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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자아로 성장하기
김혜숙 백석대학교 교수/마인드웰심리상담센터 상담사 | 승인 2019.01.08 15:26

[여성소비자신문]그림 (Grimm)형제의 유명한 동화 ‘백설공주’는 개인의 진정한 변화와 성장에 관한 상징적인 동화이다.

일찍 죽은 백설공주의 친엄마는 열등감의 상징이고 (“한겨울, 고독, 우울, 흑단처럼 새까만 창틀”) 백설공주의 새엄마는 나르시즘적 우월감에 찬 여성으로 비유된다. 이 두 왕비 사이에서 백설공주는 새엄마의 딸이 아닌 진정한 자아로 거듭나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다루고 있다.

백설공주가 엄마가 원하는 모습으로 자라지 않고 독립적인 인격체로 성장하는 과정으로는 “부탁이에요. 사냥꾼님. 제발 목숨만 살려주세요. 그러면 숲속 깊은 곳으로 들어가서 살게요. 다시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을게요.”라는 대목이 결정적이다.

즉, 백설공주는 새엄마의 분노와 질투를 벗어나 처음 가는 새롭고 두려운 길을 걷는 쪽을 택한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선택은 자기결정권이다. 자기결정을 신뢰하고 믿고 나가는 것이다. 이 결정을 못하는 사람은 변화가 어렵고 삶의 희생양으로 안주하고 만다. 이런 변화의 시점을 ‘밑바닥’이라 부른다.

내담자들이 더 이상 삶을 유지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진 지점으로 새로운 길을 선택하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치료의 첫 단계는 먼저 선택과 결정이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어느 방향으로 갈 것인가에 대한 자기결정이 확고해야 한다.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고 참 자아로 나가는 과정에는 과거의 두려움과 나쁜 경험, 상처들과 대면하는 과정이 동화 속에서도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일곱 난쟁이의 집까지 가는 일곱 개의 산은 그 과정이 고달프고 힘겨움을 보여준다. 일곱 난쟁이들은 긍정적인 힘, 내면의 힘도 상징한다. 우리를 성장하게 만드는 완전함을 상징하는 7이라는 숫자가 쓰인 것도 이와 일맥상통한다.

일곱 난쟁이가 사는 자그마한 집은 난쟁이들의 집에 있는 물건들은 모두 작고 잘 정돈되어 있으며, 꼭 필요한 개수만큼 갖춰져 있다는 것은 허황된 자아에서 진정한 자아로 가는 현실적인 한계를 알려주고 있다.

새로운 세계에서 적용되는 다른 법칙이 지배하는 세계를 상징한다. 자신에 대한 신뢰는 ‘진정한’ 자아와의 접촉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공주는 나르시즘적인 우월감을 포기함으로써 소박함과 평범함을 얻었고. 새로운 차원에서 기브 앤 테이크를 경험한다.

공주는 먹고 자는 공간을 제공받는 대신 각종 집안일을 떠맡으므로 역할을 하게 된다. 백설공주가 진정한 자아로 태어나는 힘겨운 과정들은 계속된다. 때로는 유혹에 빠지는 순간을 경험하기도 한다.

왕비의 유혹으로 보낸 ‘가슴 끈’은 타인의 시선을 위한 완벽주의와 매력적 외모를 상징한다. 실제로 많은 여성들이 가슴 끈으로 자신의 욕구를 억누르고 자기 몸을 억압하며 변형하기도 한다.
‘빗’은 외모의 화려함을 상징한다. 내면의 만족보다 외모를 더 중시하는 태도를 말한다. 난쟁이들은 백설공주가 유혹에 넘어갈 때마다 구원자로 등장한다. 즉 다시 말해 자기 안의 긍정적인 힘, 자기내면의 에너지를 활용하라는 것이다. ‘독이 든 사과’는 ‘독이 든’ 메시지와 자기애적 착취를 상징한다.

자기애적 착취는 착취로 인식하지 못할 만큼 그럴싸하게 포장되어 있어서 그 안의 독성을 쉽게 알아채지 못하게 만든다. 부모는 사랑으로 위장한 독을 자녀에게 주고, 타인들은 명분, 애정이나 권력으로 위장한 독을 우리에게 건넨다. 분별력이 없고 판단력이 없는 사람들은 독인지 양분인지 구분하기가 어렵다.

사과에 든 독은 자기애적인 여성들이 추구하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남자나 외모를 상징한다. ‘진정한’ 자아를 버리면서까지 자기 자신을 속이는 태도가 바로 독이다. 공주는 목에 걸린 사과를 뱉어낸 다음 다시 살아난다.

즉, 자아의 건전한 발달을 방해하는 외적 자극으로부터 벗어나 자기 자신을 되찾으면서 비로소 건강한 삶을 살게 된다는 뜻이다. 즉 자기다운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다.

우리는 변화를 위한 시도를 하지만 ‘거짓’ 자아의 유혹에 빠져 예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이유는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감정이나 ‘진정한’ 자아의 욕구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 수도 있고, 계속 추구해 오던 병적 우월감을 놔야 한다는 두려움 때문일 수도 있다. 우리의 오랜 병리적인 ‘습’들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백설공주’에 대한 나르시즘적인 여성에 대한 해석은 우리가 살면서 삶의 방향을 결정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구축하게 되지만, 그 과정에서는 각종 유혹(가슴끈, 빗, 사과)에 빠져서 이전 단계로 돌아가는 모습. 이 때 내면의 공허함이나 죽음(유리관)을 체험하기도 한다.

이런 절박한 ‘밑바닥 체험’은 우리를 다시 살고자 하는 변화와 긍정의 에너지가 작용하여 결국은 사람을 통하여 진정한 대인관계를 구축하고(결혼)하고, ‘거짓’자아는 결국 소멸된다(불타는 구두)는 백설공주의 동화에 대한 해석이다.

올 새해에는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당당히 나만의 길을 가는 진정한 자아로 성장하는 한 해이길 소망한다.

 

 

 

 

 

 

 

 

 

 

 

 

 

김혜숙 백석대학교 교수/마인드웰심리상담센터 상담사  kimhyesok@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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