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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순구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장 "젊은이들이여, 보다 크고 위대한 가치를 향해 나아가라"
김희정 기자 | 승인 2019.05.10 11:38

[여성소비자신문 김희정 기자]“3·1 운동 100주년을 맞이하는 올해에 독립선언서가 자주 언급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3·1 운동 하면 민족 대표 33인과 독립선언서가 먼저 떠오르지요. 독립선언서는 3·1 운동의 기폭제였으며 만세운동을 오랜 기간 지속시키는 원동력이었습니다. 독립선언서는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겠지만 저는 좀 색다른 시각에서 독립선언서의 역사를 보듬어 보고자 합니다.”

명순구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장은 독립선언문을 제작한 출판사가 바로 보성사이며 흥미롭게도 그 역사에는 고려대학교가 깊숙이 관련되어 있다고 했다.

명 원장은 “독립선언서는 제1차 세계대전 후 종전 후의 세계 질서를 구축하기 위한 파리강화회의 등 세계 만방에 조선인의 독립의지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지적인 수단이었지요”라고 강조했다.

<여성소비자신문>은 지난 5월 1일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원장실에서 3·1 운동 100주년에 즈음해 고려대학교와 독립선언문 인쇄 출판사인 보성사의 발자취에 대해 명순구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장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명순구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원장 <사진 여성소비자신문>

“저는 원래 역사를 좋아합니다. 우리나라 전체의 역사 보다는 ‘법의 역사’ ‘고려대학교의 역사가 우리 근대사와 만나는 부분의 역사’에 주로 관심이 많습니다. 재밌는 것은 고려대학교가 1905년에 만들어져서 114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잖아요. 사실 114년 전 고려대학교가 처음 어디에서 출발했는지에 대해 그동안은 정확히 나타나지 않았어요. 2015년에 제가 책을 쓰면서 그곳이 어디인지 알게 되었어요. 그것이 지금의 종로 조계사였습니다. 그곳에 가보니 엄청나게 큰 나무가 있어요. 그게 ‘학자 나무’라고 하는 ‘회화나무’입니다.

제가 그 나무에 매료되어 그 나무 씨를 받아오는 행사를 했어요. 그리고 그 나무의 싹이 자라나 이제는 그 나무를 학교에 심는 행사를 5월 3일에 합니다. 회화나무는 선비의 집, 서원, 궁궐 같은 곳에 심겨져 있는 나무입니다. 성균관이나 국자감 같은 곳에 주로 이 회화나무가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고려대학교 출발지에 있었던 회화나무의 씨를 받아 그 나무를 고려대학교에 다시 심는 것에 대해 매우 의미있게 생각합니다.

그 묘목을 키워 학교에 다시 심는 것은 틀림없이 학생들에게 주는 메시지가 분명히 있다고 봅니다. 2015년에 회화나무의 존재를 알게 되고 2017년에 회화나무의 씨를 받아 2019년에 그 나무를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앞 정원에 다시 심게 됐으니 5년 동안 설계한 것을 이루게 되어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사진 여성소비자신문>

그는 학생들에게 이 나무에 대한 소개를 하고 다시 심는 의미에 대해 설명을 하면서 홈페이지에도 이에 대한 설명을 해놓았다.

명 교수는 “젊은 시절에 이런 매개들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게 누구에게는 건물, 누구에게는 꽃이 될 수도 있지요. 뭐가 어떤 학생들의 마음을 휘저을지 알 수 없잖아요. 그러니까 좋은 것들을 학교 곳곳에 놓아두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중의 어느 하나라도 학생들에게 걸려들 수 있는 것이지요.

학생들은 다양하니까, 학생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뭔가가 있어야 돼요. 그런 마음을 사로 잡는 매개가 학교 주위에 많은 학교가 좋은 학교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학교는 그런 매개가 얼마나 다양하게 많이 있느냐가 바로 좋은 학교의 기준이라고 봅니다. 그건 사람일 수도 있고 사물일 수도 있어요. 저는 28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쳐오면서 더더욱 그런 생각들을 하게 됩니다.

저는 학생들이 졸업하고 입학하는 시즌인 2월에 시크라맨을 법대 주변 잔디밭에 쫙 심어서 꽃길을 깔아 놓았습니다. 우리 학교를 졸업하는 학생이나 우리 학교에 입학하는 학생들이 ‘꽃길만 걸어라’는 의미에서였습니다. 스크래맨이란 꽃은 추위에 강한 꽃입니다. 올해 입학한 학생들에게는 저 꽃을 하나씩 나누어주었더니 학부모님들도 매우 좋아했어요.”

"고려대학교가 대한민국의 법 설계에 기여했다"

<사진 여성소비자신문>

그는 최근 고려대학교가 법으로 대한민국을 설계했다는 주장을 했다.

“1955년 고려대학교 총장이었던 유진오 교수가 헌법을 만들었고 고려대학교 이사를 하시고 강의도 30년간 하신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이 법전 편찬위원회 위원으로서 헌법 밑의 민법과 형법을 만드셨어요. 따라서 그분들이 정부 수립 후에 법으로 대한민국의 법을 설계했습니다.” 그는 그런 의미에서 고려대학교가 대한민국을 설계했다고 주장했다.

“우리나라 전체가 그동안 급박하게 살아오느라 사실 과거를 챙기지 못했어요. 그러나 과거에 대한 조명 없이는 미래로 나아갈 수 없다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역사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역사를 정확하게 인식하지 않고는 미래의 가치를 추구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저는 학생들에게 첫 번째 강의를 할 때 고려대 역사에 대한 강의를 합니다.

고려대학교의 역사가 서울대학교와 다른 점이 있다면 서울대는 일제시대 때 국가가 만든 학교입니다. 그래서 이념이 단일했어요. 우익의 이념이었죠. 다른 이념이 들어오면 국가를 전복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이념이 들어올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당시의 보성전문대학교는 그런 점에서 자유로웠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익 계열의 분들도 계셨지만 사회주의 계열의 이념도 많아 성장했습니다.

그러니까 사상이 매우 다양하죠. 그런 의미에서 고려대학교는 저항력도 있고 사상이 매우 다양합니다. 그런 것들이 나타난 것이 바로 1919년에 3·1 운동이었습니다. 3·1 운동이 일어났을 때 3·1 운동을 주관한 손병희 선생이 당시 보성전문의 경영자였어요. 그리고 학생대표가 보성전문 법과 1학년 학생이었어요. 기미독립문을 인쇄한 곳이 보성전문 도서출판사인 보성사였어요.

3·1 운동과 관련된 고려대학교의 이야기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에 3·1 운동이 끝나고 주모자 48명에 대한 재판이 열렸습니다. 이때 3·1 운동 주모자들 재판의 변호인이 보성전문 법과 1회 졸업생이에요. 허헌이라고 하는 분인데 그 분이 3·1 운동 주모자들에 대한 변호를 해서 1심에서 승소를 합니다. 주모자를 변호하는 일을 해서 각하시켜요. 물론 2심에서는 다시 유죄판결이 났지만 이것은 대단한 일이에요. 판결이 그 분의 변호의 영향 때문에 많이 낮아졌습니다.

그런데 그 사건이 한국에서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그 분이 해방 후 1948년에 월북을 합니다. 우리나라의 이념 대립 때문에 그런 분들의 역사도 묻혀지게 된 것입니다. 저는 대한민국이 이제는 그런 것들을 수면 위로 올려서 얘기할 만한 때가 됐다고 봅니다. 이제는 그런 역사를 품을 만큼 대한민국이 성장했다고 저는 봅니다.

당시에 독립운동을 하던 민족주의 계열의 사회주의자들은 김일성과는 많이 다른 분들이었습니다. 그렇게 일당독재를 하라고 사회주의를 하신 분들이 아니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그런 역사들이 묻히게 된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고려대학교 2, 3, 4대 총장을 역임하신 유진오 총장님이 회고록을 쓰신 책이 있습니다. ‘양호기’리는 책인데 ‘호랑이를 기른 이야기’라는 제목이에요. 그 책이 원래 종서로 되어 있었고 한자가 많았는데 그것을 횡서로 바꿨어요. 어제(4월 30일) 그 책이 발간되었는데 그 책의 발간사를 제가 썼어요.”

4차 산업혁명시대 맞아 헬스케어와 보건의료 법에 대한 연구 중요

역사와 더불어 명 원장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또 다른 분야는 헬스케어, 보건의료 법과 관련 분야다.

“헬스케어와 관련해서는 저희 법학연구원에 보건의료법 정책연구센터가 있습니다. 보건의료 쪽은 한마디로 미래 먹거리 사업이라고 할 수 있어요. 모든 4차 산업혁명의 테크닉들이 다 집결하는 곳이 바로 헬스케어죠. 이곳은 의료 부분도 들어가지만 넓게 보면 사람의 건강, 행복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 모든 것이 집결됩니다. 저희 보건의료법 정책연구센터에서는 인문, 공학, 간호, 보건과학대학, 간호대학, 의과대학 등 우리 학교의 전 영역의 교수님들이 연구에 참여하고 있고 학교 밖의 전문가들도 연구에 참여하고 있어요.

제가 이 센터의 부소장으로 있는데 보건의료 관련 분쟁에 대한 해결도 있지만 무엇보다 미래에 보건의료를 정책적으로 어떻게 설계해야 한다는 것들의 문제들에 관한 연구 등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금 건강보험과 관련된 여러 가지 문제들을 정부에서 해결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재정에 관한 문제가 따르기 때문에 해결하기 쉽지 않은 부분이 많습니다. 최근들어 고령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면서 간병비에 대한 문제가 떠오르고 있어요. 간병비를 건강보험으로 어느 정도 커버해 줘야 하지 않는 거냐는 것이죠.

지금 가정마다 70세 넘는 노인분들이 안 계시는 가정이 거의 없잖아요. 간병비와 관련된 부분을 점차적으로라도 건강보험에서 어느 정도는 부담을 해야 하지 않느냐는 것 등의 제안을 했습니다. 현실적으로 건강보험 문제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 정책적인 문제를 건의한 것이지요. 이처럼 법적인 문제 뿐만 아니라 정책적인 연구와 제안들을 주로 하는 곳입니다.”

명순구 원장은

명순구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원장은 1985년에 고려대학교에서 법과대학을 졸업헀다. 1987년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법학석사를 마치고 1994년 프랑스에 유학해 프랑스 파리 제1대학교(Pantheon-Sorbonne)에서 법학박사를 박사를 땄다. 1994년에 유학을 마치고 들어온 뒤 한 학기 뒤에 바로 모교에 발령받았다.

“그때 학장님이 당신이 고대 역사상 최연소 교수니 앞으로 모교를 위해 분골쇄신하라고 하셨습니다.” 당시 명 원장의 나이는 32세였다.

“그 교수님의 가르침처럼 그렇게 살아왔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름대로 학교를 위해 많이 생각하려고 해요.” 명 원장은 고대 학생들에게 민법 등을 강의하고 민사법학회 등 여러 가지 학회 활동도 해왔다.

명 원장은 “원래 저는 학교 안에서 학생들과 공부하는 것을 주로 했던 사람입니다. 2011년에 우연한 기회에 2011년 당시 김정철 총장님이 저를 교무처장으로 부르셔서 거의 3년반 교무처장을 했어요.” 이후 2017년부터 명 원장은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원장을 맡아 왔다.

 ‘Go beyond Greatness’ 가치를 추구하자
 
명 원장이 고려대 법무대학원 원장을 지내면서 지향해 온 모토는 무엇일까.

“제가 법학전문대학원 원장이 된 다음에 우리 대학원의 목표를 ‘G스퀘어’라고 붙였습니다. G스퀘어란 ‘G×G’ 다시 말해 ‘Go beyond Greatness’라는 뜻입니다. ‘크고 많은 것을 넘어선 가치를 추구하자’는 의미입니다.

우리나라 대학들은 그동안 고속성장을 해오다 보니 가치 성장이란 점에 있어서 소홀한 점이 있었어요. 대학순위, 소위 ‘랭킹’ 같은 것들에 몰두해온 상황이었죠. 이 사회가 대학들을 그렇게 몰아가는 면도 없지 않아 있었어요. 저도 학교의 보직을 맡고 있으면서 그런 것들을 지키느라 고생도 많이 했어요.

물론 그것도 중요하죠. 그러나 그와 병행해서 ‘이 시대에 미래를 위해 학교가 추구해야 하는 가치가 무엇인가’ 하는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보다 크고 높은 가치들을 추구하자’는 점에서 과거에 우리 로스쿨에도 없었고 다른 로스쿨에서도 거의 하지 않는 것들을 시도하려고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장학제도도 성적 장학금 보다는 집안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 혜택을 늘리기 위한 노력도 많이 했습니다. 또 장학금을 받는 학생들이 장학금을 받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것이 언젠가는 학교나 사회에 돌려줘야 하는 것들이라는 점을 학생들에게 많이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연어 장학금’을 강조했습니다. 자기가 사회에 나가 돈을 벌면 학교에 다시 돌려주는 생각을 갖게 하자는 것입니다. 물론 자기가 100을 받았을 때 젊은 시절에 형편도 여의치 않는데 그것을 다 돌려줄 수는 없겠죠. 하지만 얼마라도 학교를 생각하며 돌려주는 그런 마음을 갖도록 하는 것입니다. ‘가치’라는 것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저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을 위해 하는 것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는 것이 바로 가치의 출발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고대 법대가 세계 48위의 랭킹에 있는데, 그렇다면 거기에 따른 책임도 져야 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 개발도상국 학생들을 위한 특별 장학금 같은 것들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중국이나 중앙아시아에 있는 우리 독립운동자 후손들에 대해 우리 국가가 많이 감싸야 하는데 그런 일들을 하는 것이 국가적으로는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그 지역 사람들 가운데 우리 학교의 박사 과정에 들어올 사람이 있다면 장학생으로 초빙을 해서 주거 보장을 하고 등록금을 면제하고 한 달에 100만원 정도의 장학금을 주고 하는 기금을 이미 다 마련해 뒀어요. 우리 대사관들을 통해 좋은 학생들이 있는지 모집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요즘 학내 분위기에 대해 “요즘엔 우리 학교 뿐만 아니라 청년들이 다 어렵습니다. 학생들의 현실이 굉장히 척박한 것이 사실이에요. 가장 척박한 곳이 학교 같아요. 20대의 젊은 시절에 학생들이 뭔가 새롭고 꿈에 벅차 살아야 되는데 그렇게 하기에는 좀 어려운 상황인 것 같습니다”라고 안타까워했다.

또 법학자로서 우리 사회의 법과 정의가 잘 지켜지고 있다고 보는지 물어보자 “정치적인 얘기가 돼서 별로 관여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정치라는 게 기본적으로는 절충, 협력, 이런 것들이 우선해야 될 텐데 지금은 국민 모두가 느끼겠지만 그런 것들과는 좀 거리가 멀다는 생각이 들어 안타깝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법학관 주변을 학생들의 눈이 쉴 수 있도록 하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법학관 주변을 직접 싹 다 정리했다. 원래 법학관 주면 건물과 건물 사이의 공간은 학생들이 다니는 공간이기는 한데 거의 20년간 버려져온 공간이었다.

“저는 사람이 예쁜 걸 봐야 예쁜 생각을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 공간을 꽃밭을 만들었어요.” 명 원장은 이 공간에 무슨 꽃을 심어야 될지 고민을 했다. 잡초가 워낙 많이 났는데 틈이 날 때마다 가서 잡초를 뽑았다. 그곳엔 지금 꽃잔디가 얼마나 예쁘게 피었는지 모른다.

명 원장은 학교 교정에 보성전문 때 의자를 하나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그 옆에 법정학회라고 우리나라 최초의 법정 학술지를 전시해 놓았다.

“이 학교가 이런 생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학생들에게 알리고 싶었어요. 일제 합방이 오고 있는 그 틈에 나라가 망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학문적으로 고민한 흔적입니다. 정말 대단한 것이지요.”

고려대 법대는 100명이 들어오면 휴학하는 학생들을 제외하고 90%가 졸업을 하고 변호사 시험에 합격을 한다.

그는 로스쿨을 통해 배출되는 변호사들이 과잉이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런 의미에서 일종의 과도기라고 봅니다. 변호사를 그렇게 많이 생산해 내는데 그 사람들이 모두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제 변호사는 변론만 하는 직업이 아니라 기자가 될 수도 있고 사업도 할 수 있고 사회 곳곳으로 파고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변호사니까 반드시 변호사 사무실이 있어야 한다고 보잖아요. 그런데 소송이 없는데 변호사 사무실을 연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변호사가 앞으로는 병원의 사무 보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보다 다양한 영역에서 일할 수 있는 직업의 형태를 갖게 되는 시대가 될 것입니다.”

고대 법대는 114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어 그 역사가 무궁무진하다. 그는 법학대학원 원장 임기를 몇 달 남겨 두고 선배들의 역사를 알려는 조그마한 사료 박물관도 법학전문대학원 내에 만들어 놓았다. “학생들이 역사를 알고 그 속에서 자신의 가치를 찾아가는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학교를 공부할 수 있는 좋은 환경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 저의 바램입니다.”

법학관에는 법대 교우회에서 지난 달 14대의 공기 청정기를 기증해 놓아 법대 학생들이 보다 좋은 환경에서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명순구 원장과의 만남을 통해 선배들이 후배들을 기억해 그들의 고충에 귀를 기울여주고, 또 후배들이 선배들의 역사를 기억하는 좋은 전통이 고대에서 계속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가져보았다.

<사진 여성소비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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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정 기자  penmoim@wsob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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