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오피니언 칼럼
[구명숙의 행복한 시 읽기]아버지의 부탁
구명숙 숙명여자대학교 명예교수 | 승인 2019.02.25 11:37

[여성소비자신문]구명숙의 행복한 시 읽기

아버지의 부탁

            한상호


몇 번이나
마른기침 하시더니
창 밖 저 쪽에다 눈길 주며
툭, 던지듯 하신 부탁

구십이 다 되어서야 하신
그리도 힘든 부탁

“발톱 좀 깎아주겠느냐”


시 감상
-보통 아버지들의 발톱-

아버지와 아들!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는 무엇이 존재하고 있는가?

아버지를 믿고 이해하면서도 설명할 수 없는 미묘한 그 무엇이 꿈틀대고 있는 것인가? 아버지의 세대를 이어 성장해가는 아들은 아버지에게 미래 어떤 의미의 빛인가? ‘아버지와 아들’을 나란히 놓고 바라보면, 다양한 이미지로 비쳐질 것이다.

투르게네프의 소설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조선 시대 영조와 사도세자간의 부자관계를 떠올리면 단순히 대를 잇는 역사적 맥락을 벗어나 아버지와 아들에게는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가는 보편적 세대갈등과 권력관계에서의 냉혹한 쟁탈전이 도사리고 있는 듯 서늘한 느낌마저 따라온다.

고려가요 사모곡은 아버지의 사랑을 호미로 어머니의 사랑을 낫으로 비유하여 부모의 사랑이 같지 않다고 노래한다. 아버지의 사랑은 호미의 날처럼 무디고 무뚝뚝하다는 것이다.

한상호 시인의 시 ‘아버지의 부탁’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처음으로 한 부탁이 ‘발톱을 깎아 달라’는 것이어서 뭉클함을 자아낸다. 아버지는 말이 떨어지지 않아 헛기침으로 신호를 보낸다. 무언가 긴히 하실 말씀이 있으신 것이다. 창 밖에 눈길을 주며 “구십이 다 되어서야 하신/그리도 힘든 부탁”은 “발톱 좀 깎아주겠느냐”는 멋 적은 한마디였다. 뉘엿뉘엿 저물어 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이 텅 빈 듯 허전해 보이고 아버지에 대한 연민이 서려온다.

세상에 나가 ‘나의 삶’을 살도록 지지해 주고 신념을 심어준 아버지의 힘찬 모습은 사라지고 나날이 허약해져가고 있다. 독수리나 사자와 같은 맹수들의 발톱이 아닐지라도 동물들은 모두 발톱에 무기를 숨겨두지 않지 않는가.

그런데 아버지의 발톱에서는 그 어떤 날카로움도 느껴지지 않는다. 손에 닿지 않아 혼자서는 발톱을 깎을 수조차 없다. 그런 아버지의 노쇠한 모습은 이제 삶의 끄트머리에 도달해 있음을 상징하며, 아들은 발톱을 깎아드리는 순종으로 아버지에 대한 존경과 깊은 사랑을 표현한다.

한상호 시인의 시 ‘아버지의 부탁’은 ‘부탁’이 아닌 아들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믿음의 표현으로 읽힌다. 또한 힘이 다 빠진 보통 아버지의 위력에 연민의 정을 느끼며 닮아갈 아들의 내면까지 암시적으로 표현해내며 공감을 일으킨다.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과 믿음, 진실한 삶을 그린 따듯한 풍경이 아름답다.

구명숙 숙명여자대학교 명예교수  k9350m@hanmail.net

<저작권자 © 여성소비자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