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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레마에 빠진 기혼 여성들여성정책의 패러다임 전환
김희정 기자 | 승인 2013.01.29 11:17

 

   
 

[여성소비자신문=김희정 기자] 최근 한국사회에서 젊은 남성들은 이제 자신들이 단독으로 벌어서 아내와 가족들을 모두 부양하는 가장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을 그다지 기대하지 않는다.

정작 맞벌이 부부를 선호하고 있긴 하지만 남성들 스스로 사적 노동이나 보살핌 노동을 기꺼이 떠맡고자하는 움직임은 별로 없다.

여전히 육아나 자녀교육, 노인수발 등 보살핌 노동이나 의식주를 해결하는 기초적인 가사노동은 여성들의 몫이다.

여성들은 가사노동과 공적노동이라는 이중노동의 부담을 짊어진 가운데 노동시장에선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열등한 노동력으로 전락하기도 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여성정책 패러다임 전환을 위한 새로운 접근이라는 주제로 벌인 토론회에서 서울대 배은경 교수는 “한국의 여성정책은 무엇보다 젠더에 대한 이해와 젠더의 교차성을 매개로 성 불평등과 성차별이 한국의 다양한 사회제도나 질서에 부담을 주고 있는 상황을 분명히 인식하는 데서 출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성 주류화는 여성 정책의 목표가 아니라 전략이며 여성정책의 전략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실제 성평등의 증진에 있다”고 강조했다.

근대적 성별 분업의 핵심은 주로 집안에서 무급으로 이루어지는 사적인 보살핌 노동이 여성에 의해 전담된다는 것에 있었다.

가정과 일터의 분리에 기초하여 가족 내의 보살핌 노동이 화폐 소득을 벌어들이는 공적 노동과 대비되는 사적 노동으로 규정되면서 공적 노동과 사적 노동의 경계가 육체의 성별에 따라 정렬되는 노동분화가 일어난 것이다.

근대적 성별 분업은 어떻게

산업자본주의 시기의 이 같은 근대적 성별 분업 모델은 대단히 강한 계급적 성격을 갖고 있었다.

한 사람의 노동자의 임금이 그의 가족 전부를 부양할 수 있는 수준이 되어야 한다는 가족임금은 모든 노동자들의 소망이었지만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계층은 소수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배은경 교수는 “가족임금이 현실이 아닌 이데올로기였으므로 남성 1인 생계 부양자와 전업주부의 결합이라는 모델 역시 중산층 이상에게만 가능한 이데올로기일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실제로는 저소득층의 많은 부부들이 남성 생계 부양자-여성보살핌 전담자 겸 생계 보조자의 결합으로 살았으며 수많은 미혼 여성들과 기혼 여성들이 저임금의 나쁜 일자리에서 공적 노동에 종사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들에 대한 정책은 자신을 부양해 줄 남성이 없는 가난한 계급의 미혼 여성과 미망인들에 대한 도움으로부터 출발했다.

이후 여성들도 자신의 소득을 가질 수 있도록 공적 노동에 대한 참여가 늘어났다.

초기 산업화 이후 한국경제에서 여성은 지속적으로 중요한 노동력이었지만 1970년대까지는 노동 참여 여성의 대다수가 미혼이었다.

1980년대 들어 결혼한 여성의 공적 노동력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혼 여성에게 있어서 취업은 여전히 가장이 가족 임금을 벌지 못하는 저소득 계층에서 일어나는 생계 보조적 행위로 여겨졌다.

1970년대 중반에 형성된 한국적인 근대적 성별 분업 모델인 ‘산업역군-가정주부’의 결합은 급속한 경제발전의 바탕이 되었다. 이런 가운데 기혼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는 1980년대에도 지속적으로 늘어났다.

여성도 공적 노동에 참여
 
1990년대 초반을 넘어서면서 직업여성이 증가하고 성평등 의식이 확산되는가 하면 여성운동의 진전, 다양한 차별금지의 법제화 등으로 인해 대졸 이상의 고학력 여성들에게 공적 노동 참여의 길이 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런 가운데에서도 일반인들의 의식 속에는 여전히 근대적 성별 분업체계인 남성 1인 생계 부양자 모델이 지배적이었다. IMF 시기를 거치는 동안 기혼 여성들은 또 한번 딜레마에 봉착하게 되었다.

기혼 여성들은 내조를 잘해 남편의 기를 살리라고 부추겨지는 한편 현실적으로는 남편의 실직에 대비해야 할 경제적 필요성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리고 ‘고개숙인 아버지’ ‘남편 기살리기’ 정서가 풍미하던 1997년~1998년 시기엔 고용불안으로 인한 위기의 책임이 페미니즘과 여성들에게 전가되기도 했다.

많은 여성들이 추가 소득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리면서 더 많은 기혼여성들은 취업을 열망했다. 하지만 실제 노동시장에서 기혼 여성을 위한 새 일자리가 열리기는커녕 이미 취업해 있는 여성들 조차 노동자성을 부인당하는 상황이었다.

자연스럽게 여성노동자운동과 여성운동의 대응이 활발해졌다. 새로운 여성운동 세력은 부당해고에 대해 소송을 제기하고 승소를 끌어냈으며 1999년 남녀고용평등법 개정과 남녀차별 금지법 제정 등 제도적 변화를 이루어냈다.

 성 주류화 패러다임 등장

이 같은 성과는 직장내 성희롱과 같은, 이전에는 가시화되지 못했던 차별과 억압의 경험을 사회적으로 공론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성적 자기결정권의 개념이 도입되었고 성폭력적 장면에 대한 판정에서 피해자의 자기 경험이 중시되는 계기가 만들어졌다.

이 같은 일련의 과정을 거치는 가운데 2001년에는 여성계의 지속적인 요구였던 여성부가 신설되었다. 2003년 참여정부가 들어서면서 한국 여성정책의 패러다임은 성 주류화를 바탕으로 분명하게 정립되어 갔다.

그해부터 실시된 제 2차 여성정책 기본계획은 실질적 남녀평등사회의 실현을 목표로 하면서 성 주류화와 협력체계 구축을 추진 전략으로 분명하게 명시했다.

조직적으로는 기존의 여성정책 담당관실에 더하여 여성정책 조정회의와 여성정책 책임관제까지 도입돼 여성정책의 조정기능을 이끌어나갔다.

물론 당시의 정부 안에서도 여성정책은 전혀 주류가 되지 못했고 여전히 비주류였지만 주류가 되어가기 위한 정책적 도구는 기구의 조직적 편제와 장관의 역량을 통해 마련되어 있었던 것이다.

여성단체들은 17대 총선을 거치면서 여성후보 발굴과 지지운동 등을 벌였고 이는 중앙 의사 결정 기구에 대한 여성들의 참여를 어느 정도 높이는데 기여했다.

그러나 이런 상황 속에서도 개별 여성들의 삶과 여성운동의 역량은 후퇴하고 있었다. 경제적으로는 지속적인 신자유주의적 재편으로 젊은 세대의 부부들은 서로가 서로의 실직에 대한 안전판이 되어주는 맞벌이를 정상적인 상태로 여기게 되었으며 사회적 양극화는 심화되었다.

2~30대 여성의 딜레마

2008년 경제 위기의 타격은 2, 30대 여성들에게 더욱 집중되었다. 젊은 여성들은 노동시장에서의 지위와 가족 내에서의 지위 모두를 추구하는 삶의 양식을 개발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살아가야 한다.

다행히 중산층 이상의 능력 있는 부모가 있는 젊은 여성들이라면 전문직 등 좋은 일자리를 구하기 위한 지위추구적인 행위에만 전념하면 된다.

그러나 이들 역시 연애나 결혼, 출산 등 중요한 생애 사건들을 준비하고 경험하기엔 시간이 턱없이 모자란다.

상류층을 중심으로 딸이 노동자로서의 경쟁력을 추구하다가 결혼을 못하게 될까봐 대학 2, 3학년 때부터 결혼정보회사에 등록해 놓고 배우자를 찾아주려는 부모들의 모습을 왕왕 볼 수 있다.

여기에 계급적인 지위도, 부모의 지원도, 본인의 능력도 없는 젊은 여성들이라면 오롯이 자신의 앞날을 스스로 발전시켜 나가야만 하는 과제에 직면하게 된다. 이들은 스펙을 쌓아 취업도 해야 하고 다이어트를 해 날씬한 몸을 만들어 연애에도 성공해야 한다.

그러다 서른 즈음이 되면 결혼도 해야 하는데 그러고 나면 과거의 전통적인 전업 주부와는 또 다른 방식의 어머니 노릇도 성공해야 하는 압박을 받게 된다.

따라서 돈이 많지도 않고, 친족의 도움을 통해 보살핌 노동을 해결할 정도의 자원을 받지도 못하는 여성들이라면 결혼이나 출산을 아예 미루거나 회피하고 대신 노동시장에서 앞날을 개척하는 일에 전념하게 된다.

근대적 젠더관계의 체제적 균열

이렇듯 비혼 기간이 길어지면서 젊은 여성들 가운데에는 보살핌 노동이나 결혼제도와 관련된 문제들과 무관한 삶을 살아가는 비율이 늘어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한국의 젊은 여성들이 기피한 결혼제도 안에서 여성의 성역할은 아시아 각국에서 이주해 온 결혼 이주 여성들에게 떠맡겨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밖에도 남녀간의 성역할의 갈등은 새로운 양상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즉 노동시장에서는 노동자로서, 개인으로는 경쟁력을 갖춘 주체로서 자기 삶을 확고히 하고자 하는 여성들이 점차 늘어나면서 이러한 여성들을 잠재적 경쟁자로 의식하는 남성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최근들어 과거의 가부장적 성체계 안에서 작동하던 여성들에 대한 온정적인 태도가 많이 약화되었다. 반면 여성들이 짊어지고 있는 성역할의 불리함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이 기계적인 평등만을 요구하는 태도가 사회 전반적으로 강화되고 있다.

이 같은 성역할에 대한 갈등은 비단 남녀 간의 사적인 관계에서 여성의 불만증폭이라는 형태로 나타날 뿐만 아니라 이제는 전면적인 사회갈등으로 부각될 수 있는 여지가 커지고 있다.

따라서 조만간 기본적인 젠더구조가 변화하지 않고 근대적인 형태의 성별 분업만을 고집한다면 더 많은 사회 문제들이 양산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김희정 기자  penmoim@wsob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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