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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시대와 법의 변화
황명숙 서울중앙지방법원 조정위원 | 승인 2019.02.01 12:17

[여성소비자신문] 우리는 21세기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역사상 가장 빠른 변화 속에 살아가고 있다.

앨런 튜링이 세계 최초의 연산컴퓨터를 만든 이후 손안의 작은 컴퓨터인 스마트폰이 나오기 까지 우주의 나이 137억년, 지구의 나이 70억년의 물리학적 시간 개념을 도입하지 않고 오로 지 우주 나이에 비하면 찰라 라고 볼 수 있는 인류의 몇 천 년 역사에서만 비교하여도 가장 변화가 빠른 시대에 살고 있다.

변화와 혁명 가운데 인류는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삶의 편리성과 질을 높일 수 있었고 법의 진보로 인류는 공정성(fairness)과 공평성(equity)을 추구하며 개인의 자유와 존엄성을 누릴 수 있었다.

법의 역사에서 산업 혁명 만큼 중요한 두 가지 사건이 있었다. 첫 번째 사건은 B.C 594년에 아테네 시의 중앙 광장에서 있었던 솔론의 부채탕감 법령과 두 번째는 영국에서 있었던 마그나 카르타(Magna Carta)라고 본다.

첫째 솔론의 개혁의 배경은 이렇다. 고대 아테네는 서양 문명의 발상지로 인류의 정신문화가 최초로 발달했던 꿈의 도시였고 로마귀족들은 아테네 사람을 집사로 두기를 원할 만큼 아테네 시민은 지식과 교양이 있었다. 그 당시 문명이 발달하지 않은 주변 국가에 비해 찬란한 문화를 꽃피운 아테네의 위상은 고귀했고 주변국들의 인정을 받았지만 생산성이 낮은 것이 문제였다.

대다수 시민들은 정치 철학 문학 예술 분야에 왕성한 지적 활동을 하였지만 경제활동을 하지 않은 탓에 생산성이 매우 낮아 아테네 시민 전체의 GDP가 얼마 되지 않았던 것이다. 지식과 문화도 경제가 뒷받침이 되어야 지속적으로 발전을 할 수 있고 생산성이 낮아 시민이 가난에 허덕인다면 그들의 지적 활동도 지장을 받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아테네에는 특별한 계급이 있었는데 이들은 본래 신분이 자유민이었으나 귀족이나 부자의 땅을 빌려 경작하고 작물의 6분의 5를 이자로 갚는 헥테모로이라고 불리는 가난한 예속민인 노예였다. 엄청난 고리로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이자도 갚기 힘든 구조이기 때문에 본인은 물론 가족들까지 채권자인 귀족이나 부자의 노예가 되어야 했다. 이 같은 고금리의 구조 때문에 아테네의 수많은 자유시민이 노예로 전락했다.

그런데 이들이 노예가 되는 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채무제도의 악순환으로 빈익빈 부익부가 더 심하게 되어 아테네 시민은 돈을 벌 수 있는 공평한 출발점마저 잃게 된다는 사실이었다.

공평한 사회의 출발은 사회의 희망이고, 시민들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보장된다는 것이다. 한 사회의 중심이 되는 시민 계층의 몰락은 사회의 위기감을 조성하게 되어 사회의 자정능력을 잃게 되고 붕괴의 위험성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도시국가인 아테네는 자유시민이 노예로 전락하는 것을 방치할 수가 없었다. 병역의 의무를 주로 담당했던 시민 계층이 사라지면 군대유지도 할 수가 없었고 국가를 운영해 나갈 자금인 세금을 징수할 수도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테네는 정치가이자 시인이고 집정관으로 위임받은 솔론이 귀족들의 저항에 굴하지 않고 개혁을 단행하게 되었다. 기원전 594년, 지금으로부터 2600년 전에 아테네 시의 중앙 광장에서 솔론의 부채탕감 법령이 새겨진 목판을 펼치며 시민들에게 공표하였다.

그 내용은 채무계약서는 모조리 폐기하고 저당 잡힌 토지는 원주인에게 돌려주며 빚 때문에 주변 도시국가의 노예로 팔려나간 사람들을 국가가 몸값을 지불하며 귀향을 돕는다는 것이다.

이 개혁이 헥테모로이에게는 인간다운 삶을 주었을 뿐 아니라 아테네의 붕괴를 막았으며 고대 그리스 민주정치체제의 기틀을 만들어 주었다.

사회가 진보하고 발전하려면 개혁을 추진할 때는 희생이 따르기 마련이고 어느 정도의 저항에 맞설 각오를 해야 한다. 만일 기득권 계층이 개혁에 반대한다면 무력을 동반한 혁명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억압받던 헥테모로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무력과 폭동 뿐이었다.

사회의 갈등을 해소하고 안정과 번영을 가져다준 솔론의 개혁은 2600년이 시간이 지난 현 시대에도 많은 의미를 준다. 아울러 솔론의 개혁정책의 핵심은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 중산층을 강화하고 노예 신분에서 해방시키며 가난을 구제하는 것이었다. 솔론은 이 방법이 더 많은 세금을 걷고 아테네 도시국가를 더 튼튼하게 만들 수 있다고 믿었고 그의 믿음은 옳았다.

두 번째 사건은 영국 헌정사상 중요한 문서이며 후세에 자유 헌장으로 찬양되었던 마그나 카르타였다. 1215년 6월 15일 영국 귀족들이 존 왕에게 서약을 요구하였고 마침내 얻어낸 대헌장이었다. 이것이 마그나카르타(Magna Carta) 대헌장이다.

마그나카르타의 내용은 왕권을 크게 제약하고 사유재산권을 법률로 명문화했다. 법률의 심판 없이 그 누구도 체포하거나 구금할 수 없고, 평민들은 안전한 신분보장을 얻는 동시에 군주에게 저항할 수 있는 권리가 생겼다. 또한 국왕은 귀족의 동의 없이는 세금을 징수할 수 없게 되었다. 지고지상의 위치는 왕권이 아닌 법률이 차지하게 되었다. 이로써 왕은 법률의 아래에 서게 되었다.

영국 교회는 자유로울 것이며 권리는 감소하지 않고 손상되지 않을 것이다. 영국의 모든 자유인에게 우리는 약속할 것이니 그들과 그들의 자손들은 아래 쓰인 모든 자유를 소유하고 간직할 것이며, 우리와 우리의 자손들도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마그나 카르타는 기본적으로 귀족. 성직자. 도시민의 봉건적 특권을 확인한 문서였다. 이 문서에 의해 자의적 왕권 행사를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영국 왕권의 근본적인 통제는 불가능했다. 왕은 주로 징세, 사법, 행정, 토지 보유에서 왕권을 제한하는 데 동의를 한 것이다. 마그나 카르타는 기본적으로 보수적 성격의 것이며 무제한한 왕권을 통제하려는 목적이고 법· 관습· 봉건적 계약 등에 규정된 백성의 권리를 왕이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그나 카르타에서 말하는 자유민은 성직자 계급과 상층 귀족이었으며 결코 당시의 가장 많은 인구를 차지한 평민층까지 포함한 것은 아니었다. 이 문서는 13세기를 거치는 동안 6회 확인되었으며 중세말까지 여러 차례 확인을 하였다. 1215년에는 인권이라는 뜻은 전혀 없었지만 마그나 카르타의 중요성은 오히려 후세에 확대 적용되었다. 아직 사회의 생활습관까지 마그나 카르타가 침투한 것인 아니기 때문에 권력자가 이 서약을 지키고 싶지 않다면 언제든지 헌장을 폐기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하더라도 마그나 카르타는 서양 문명사에 중요한 사건이었으며 이것이 중세의 암흑시대에서 근대 문명으로 향하는 등불이 되었다. 왕의 지배에서 법의 지배라는 큰 틀을 마련한 것이다.

솔론의 개혁과 마그나 카르타가 주는 의미는 개혁은 저항 없이 쉽게 얻을 수는 없지만 그것을 통해 인간이 자유와 존엄성을 더 많이 가질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가족법도 시행된 지 45년 만에 가부장제의 낡은 틀에서 벗어나 보편적인 인권의식에 기초를 둔 개정안이 2005년 3월 2일에 드디어 통과되었다. 가부장적 가족제도, 부계 혈통 중심의 가족제도에 대한 가치관이 보편적인 인권의식의 가치관으로 바뀌면서 역사의 진보를 이룬 것이다. 가족법 개정도 세계적으로 공감대를 형성한 보편적인 인권 의식의 확산이라고 볼 수 있다.

세계적으로 공통된 보편적인 인권개념이 존재하고, 이러한 인권개념은 국경을 넘어 공통적인 가치관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이번 개정도 국경을 넘어선 보편적인 가치관을 우리 사회의 현실을 반영하여 개정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른 사회제도도 변화를 이루어 왔고 마찬가지로 가족제도와 법도 시대에 따라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변할 것이다. 우리 사회의 변화도 짧은 시간에 많은 변화가 이루어진 것을 통계수치에서 알 수가 있다.

1963년에는 농업 임업 수산업 등 1차 산업 종사자가 전체 취업인구의 63%를 차지하였고 50년 후인 2010년에는 6.6%로 줄어들었고 사무 관리직과 서비스직인 3차 산업의 취업인구는 같은 기간 28.3%에서 76.5% 급격히 증가하였다.

한 가구당 구성원수도 1960년에는 5.6명이었고 2010년에는 2.69명으로 감소하였다. 한 가구당 1명에서 4명의 구성원으로 되어 있는 비율은 1960년에는 35.9%에서 2010년에는 91.9%로 늘었다. 3세대 이상 가구의 비율은 1960에는 29.27%에서 2010년에는 6.2%로 감소하여 가족은 부부와 자녀로 이루어진 핵가족이 중심이 되었음을 통계가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방향에 법이 유연하게 개정되어 시대의 흐름과 가족법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양육비 산정기준표가 나온 것도 이러한 시대의 변화를 따른 것이라고 보여진다.

부부간의 갈등으로 이혼을 할 때 소득구간별로 금액이 결정이 되어 있는 양육비 산정 기준표가 있어서 양육비를 책정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양육비 산정 기준표로 말미암아 양육비문제로는 크게 다툴 여지가 없어졌고 갈등을 줄여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정량적인 산정기준표와 각 가정이 처한 상황에 맞는 정성적인 접근을 하면 최선의 방법이 되기 때문이다.

양육비에 관한 산정기준표가 유용하게 쓰이듯이 재산분할에 대한 산정기준표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물론 형태를 분류하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부부의 이혼 시의 재산상황과 모든 부부들의 삶의 형태와 처한 상황도 다양할 것이다.

하지만 결혼기간, 자녀 수, 혼인 기간 중에 형성된 재산의 규모, 부부의 가사노동 참여도, 각자가 가지고 있었던 혼인 전 특유재산, 유책의 정도, 부부의 소비습관, 각자의 소득의 규모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재산 분할 산정표가 만들어진다면 분쟁과 갈등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다양한 부부의 결혼생활과 이혼 사유를 정량적 접근방법으로 해결하기는 어려울 것이지만 여기에 개개인의 구체적 상황을 정성적 접근 방법과 산정표에 의한 정량적 지표를 혼합해 재산분할을 한다면 공정(right, acceptable)과 공평(equity)한 결과가 나올 것이고 부부 모두가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로 들어가는 현 시점에서 앞으로 다가올 미래 사회를 정확하게 예측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가치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진. 선. 미를 추구하는 마음과 정의 · 자유 · 인간의 존엄 · 박애는 수 천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고 과거로부터 현재에도 인간의 마음 깊숙이 보편적 가치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4차 산업시대에 우리 가족법도 과학 기술의 진보와 함께 유연한 진보를 이루어 우리의 삶의 질과 품격을 높이고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 가길 기대해 본다.

황명숙 서울중앙지방법원 조정위원  mshwang630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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