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 2019.11.15 금 18:03
HOME 오피니언 칼럼
변화의 시대, 우리의 교육정책은 어디로?
조영달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교수 | 승인 2019.01.09 15:54

[여성소비자신문]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참으로 앞으로의 일을 알기 어렵다. 열심히 일하고 아무리 애써도 내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때로는 내 잘못도 아닌데 내가 고통을 겪는다. SNS가 이렇게 활발한데도 말이 통하지 않는다.

자고 일어났더니 세상이 바뀌어 있다. 특정한 개인의 잘못 없이도 큰 사고가 자주 난다. 내 일과 나라의 일 그리고 세계의 일이 서로 얽혀 있다. 큰 나라들이 왜 이렇게 자기 이득 만 챙기는가. 과거에는 별 일이 아니었는데 지금은 대형 사건이다. 정책이 너무 바뀌어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교모하게 힘으로 밀어붙이니 당할 수가 없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너무 답답하다. 우리의 삶을 표현하는 말들이다.

우리가 사는 한국사회는 한편으로는 무역 규모 세계 10위권의 문턱을 밟았지만 다른 한편 그 그늘 속에서 심각한 고통과 변화에 직면하고 있다. 높은 실업률, 불평등과 빈곤, 폭력과 일상의 위험, 가족의 해체, 흔들리는 교육, 자유의 윤리가 붕괴하는 조짐은 우리가 느끼는 고통의 현주소이다.

또한 SNS를 비롯한 지능 정보사회의 급진전과 더불어 바이러스 정치, 파수꾼 민주주의,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의 뒤섞임, 소통의 단절, 집단 이성의 감성화, 기대의 불확실성 증대, 정책의 유동성, 예기치 못한 갈등 등은 오늘날 우리가 절실히 느끼는 변화이다. 여기에 더해 최근의 한반도 비핵화 논의, 그리고 국제적인 자국 우선주의와 신권위주의 정치 성향의 등장은 한국사회의 변화 양상과 고민을 짐작케 한다.

한 마디로 우리는 지금 답이 없는 새로운 시대로 옮아가고 있다. 이러한 시대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하나는 어쩔 수 없이 답이 없는 시대의 심각한 고통과 불확실성에 직면한다는 것이다. 이는 큰 문제일수록 기존의 방식이나 남을 따라하는 전략으로는 더 이상 오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가 겪고 있는 ‘위험 사회’의 징후나 경험한 여러 실패 사례들은 이를 잘 증명하고 있다.

더불어 이러한 고통을 극복하는 과정은 곧 창의의 시대를 연다는 것이며 새로운 문명사회의 건설을 불러온다는 것이다. 사실, 오늘의 이러한 시대상은 어쩌면 산업혁명 이후에 인류가 경험했던 7~80년의 혼란기와 유사하다. 당시에도 산업혁명에서 연유한 실업과 불평등, 환경오염, 비인격화의 문제는 인류에게 심각한 고통이었다. 당시 인류는 새로운 경제체제와 복지의 담론과 시민의 시대를 열어가는 창의성으로 이를 극복하였다.

이제 우리도 이러한 전환기적 시대의 고통과 그림자를 넘어 새로운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이제 우리가 열어야 할 새로운 시대를 향한 구상은 인간의 존엄과 삶의 질서를 유지하면서도 기존의 제한된 지식과 과거의 권위가 구성해 놓은 틀을 벗어나는 것이다.

새로운 생성(生成)의 틀을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우리는 과거의 틀이 지닌 한계를 인식하고 스스로(주체적으로) 깊이 성찰하고 풍부하게 상상하면서 ‘자유롭고 창의로운 생각’을 키워야 한다.

이는 스스로 성장 동력을 찾고 새로운 기회를 열어가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인류애와 타인에 대한 존중에 기초를 두고 책임과 질서, 정직과 개방, 나눔과 포용의 정신으로 ‘공존과 화해’의 인간적 도리를 다해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앞으로 시대를 살아야 할 자녀를 위한 교육은 어떠해야 하나? 그 답은 매우 분명하다. 인간의 도리를 다하면서도 스스로 성찰하고 자유롭고 창의롭게 생각하는 시민을 길러야 한다. 이렇게 스스로 성찰하면서 이성(理性)의 역량을 확대할 수 있고 인격성을 지닌 자녀는 오늘의 시대를 넘어 새로운 자신의 시대를 이끌 수 있을 것이다.

이 점은 우리의 교육정책이 나가야 할 커다란 지향(志向)의 논리라 할 것이다. 사실 이러한 지향은 교육에 내재한 가치와도 맞물린다. 교육에 대한 생각에는 여러 흐름이 있을 수 있지만, 스스로 성찰하면서 이성의 잠재력을 넓히고 새로운 생성이 이루어지는 과정이란 점은 대부분 동의하는 바이다. 이는 그 자체로 가치로운 것이다. 공자와 소크라테스, 피터스와 듀이, 남명(南冥)과 퇴계(退溪)가 생각한 교육이기도 하다.

교육정책이 지녀야 할 또 하나의 논리는 교육의 지향을 현실화할 수 있는 제도를 갖추도록 우리 사회에 호소하고 노력하는 일이다. “6-3-3-‘대입’-4”로 이어지는 경직된 우리의 교육제도는 1948년 교육기본법 제(개)정 이후 70여년 이상 그대로이다. 언급한 것처럼 세상은 근대화로, 민주화로, 급기야는 지능정보사회의 4차산업혁명이 회자되는 시대로 변하였다.

이로 인한 지식의 생산과 흐름 및 교육의 환경이 변혁적으로 바뀌었음은 물론이다. 이제 초등 및 중학교의 의무교육과 고등학교 및 대학의 개념이 각기 새로워져야 한다. 대학은 더 이상 상아탑이 아니다. 대학 입시도 필수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제도의 틀을 유연화하고 학생들이 자신의 길을 가도록 하지 않으면 우리가 지향하는 교육은 이룰 수 없다. 결국 우리와 미래 세대 모두는 시대의 낙오자가 될 것이다. 지능정보 시대, 인구 급변의 시대에 학교제도의 유연화는 전환기 교육정책의 중요한 실천 논리이다.

이러한 논리와 더불어 교육정책에는 지켜야 할 윤리가 있다. 교육정책의 중심축은 교육이지 정치진영의 논리가 아니다. 진영의 논리로 어제는 만들고 오늘은 없애는 정책이 지속되는 한 우리 교육은 수렁의 나락으로 내려갈 뿐이다.

교육이 완벽하게 정치와 분리될 수는 없지만 최대한 교육의 가치를 존중하는 정책이 되어야 한다. 이는 교육계가 짊어져야 할 수호의 책임이자 용기가 필요한 부분이다. 진영에 가담하고자 하는 분들은 정치에 몸담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윤리적이다.

진영의 논리는 자칫 교육을 도구적 측면에서만 조명하게 한다. ‘불평등’과 복지의 담론은 정치사회적으로 중요한 문제이지만 교육정책의 핵심이거나 모두는 아니다. 오히려 부가적인 것일지 모른다. 이제 우리는 평등과 불평등 교육의 논쟁을 넘어 새로운 시대의 교육을 열어야 한다. 학생 자신의 역량에 따른 다양한 성장의 교육 시대를 열어야 한다. 이러한 교육의 바탕에는 당연히 스스로에 대한 깊은 성찰과 창의적 노력 및 인격의 성숙이 자리 잡아야 한다.

전환의 시대, 우리의 교육정책이 앞에서 논의한 논리와 윤리에 터하여 이루어지면 우리 사회는 불확실성을 줄이고 고통을 넘어서는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고통은 부정의 변증법이 작용한다. 행복과는 달리 고통은 그것에서 벗어나려 인간을 움직이게 한다. 우리는 제대로 된 교육을 통해 고통의 시대를 넘어 새로운 문명을 건설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한국교육의 노력이 지구촌의 보편성과 인류애로 뻗어나가는 길이기도 할 것이다.

조영달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교수  k-leecho@hanmail.net

<저작권자 © 여성소비자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