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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더 무서운 나라의 가정의 달
강창원 건국대학교 명예교수 | 승인 2019.05.30 11:03

[여성소비자신문]우리나라에서는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을 가정의 달로 지정하여 전국적으로 각종 행사가 펼쳐진다. 가정을 이루는 가족의 존재에 좀 더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 부부의 날 들을 기념하고 있다. 교회에서는 한 주간을 정하여 가정주간으로 기념하고 각종 행사를 열기도 한다.

이처럼 우리의 삶은 물론 사회와 국가 존재의 기본이 되는 가정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가정이 있음에 감사함을 표하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다. 우리나라처럼 온 국민이 가정의 날 축제를 즐기는 나라가 있을까 싶다. 개개인의 가치와 존엄성은 물론 가족과 이웃사랑을 돈독히 함으로써 공동체 의식을 높이고 공동선(共同善)을 추구하려는데 가정의 달 의의가 크다.

가족은 가장 가까이 있어 날마다 마주치며 살고 있기에 사랑하고 감사하기 보다는 무관심 하고 때로는 섭섭해지기 쉬운 관계가 되기 쉽다. 경황없이 바삐 돌아가는 세상살이 속에서 가족의 소중함을 돌이켜보고 그간 소홀하였던 가족에게 감사와 사랑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연중 가장 아름다운 계절과 너무 잘 어울리는 사랑의 축제이다. 그러나 해마다 되풀이 되는 가정의 날 이면에는 너무나도 부끄럽고 안타까운 불행의 민낯들이 숨겨져 있음에 가슴이 아프다. 이혼에 따르는 가정 해체, 아동학대, 노인학대, 부모자식 간의 존속 상해나 살해, 부모와 자녀의 동반자살, 낙태와 영아유기, 미성년자에 대한 성추행과  성폭력 등이 날로 증가하고 있다.

‘가족이 더 무섭다’라는 한탄과 절규에 가정의 달이 무색해진다. 가장 작은 공동체인 가정은 가족 간의 사랑과 감사를 기초로 한다. 그런데 어떤 이유로 사랑이 상실되고 미움과 갈등이 발생함에 따라 가족 간에 의도적인 괴롭힘이나 학대, 폭력이 행사될 때 가정폭력이 된다.

우리나라 경찰청 자료에 의하면 최근 5년 사이에 가정폭력이 5배로 증가하였고 신고되지 않는 가정폭력까지 고려하면 ‘가족이 더 무섭다’라는 표현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우리나라 가정폭력의 80%는 부부간에 일어나며 폭력 행위자의 약 80%는 남성이다.

2008년도 가해 여성이 약 15%인데 비해 2017년에는 20%로 여성 가해자 비율이 1.4배 증가한 셈이다. 즉, 시대의 흐름과 함께 여성도 더 이상 남성의 폭력을 참거나 감내하려 들기 보다는 공격적인 맞대응을 하는 추세로 변하고 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학대나 폭력의 대상이 가족 중에 힘이 약한 노인이나 어린 아동으로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며칠 전에 발표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홍철호 의원의 자료에 의하면 부모(조부모 포함)를 대상으로 한 존속범죄(존속살해 제외) 발생이 2012년에 956건 이던 것이 매년 증가하여 2016년에는 2천 건이 넘었다고 한다. 즉, 부모를 향한 패륜범죄가 지난 5년 사이에 2배가량 증가하였다.

지난해 광주광역시에서 2건의 아들에 의한 부모 살해가 있었고 연이어 진주에서 발생한 2건도 아들에 의한 아버지 살해 사건 등등 우리나라 존속 살해범의 숫자가 매년 50명 이상이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어른들의 자기 자녀를 비롯한 어린 아동학대 또한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접수된 자료에 의하면 아동들에 대한 신체적, 정서적, 성적 및 방임(유기)에 따른 학대는 2001년에 약 2천여 건이었는데 2017년에는 약 2만2천여 건으로 10배나 증가하였다. 이 통계치는 전문기관에 접수된 것만을 기록한 것이고 실제는 이보다 훨씬 높은 수치로 추정된다.

아동전문기관의 연구에 의하면 우리나라 아동학대 신고 비율이 약 29%에 불과하여 미국의 61.6%나 호주의 51.3%에 비해 턱없이 낮은 신고율을 보인다고 한다. 이 같은 아동학대는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등에서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어서 CCTV 설치를 의무화하기도 했다. 학대에 따른 아동 사망의 숫자 또한 해마다 늘고 있다.

최근에 보도 건 중 의붓아버지에게 성추행 당한 뒤 살해당한 열두 살 소녀나 경기도 시흥의 30대 부부와 두 자녀 일가족 4명의 동반자살 등 가정의 비정상화 및 와해에 따른 아동학대와 사망이 날로 심각해져가고 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와 같은 아동학대의 70% 이상이 부모(친부모, 계부모, 양부모)에 의해 행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가정폭력은 사랑의 공동체인 가정 안에서 은밀히 일어나기 때문에 신고율이 낮고 외부 노출이 어렵다. 그 결과 피해자들은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고통을 당하여 자칫 존속살해로 귀결되기 쉽다.

우리나라에는 여성가족부가 있어서 각종 법과 제도는 물론 가정의 달 행사로서 가정 폭력을 예방하고 사랑과 평안이 넘치는 가정을 추구해보지만 실효성은 별로 크지 않다. 최근 상당수 여성 단체에서는 가해자 처벌을 강화하는 엄벌주의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물론 선진국 어디에서도 강화된 처벌이나 제도로 가정폭력이 줄어들었다는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가정폭력은 패륜범죄이다. 가족에 대한 사랑과 감사가 결핍되고 자신의 욕망을 억제하지 못할 때 나타나는 병적인 사회범죄이다. 2002년도에 분당구 서현동에서 발생한 유학생 아들에 의한 교수 아버지와 유치원 원장 할머니 살해 사건이 세상을 경악시켰지만 가중처벌과 같은 법적인 제제나 형벌로써 이러한 폐륜범죄를 예방 할 수 있었을까?

권력과 돈의 위력 및 거짓과 불의가 넘쳐나는 이 땅의 황무함이 지속되는 한 이웃은 물론 가족에 대한 사랑과 감사 대신 증오와 배신만이 넘쳐나리라. 일터와 길거리 범죄는 더욱 발달된 범죄 수사기술과 벌칙 강화로 줄일 수 있겠지만 가정 내의 학대나 폭력은 더욱 기승을 부릴 것 같아 염려스럽다.

사회복지 강화로 가족의 해체를 막고 부모들은 가정에서 사랑과 감사를 실천함으로써 자녀들 인성교육의 우선순위를 높이자. 거창한 가정의 날 행사보다는 커피시인 윤보영의 ‘향기나는 5월’의 시처럼 ‘받는 사랑보다 주는 사랑으로 더 행복한 5월’이 되도록 내 가족을 돌아보며 우리가족이 모두 ‘행복의 주인공이 되는 5월’을 만들자. 복권에 당첨된다고 해서 행복해지지 않음을 깨닫는 5월이 되고, 자녀 없이 인생을 마감하는 독신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고독과 회한 그리고 서산에 지는 해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사랑의 소중함에 눈물 흘리던 니체의 교훈을 배우는 가정의 달이 되기를 소원해본다.

강창원 건국대학교 명예교수  kkucwkang@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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