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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겸 칼럼⑨]매일 매일 “Happy Birthday!”
하도겸 나마스떼코리아 대표 | 승인 2019.06.07 10:29

[여성소비자신문]가끔씩 우울하고 외롭고 후회가 되는 시간이 찾아온다. 그 빈도에 따라 병이라고도 하는데, 어디가 경계인지 모호할 때가 있다. 하지만 병인지 아닌지의 여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말 후회해도 되는 것인지가 아닐까? 어쩌면 정말 지금 다 끝나버린 것일까를 점검해봐야 할 수 있다. 아직 끝나지도 않은 일인데 다 끝났다고 성급하게 결론부터 내린 것은 아닐까?

유화를 그리다보면 언제나 덧칠을 할 수 있게 그림 자체를 완전히 바꿀 수도 있다. 그런데 끝났다고 하면 정말 끝나버리는게 된다. 하지만 언제든지 새로운 각오를 가지고 다시 그리다보면 지금의 모습은 사라지고 스스로 그리고 싶은 그림을 완성할 수 있다.

"그때 당신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지금 어떻게 살고 있었을까?"

가끔 주변에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접하게 된다. 스스로도 이런 생각을 안해 본 것은 아니지만 그 덧없음에 언젠가부터 내려놓은 허튼 생각 즉 망상일 따름이다.

우리의 만남이 과연 우연이었을까? 세상의 모든 만남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일 따름이다. 운명까지라고 하기에는 부담이 크지만 하지만 그런 부담을 늘 안고 사는 게 우리네 인생이 아닐까? 만남이 우연이라고 생각하고 싶더라도 그 만남이라는 물감이 마른 지금은 필연일 따름이다.

만남이 전생이나 다른 사람의 업으로 인해서 이뤄진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 만남으로부터 시작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는 모든 과정에는 “내 탓”이 함께 한다. 그 과정의 순간순간에서 우리는 얼마든지 다른 선택을 할 수가 있었다. 그런 선택은 필연이라고 보다는 언제나 우연이었다. 하지만 그 우연조차도 필연으로 받아들여 나의 성장의 자양분으로 삼는 것은 어떨까? 그냥 피하고 덧칠하기 보다는 가끔 실수 조차도 그 결과를 차분히 살펴보는 것 말이다.

소 뒷걸음치다가 쥐를 잡게 된다는 말이 있다. 의학사를 돌아보면 실험 과정에서의 사소한 실수가 위대한 발견을 부르기도 한다. 영국의 미생물학자인 플레밍은 세균 배양기 위에 콧물을 떨어뜨린 적이 있다. 그리 유쾌하지 못한 실수였으니 얼른 치워버리고 새로 시작했을 것 같다.

하지만 플레밍은 실수가 어떤 결과를 낳는지 조차 관찰할 수 있는 안목을 가지고 있었다. 콧물 속에 세균을 죽이는 리소자임이라는 물질을 발견하게 되고 나중에는 ‘페니실륨 노타튬’이라는 푸른곰팡이가 폐렴균 등의 세균을 죽인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게 만든 페니실린은 그에게 1945년 노벨상을 선사했고 그가 상용화 과정 가운데 실험 동물로 독성이 강한 기니피그가 아니라 생쥐를 썼다는 점이다. 현대 의학의 발전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항생제는 이렇게 이어진 우연의 결과로 세상에 선을 보였다. 본래의 의도와는 다른 전혀 칠칠치 못한 실수로 인한 실패지만 플레밍은 그 실수로 인한 현상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그 과정에서 중요한 발견을 놓치지 않았다.

그런데 정말 그게 실수였을까? 실수는 실패라는 면에서 부정적인 면도 있지만, 실제로 성공의 열쇠가 되었다면 행운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지 않았을까? 작은 실수라도 성공의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여하튼 간에 이런 사실에 대해 별로 궁금하지 않은 사람들은 플레밍이 소 뒷걸음을 치다가 실험용 쥐를 잡았으니 쥐띠 다음에 소띠해가 오는 이유가 그런 것인지 모르겠다. 소는 굳이 쥐를 잡으려고 하지 않고 뒷걸음만 쳐도 쥐가 발에 깔려주는 것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이와 같이 실수는 준비가 안된 사람들에게는 우연에 불과하다. 하지만, 늘 차한잔 하면서 성찰하고 반성하며 일희일비하지 않고 지켜보는 안목을 가진 사람에게는 더 이상 우연이 아니다. 오히려 성공의 길에 들어서는 필연이 되는 것은 아닐까 싶다.

“그때 그 일이 없었더라면 지금 어떻게 살고 있었을까?”

물론 지켜보는 것 조차도 우연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해피엔딩 같은 드라마는 별 흥미가 없다. 인생에서도 다른 버전은 있을 수 없기에 역사학에서도 “Historical If”는 설 자리가 없다.

과거 언젠가 잠시 한 때 운이나 우연으로 행운이 왔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유다. 어쩌면 그런 운이나 우연의 연속이 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바로 지금 서 있는 자리는 나를 둘러싼 모든 인연이라는 관계의 노력이라는 필연의 결과일 따름이다. 그렇기에 점점 조여들여 올 것인지 확장되어 나갈 것인지 등등 그런 인과의 법칙은 정말로 지옥보다 더 무서운 것이 아닐 수 없다.

까닭에 도피가 아니라 “내탓”을 하며 스스로를 돌아봐야 할 따름이다. 내 앞에 벌어진 모든 일들이 다만 어제 아니 지금까지의 결과일 따름이지 끝은 아니다. 다 과정일 따름이며 긴 안목으로 볼 때 마지막 결과는 아니다.

그렇기에 우리에겐 희망이 있다. 매일 매일 참회와 새로운 다짐으로 또 하루를 열며 ‘오래된 미래’를 시작할 수 있어 행복해 하면 된다. 또 하루 새롭게 시작하는 바로 오늘을 내가 새롭게 태어나는 ‘생일’로 만들어본다. Happy Birthday!  매일 매일 “Happy Birthday!” 매일 매일이 술이 아니라 보이차로 축배를 들며 오늘 하루 집을 나선다.

하도겸 나마스떼코리아 대표  dogyeom.h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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