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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겸 칼럼⑤] 차를 우리면서 즐기는 다법(茶法)내가 아는 다법이 맞아! 우리 다법만 소중하다는 다인들
하도겸 나마스떼코리아 대표 | 승인 2019.01.08 11:44

 

[여성소비자신문]차를 좋아하고 잘 모르면서 어줍잖게 칼럼까지 쓰다 보니 적지 않은 다인(茶人)들과 차를 마시게 된다. 유명인도 만나고 숨은 고수들도 만난다. 사실 그런 구분 자체가 차에 걸맞지 않은 표현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세상 모든 물정이 다 이렇기도 하다.

같은 옷이라도 브랜드로 지나치게 가격이 높게 형성되는 등 평가 절상되어 사치품이 된 것도 있는가 하면, 홍보 부족 탓인지 패션을 아는 사람들만 알아서 어쩌면 몰래몰래 물어 겨우 사두고 아끼는 애호품 또는 애장품도 있다.

다인도 그렇고 차도 그러니 사람과 물건이 다 똑같은 평가 과정을 가지게 되어 그런 것인지 비슷한 분류를 할 수 있다. 멀리서 보면 다인이라는 사람도 하나의 점에 불과하며 차도 그렇다. 여기에 다구(茶具)나 물 등도 포함된다. 우선 이 네 가지의 점들을 어떻게 이을까도 너무나도 다양한 상상을 하게 한다.

점에서 선으로 그리고 면에서 공간으로. 여기에 시간을 넣은 4차원의 세계로 차문화를 구현하는 것은 언제나 늘 마음을 설레이게 한다. 그래서 차 생활이나 차 문화를 쉽게 버리지 못하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네 개의 점 이외에도 다른 요소들은 한없이 많다. 하지만 일즉다(一卽多)로 하나가 곧 하나가 아닌 그보다 많아진다는 뜻이다. 아무 것도 없다는 무(無)라고 할 수 있는 숫자로 ‘0'에서 하나를 의미하는 숫자 ‘1’이 나왔다.

그러니 이미 숫자로 봐도 0과 1이라는 두 개의 숫자가 있는 것이다. 결국 무와 하나라는 두 개로 이미 한 개가 아니라는 의미도 된다. 그렇게 둘, 셋, 넷 결국 여럿이 되면서 일즉다는 완성된다. 어쩌면 이미 완성된 것인데 굳이 설명하려 0, 1, 2, 3을 들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네 개의 점을 어떻게 이을까? 선을 어떻게 만들까? 직선으로? 곡선으로? 아니면 S자 형의 선을 그려볼까? 등등 점점 다양한 모양의 선을 만들어 이을 수 있다. 네 개의 점에 대한 각각 다른 선까지 고민해보면 그 경우의 수는 거의 무한정에 가깝다. 어떻게 이었던 태양계를 벗어난 우주에서 돌아보면 그 역시 점조차도 되지 않는 정말 작은 것에 불과할 것이다. 그 역시도 빛이 있기에 볼 수 있다는 전제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네 개의 점을 이은 선은 사실 1차원적인 것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어떤 면에 구현한 것인지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평평한 면이라는 이상을 버리면 정말 다차원적인 면의 모습이 보인다. 거기에 시간까지 입히면 선의 굴절은 물론 변형과 더불어 연속성까지 생각하면 생각하기도 싫을 정도의 수많은 경우의 수가 생긴다.

이렇게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천체물리학적이며 철학적인 이야기를 계속 읽어가는 가운데 한 가지 의문이 들 것이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지? 다도를 이야기하면서 필요한 이야기인가?라는 의문이 그것이다. 하지만 사유를 즐기고 차명상을 해본 삶의 수행자분들이라면 이미 답을 이해한 다인들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지역의 벽을 허물고 누구나도 공유하면서 함께 살아가야 하는 다문화시대에 들어서 있다. 우주인과의 대화까지는 아니라도 다른 지구인과의 다국적인 이문화 사이의 소통과 대화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젠 국적이 의미가 없을 정도로 각 문화의 특성들이 섞여서 혼합된 퓨전문화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음식을 보더라도 콜라와 커피가 어느 나라에서 시작된 것인지 아는 사람도 많지 않다. 중국에서 유명해서 인도에서 재배한 홍차를 영국의 것이라는 사람도 적지 않다. 물론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3분도 지나지 않아 사실을 알 수 있지만 어쩌면 그런 사실 조차도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그와 상관없이 홍차를 좋아하고 친구들과 즐긴다면 말이다.

전지구인적인 대화가 이뤄지는 것 같지만 대화는 물론 소통조차 안되는 곳이 의외로 많다. 놀랍게도 다도 아닌 다인의 세계도 그렇다. 적지 않은 다인들을 만났지만 이 분들 가운데 적지 않은 수가 고집불통이라는 생각은 저버리기가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세속적으로 꼰대나 꼴통이라는 말로 표현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얼마 전 만난 두 중년의 부인들이 다회(茶會)에서 갑자기 일어나 자리를 떴다. 나중에 팽주에게 물어 보니 차 예법이 자신들과 맞지 않아서 떠난 것 같다고 한다. 무슨 연유인지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그런 이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때로는 먹어서는 안 될 것을 손님에게 먹였다는 이야기까지 한다고 한다.

녹차도 아니고 보이차를 마시는데도 자신들만의 다법을 고집한다. 다법이 틀리면 차 마시는 자리를 함께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나 보다. 백명의 다인을 만나면 백가지의 다법을 볼 수 있다.

방법이라는 선(線)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사람, 차, 다구, 물 등의 점(点)이 아닐까? 그리고 그 보다 중요한 것은 차를 마시는 이유가 아닐까? 왜 차를 마시는 걸까?

차를 마시는 데는 전다법(차를 우려 먹는 다법)이 아니라 자다법(차를 끓여 먹는 다법)을 물론 점다법(갈아서 끓여먹는 다법) 등 다양한 방법이 있다.

전다법으로 차를 마셔도 차의 60%도 다 먹을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고 남은 차를 자다법으로 마시기도 한다. 자다법으로 마실 때는 이왕이면 비슷한 연대의 차들을 함께 낮은 불로 끓여서 먹기도 한다. 브랜딩은 좋지 않지만 낮은 불로 적당하게 어울림의 시간을 제공하면 서로 화합하면서 하나된 맛을 내기 때문이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차회에 모여서 어울림의 시간을 가지며 조화를 이뤄야 하는데 자기 것만을 주장하고 뛰쳐나가는 것이야말로 다법에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 뭘 위해 차를 마시는 걸까? 그런 사람들 대부분이 차 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안되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들의 차선생은 대체 무엇을 가르친 걸까?

어쩌면 몇몇 차인들에게 있어서 다법은 신앙과도 같은 그 무엇인가 보다. 하지만 남에게 자신의 신앙을 강요해서는 안되는 것은 다인을 넘어선 이미 지구인 모두의 매너가 아닌가 싶다. 내 신앙이 소중한 만큼 같이 하는 분들의 신앙도 존경해야 한다. 그래서 네팔 인도사람들은 “나마스떼”라고 인사하나 보다. 내안의 신이 당신의 신께 경배를 드린다는 의미의 인사말이다. 나마스떼 코리아!

-사진은 대만의 한 찻집에서 새로운 방법으로 차를 우리는 티 바리스터의 일하는 모습이다.

하도겸 나마스떼코리아 대표  dogyeom.h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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