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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영 칼럼]자동차 레몬법 실효성이 있어야 한다
연기영 동국대 법대 명예교수 | 승인 2018.12.19 09:24

[여성소비자신문]BMW 차량 화재 사고를 계기로 만들어진 이른바 ‘자동차레몬법’이라고 불리우는 ‘자동차관리법 개정안’이 통과되어 내년부터 시행될 예정이나 ‘늑장 리콜 방지’나 ‘안전 운행’을 담보하지 못할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국판 레몬법이란?

레몬법이란 상큼한 ‘오렌지’(멀쩡한 차량)인 줄 알고 샀더니 시큼한 ‘레몬’(고장이 잦은 차량)인 경우 즉시 리콜하고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는 미국의 소비자보호법을 말한다. 새해부터 시행되는 ‘자동차안전관리법’ 개정안은 레몬법으로 불리는 미국의 소비자보호법을 모델로 삼아 이른바 ‘한국판 레몬법’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번에 개정된 자동차안전법에 따르면 새로 구입한 자동차가 계속 같은 고장을 일으키면 다른 차로 교환해 주거나 환불받을 수 있게 된다. 엔진이나 브레이크, 조향장치 같은 자동차의 주요 부분은 결함이 3번 이상 반복되면 ‘삼진아웃’으로 처리돼 교환·환불 대상이 된다.

다른 부품도 같은 고장이 4차례 이상 발생하면 환불받을 수 있다. '인도된 지 1년 이내', '주행거리 2만km를 넘지 않은 새 차'에서 고장이 반복되면 자동차 제작사가 이를 교환 또는 환불하도록 강제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또한, 자동차 부품의 결함이나 완성차의 결함에 대한 입증책임을 완전히 자동차 제조자에게 부담시키도록 하였다. 즉, 자동차관리법 제31조 8항을 신설하여 ‘자동차회사가 해당 모델의 결함이 없음을 입증하는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고 규정한 것이다. 자동차 화재사고처럼 운전의 안전을 위협하는 사고가 발생할 경우 결함 원인을 무조건 완성차 업체가 밝히도록 규정한 것이다.

BMW 화재사건을 계기로 소비자보호를 위한 리콜 제도가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이번 개정안은 많은 부분을 신설한 것이다. 한편,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역시 강화되었다. 모든 결함 제조물의 손해배상책임에 있어서 적용되는 제조물책임법상 3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지만, 자동차결함에 있어서는 제작사가 결함을 인지한 뒤에도 조치하지 않아 중대한 손해가 발생하면 손해액의 5배까지 배상하도록 개정했다.

한국판 레몬법은 실효성이 있을까?

그런데 이 법이 실효성을 거두려면 자동차 결함의 원인을 정확히 규명할 수 있는 시스템의 구축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동안 국내 차량 결함 조사는 국토부 산하기관인 자동차안전연구원이 맡아왔다. 그렇지만 조사 권한의 한계와 연구 인력 및 예산의 부족 등으로 제대로 된 조사를 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이제 결함을 제조사가 증명해야 하지만 자동차업체가 일방적으로 유리한 조사 결과만 나올 가능성이 많다. 한국교통안전공단 소속 자동차안전연구원의 인력은 현재 16명에 불과하다. 내년에 9명이 충원된다고 하지만 미국 등 자동차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인력이다. 정부 당국에서도 지난 8월 베엠베 사태가 나서 수습하는 과정에서 “제작 결함을 조사할 연구원이 13명밖에 되지 않고 예산과 인력, 제도 면에서 굉장히 후진적”이라고 실토한 바 있다.

미국은 도로교통안전국(NHTS)이라는 막강한 권한과 전문성을 갖춘 기관을 통해 업체 스스로 리콜을 하게 된다. 올해 3월에 기아차가 에어백 관련 결함으로 미국에서 총 50만7천대 이상의 차량을 리콜하기로 결정한 적이 있었는데 그 당시 기아차의 리콜은 이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의 조사로 이루어진 것이다.

수 백 명의 전문가가 조사를 한다. 리콜이 결정되면 회사 이미지는 추락하니 과징금보다 더 무섭다. 또한 미국의 이 기관은 연방검찰과 협업을 통하여 엄청난 효과를 거두곤 한다. 도요타 대량리콜 사태와 폭스바겐 디젤게이트 사건 당시 미국정부는 도요타에 과징금 1조3천억 원, 폭스바겐에는 4조7천억원을 부과했다. 업체들은 미국 도로교통안전국에 벌벌 떨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비해 한국은 어떠한가? 소비자들이 고발을 하고 SNS에서 난리가 나도 업체의 움직임은 조용하다. 화재가 나고 인명피해가 발생해야 조금씩 업체나 정부가 나서기 시작한다. 최근에 차량 이상 소음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소비자의 목소리가 높다.

비정상적인 크기의 엔진 소음이나 주행 중 차체나 브레이크 등에서 원인 불명의 소음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지만 원인 규명이나 보상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차량 소음의 경우 결함 기준이 모호하고 결함 판정 역시 제조사의 결정에 전적으로 따라야 하는 상황이다.

아무리 수리를 입고해도 제조사가 정상 판정을 내리면 소비자는 사실상 아무런 조치를 못한다. 소비자가 소음으로 불편을 호소해도 원인과 증상을 제때 찾지 못하면 오히려 소비자의 주관적이고 민감한 성향 때문이라고 치부되기 일쑤다. 명확한 차량 소음 결함 기준이나 측정·평가 기관이 절실 필요한 시점에 와 있다고 본다.

법의 실효성 담보하기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

첫째,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과 같은 강력한 권한과 조사 기능를 가진 기관이 설립되어야 한다. 그리고 산하 연구기관으로 결함의 원인 규명기구가 상시적으로 설치되어야 하다. 이 기구는 자동차선진국인 미국이나 일본의 경우처럼 정부와 자동차 업체, 소비자 및 전문가 집단이 공동으로 조사하는 기능을 가진 제도적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 이런 공정하고 중립적인 원인규명기구를 통해  정확한 결함 원인을 조사하고 분석하여 소비자신뢰를 얻는 것이 필수 불가결하다고 생각한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고 안전과 직결된 자동차 결함의 문제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급부행정의 차원에서 개입하고 민관이 함께 풀어야 할 공적인 문제라는 인식이 중요할 것이다. 자동차 업체도 부담을 갖기보다는 좀 더 소비자를 배려하고 보호함으로써 고객으로 부터 신뢰성을 확보하고 좋은 이미지를 갖게 하여 더 많은 차를 판매할 수 있도록 하는 전략이 필요할 것이다.

둘째, 리콜제도가 새롭게 정립되어야 한다. 그동안 가습기 살균제, 생리대, 폭스바겐 배기가스 조작, 라돈침대, BMW 차량 화재 등 생명과 직결된 일련의 사태들이 반복되면서 리콜제도가 제대로 가동되지 않아서 소비자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소비자의 생명, 신체, 재산에 위해를 가하는 이런 일련의 제품들은 리콜을 통해 회수되고 있지만 안일한 대처, 늑장 대응으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심지어 ‘리콜’을 리콜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 리콜제도는 미국, 유럽, 일본 등에 비해 적용 범위가 상대적으로 좁다. 자동차의 경우 ‘안전운행에 지장을 줄 우려가 있는 경우’에만 리콜 대상이 된다. 하지만 일본은 설계 또는 제작과정 중 안전기준에 적합하지 않게 제작된 자동차 구조 및 장치에 이르기까지 아주 폭넓게 적용된다. 또한 리콜의 사후 관리가 거의 없어 리콜계획이 실행되지 않거나 회수율이 저조해도 별다른 조치를 위하지 않는 것이 문제이다. 이러한 현실적이고 제도적인 문제점을 보완하는 것이 시급하다.

셋째, 집단소송제도가 도입되어야 리콜의 실효성이 보장된다. 집단소송의 판결 효력은 원고를 포함한 피해자 전원에게 미치는 일괄구제 방식이다. 피해를 입은 소비자 1명이 승소해도 관련 피해 소비자 모두가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제도이다. 미국의 사례가 우리에게 귀감이 된다. 배기가스 유출 사태로 폭스바겐은 미국에서 판매 중단과 함께 소비자들에게 1인당 최대 1200만 원을 지급하기로 합의하고 집단소송을 피했다.

과거 과도한 폭발 압력으로 에어백 내부 금속파편이 튀어나오는 결함이 발견된 다카타 에어백을 사용한 자동차 업체들은 집단소송에 휘말려 거액의 보상금을 물어줬다. 혼다는 7283억원, BMW 3372억원, 닛산 1109억원 등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증권피해 소송에만 이 제도가 도입되어 있으나 모든 소비자피해구제로 확대되어야 할 것이다.

넷째, 자동차 사업자들이 우려하는 바와 같은 이른바 ‘블랙컨슈머(악성 소비자)’를 막아 내서 ‘인민재판’ 형태를 방지해야 하는 것도 필요하다. 억울한 사업자가 나오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인 장치도 당연히 있어야 한다.

결국은 소비자주권을 보장하고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제정된 이 법의 실효성을 높이고 법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정부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연기영 동국대 법대 명예교수  yeunky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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