1회 역사공부를 하고 있다. 지속적으로 공부를 계속할 것이며, 백파선의 이름을 널리 알릴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을 하고 싶다. 백파선의 이름만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자긍심, 여성들을 위한 롤모델을 개발하고 싶기 때문이다. 백파선역사문화아카데미는 남녀노소 누구나 회원가입이 가능하다. 회원으로 가입하여 함께 공부하고, 함께 백파선 콘텐츠를 개발하고 싶다.”

한편 이번 국제공예 학술포럼을 주관한 서울디자인재단 최경란 대표는 “최근 젊은이들이 쓰는 말 중에 걸 크러시라고 한다. 남자들 사이에서 어깨를 겨루며 당당하게 자기 인생을 대척하는 여성들을 소위 걸크러시라고 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보면 걸크러시의 원조가 바로 백파선이 아닐까 생각된다”라고 말했다.

또 “백파선의 피에 흐르고 있던 리더십 DNA가 가장 필요한 것은 어쩌면 지금 일지도 모른다”며 “21세기 대한민국의 여성 뿐 아니라 젊은이들에게 조선 여인의 당당한 리더십이 롤모델이 되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이어 “고향이 아닌 먼 이역만리의 타국에서 남편과 사별한 후에 홀로 자식을 키우며 혹독한 운명을 맞았던 삼십대 초반의 조선 여인은, 주저앉아 우는 대신 당당하게 인생과 맞섰다”며 “남편이 하던 도자기 기술을 몸소 배우고 익히는 한편 함께 이주해온 조선의 도공과 그 가족들을 이끌고 아리타로 이주했다. 그리고 아리타의 도자산업을 견인하는 주역이 되었다. 400여년 전 백파선이 일본에서 보내야 했던 60여년의 긴 세월 백파선은 조선 도공들의 리더가 되었다. 그리고 아리타를 도자산업의 메카로 육성시켰다”고 강조했다.

이번 국제공예 학술포럼은 도예가이자 백파선의 후손인 하시구치 아키히토의 ‘백파선 후손으로서의 삶’이라는 주제 발표가 있었다. 이후 조용준 역사저널리스트의 ‘메이지 유신이 조선에 묻다’, 다카쿠사키 미나씨의 ‘백파선의 비문연구’에 대한 발표가 이어졌다.

또 서상욱 백파선 역사문화 아카데미 원장의 ‘백파선의 세계사적 의미’라는 주제의 발표에 이어 건국대학교 정윤희씨의 사회로 백파선의 역사적 재조명이라는 주제의 토론회가 열렸다. 한성욱 민족문화유산연구원장의 ‘고흥 도자 가마터에서 본 한일 도자 교류사’에 대한 발표, 이한옥 도예가의 백파선과 도자기 콘텐츠, 이선영 건국대학교 문화콘텐츠 박사의 문화 콘텐츠 산업으로서의 백파선 콘텐츠에 대한 발표가 있었다. 이정민 트래블온 대표와 원주대학교 김동원씨는 백파선과 여행 콘텐츠에 대해 발표했다.

이날 참석한 발표자들은 백파선이라는 인물을 통한 문화산업콘텐츠산업 활성화 방안과 관련해 체계적인 연구가 우선돼야 한다고 한 목소리로 말했다.

 

김희정 기자  penmoim@wsob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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