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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의 변신을 통해보는 가족
김혜숙 백석대학교 교수 | 승인 2019.02.21 16:55

[여성소비자신문]“그는 부모와 17세인 여동생의 생계를 책임지며 출장 영업사원으로 성실하게 살아온 젊은이다. 파산한 작은 회사 사장의 아들로서 채무를 갚기 위해 5년간 일벌레처럼 힘들게 일을 했다. 벌레로 변한 그 와중에도 그는 7시에 출발하는 열차를 타고 출근할 것을 고민한다.”

카프카의 ‘변신’은 현대인의 불안한 자아표상과, 인간의 무가치함을 비유하여 잘 드러낸 작품이다. 가족의 모든 것을 책임지던 아들 그레고르가 벌레로 변한 것은 일상적인 세계로부터의 소외와 무가치를 의미하며, 벌레로 변신하여 사람들과 단절된 모습은 가족과 주변 사람, 사회로부터의 소외를 의미한다.

이는 카프카의 인간관, 내면세계, 집단공동체에 대한 이미지들을 볼 수 있다. 작품에서 보여주는 인간관은 아주 부정적이고 비관적이다. 가족일지라도 철저히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다른 사람을 이용한다.

다른 사람의 불행을 딛고 일어서서 자신의 행복을 채워 나가는 현실 세계의 인간을 그리고 있다. 작가의 가족들이 행하는 ‘가족이란 이름의 폭력’이 소설 속의 일만은 아닌 듯하다.

오늘날 가족안에서도 여전히 폭력이 성행하고,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이혼을 진행과정에서도 살인사건이 발생한 현실이다. 개인의 인격적인 특성이나 존재자체로도 고유성은 존중받기보다는 부모의 필요에 의해 “너는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해”라는 강압과 자식을 위한다는 지나친 애정은 오히려 자식들을 망치게 하는 경우도 많다. 40대가 되어도 자신의 삶의 방식을 선택할 수 없고 자신의 결혼대상자마저 결정 못하고 부모의 허락을 받아야만 하는 가정도 있다.

청년벌레는 가족을 위해 더 이상 쓸모가 없는 존재가 되었다. 이제는 돈을 벌 수 도 없고, 가족들의 희망이나 기대를 채워주지 못하는 존재가 되었다. 그의 존재는 이제 가족들에겐 별로 도움이 안 되고 부담스러운 존재다. 차라리 없으면 더 좋을 그런 귀찮은 존재가 되어 버렸다.

마치 부모님들이 돈을 벌 때는 최고의 가치를 누리다가 병들고 치매가 걸리면 가족들로 부터 외면당하고 무가치한 존재로 전락하는 오늘날의 표상과 비슷하다. 공동체였던 가족들로 부터의 외면은 사회에서도 소외되고 혼자라는 느낌을 강하게 준다.

카프카는 이 청년 벌레를 통해서 인간은 어떤 비극적인 상황에서도 홀로 감당해야 하는 인간의 씁쓸함과 비참함을 표현하고 싶어했을지도 모른다. 그레고르가 벌레로서의 변신은 철저히 혼자였고, 누구와도 소통이 안되고, 그 가정에서나 그 사회에서의 부적응이며 누구도 그의 마음을 공감하고 도와주고 함께 해주지 못하는 무서운 소외의 현실 사회를 단면으로 보여주고 있다.

21세기 그레고르의 청년벌레는 한국가정에도 ‘은둔형 외톨이’이로 존재한다. 집안에서 나오지 않고 오직 컴퓨터 게임에만 매달리며 혼자서 지내는 청소년, 청년들이다. 가족과는 말도 부칠 수 없고 말 한마디도 신경질적으로 응대하며 오직 자기 방 안에서 나오질 않는다. 웃음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고 누구와도 눈도 마주치지 못한 인간에서 변신을 한지 오래다.

그레고르는 왜 존엄한 인간이 되기를 포기하고 벌레로 선택을 한 것인가? 과연 그는 정서적인 홀로 서기를 할 수 있는 독립된 인간이었는가? 그레고르는 엄마의 사랑을 서로 독차지하고 싶은 여동생과 애정 다툼에서 밀려난 아들이다. 아버지도 딸의 편을 들면서 자신의 존재가치는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가족에서의 분파나 편애는 살인까지도 불러일으킨다. 세계적인 문학가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도 아버지 살해라고 하는 모티브로 다룬 범죄소설이다. 표독하고 탐욕스럽고 방탕한 노인 표도르 아버지와 큰아들이 성적인 매력이 넘치는 그루센카 여인을 두고서 질투와 증오로 반목된다.

또한 재산 상속의 문제와 관련해서 아들 이반은 아버지 카라마조프의 살해를 은밀하게 계획하고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죄악을 일삼게 된다.

그레고르는 어머니와 여동생과의 접촉을 시도하다가 결국에는 오해를 사서 아버지의 분노를 사게 되어 불행에 처하고 만다. 카프카는 홀로 설 수 있는 정서적 능력이 없기에, 더 이상 살아갈 힘과 용기를 얻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서서히 소파 밑의 어두운 공간에서 자기의 생명을 끝내간다.

이 가족의 이미지는 사랑과 나눔과 배려와는 거리가 먼 이기적이고 감정이 메마른, 오직 개인적인 유익이 우선이 되는 그런 가족표상이다. 어느 누구도 공감해 주지 않는 오직 살기 위해 버둥거리는 생존경쟁의 전쟁터 같은 곳이다. 누구에게도 동정하고 위로하는 가족이나 이웃은 한사람도 없었다.

아버지의 잔인한 분노, 엄마의 당황스러운 외면, 누이동생의 급격한 색깔 바꿈은 벌레 청년 그레고르로 하여금 더 이상 살아갈 힘과 에너지도 의미도 없는 절망만이 있었다.

가족들로부터의 버림받음과 소외감, 무가치하다고 느끼는 가족들의 한숨소리와 한탄은 자신을 벌레가 되기로 선택한 것이다. 오직 생존을 위해 바쁜 현대인이 실존의 가치를 잃어버린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가족들은 허울만 가족일 뿐 인간애를 상실한 가족이다. 카프카의 작품은 한 인간이 변하면 다른 가족 구성원들도 변한다는 사실을 암시해주고 있다. 가족다운 가족애를 서로 나누어보자. 그냥 존재자체로도 당신은, 나의 아들 딸은 소중한 사람이라고사랑한다고, 고맙다고, 수고 많았다고, 당신이 나의 에너지원이라고, 사랑을 실천하는 가족공동체로 거듭나자.

 

김혜숙 백석대학교 교수  kimhyesok@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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