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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명숙의 행복한 시 읽기]용서
구명숙 숙명여자대학교 명예교수 | 승인 2019.04.18 16:49

[여성소비자신문]용 서

     유자효


이 세상 모든 생명이
자신을 먹이로 하는 것들을 용서하듯이
이 세상 모든 생명이
먹이가 되는 자신을 용서하듯이
겸허하고 후회하지 않고
분노하지 않았으면
용서했으면 용서했으면
용서하고 용서했으면
그래서 마침내 충만함으로
나의 생명이 마지막까지 채워졌으면

-시 해설-
 
평생 살면서 죄 짓지 아니한 사람 하나, 누구 있으려나 모르겠다.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잔인한 복수극을 보면서 속이 시원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복수의 끝은 대개 또 다른 죽음과 상처투성이의 결말을 보여준다. 때문에 천신만고 끝에 억울함의 복수를 달성했다하더라도 승리자로만 여운이 남지는 않는다. 오히려 처절한 인생의 낭비로 느껴질 때가 많다.

유자효의 시 ‘용서’는 진정한 용서가 무엇인지를 깊이 성찰하게 한다. 시인은 “이 세상 모든 생명이/자신을 먹이로 하는 것들을 용서하듯이/이 세상 모든 생명이/먹이가 되는 자신을 용서하듯이/겸허하고 후회하지 않고/분노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노래하면서 가장 숭고한 용서를 표현해 보이고 있다.

아울러 생명을 지키기 위한 투쟁 속에서 상호 존재의 의미를 존중하고 이해하며, 겸허히 용서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용서’는 구원이고 감동이며 승리라는 깨달음을 준다. 자유는 용서로 부터 시작된다고 한다. 용서하고 용서 받음으로 자유를 얻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시인은 “용서하고 용서했으면/그래서 마침내 충만함으로/나의 생명이 마지막까지 채워졌으면”하는 소망을 표출한다. 이렇듯 진심으로 용서를 바라고 있다면, 서로 용서 못할 죄는 없을 것 같다. 가장 숭고한 복수는 용서하는 일이라 하지 않던가.

톨스토이는 이 세상에서 서로 화평하게 지낼 수 있는 방법은 ‘용서하는 것’ 하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 자신의 아들을 죽인 흉악범을 양자로 삼겠다고 간절히 선처를 바라는 탄원서를 제출한 아버지가 있었다. 아들의 죽음으로 또 다른 젊은이가 목숨 잃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죽은 아들을 대신해 아들노릇을 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간절한 바람! 참으로 완벽한 용서가 아닐 수 없다.

유자효 시인의 시 ‘용서’는 용서하고 또 용서하면 사랑하게 되고 삶이 충만함으로 채워진다는 믿음을 갖게 해준다. 그리고 경쟁사회에서 끝없이 강퍅해져 가는 인간의 마음을 화해로 이끌며, 진정한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하며, 읽는 이에게 반성과 용서의 마음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구명숙 숙명여자대학교 명예교수  k9350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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