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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겸 칼럼] 보이차, 묵묵히 옆을 지켜주는 휴식의 반려자차가 뭐길래?
하도겸 | 승인 2018.11.29 16:09

 

[여성소비자신문] 최근에 흥행한 전설이 된 퀸의 ‘프레디 머큐리’를 그린 보헤미안랩소디를 봤다. 혼자 있을 때의 ‘외로움’은 전설도 비켜갈 수 없었나 보다. 팬들을 사랑하기 위해 태어났다(I was born to love you)고 노래하는 퀸은 늘 사랑에 목말랐나 보다. 우리에게 외로움은 정말로 자살을 불러올 정도로 큰 고통인가?

NGO 나마스떼코리아에서 10여년간 봉사단장으로 일하면서 히말라야에 자주 가 봤다. 가끔은 안나푸르나 정상을 밟는 등반가가 되기도 하고, 마차푸차레 봉우리를 나는 새가 되어보기도 하고 구름이 되어보는 상상도 했다.

명상 속에서 산이 되어 그냥 주변을 바라보기도 했다. 저 멀리 촘롱 주변에서 나(마차푸차레)를 바라보는 너(나)가 개미처럼 작은 점처럼 보였다. 등반가가 되어 산 정상에 올라도 베이스캠프에 보이는 사람은 점에 불과하고 이 조차도 날씨에 가려 안보일 수 있다. 정상이라는 목표에 오를수록 혼자가 되어가고 더욱 외롭다. 인생이란 여정은 항상 이런가 보다.

티베트불교의 밀교적인 고유한 수행이라고 할 수 있는 로종(Lojong), 즉 ‘마음 바꾸기’라 불리는 수련법이 있다. 너와 나의 마음을 바꾸는 것으로 궁극적인 단계에 가면 인간은 물론 동물을 넘어 자연과 하나가 되는 ‘물아일체’도 이룰 수 있을 듯싶다.

비록 명상 속에서 이뤄진 것이라도 스스로를 마치 다른 사람인양 타자화(他者化)해서 객관적으로 조망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어느날 혼이 빠져 자신의 검은 머리를 보며 천장을 뚫고 집과 마을, 한반도와 지구를 보며 오르는 ‘유체이탈’이라는 착각을 넘은 망상도 한 종류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을 한자로 인(人)이라고 하는 것은 한 사람 한 사람 해서 둘이 서로를 의지하는 모양을 가진다. 그리고 인간(人間)이라는 말은 사람들 사이라는 뜻으로 사람이 사회적인 동물임을 증명해준다. 사람들과 함께 무리(공동체) 생활을 해야 하는 인간의 숙명인가?

선도성찰나눔실천회 지도법사인 박영재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는 ‘휴(休)’는 사람이 나무(木) 나아가 자연을 상징하는 숲(林)에 있는 것으로, ‘식(息)’은 자기 자신(自)과 마음(心)의 합성으로 결국 ‘휴식’이란 ‘인간이 자연 속에서 자기 자신의 마음을 진지하게 성찰하는 것’이라고 했다.

‘차(茶)’를 보면 풀을 뜻하는 ‘초(草)’와 맨 아래 ‘목(木)’ 사이에 사람[人]이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이나 미탄면 등의 아름다운 풍광처럼, 아름들이 나무가 있는 초원은 우리 모두의 로망이다. 예전 사람들도 예외는 아닌가 보다.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르기 위해서 산에 올랐다. 하지만 그 산까지 가지 못한 사람들에게서 양과 염소가 노니는 푸른 초원과 수풀은 언제나 몸과 마음을 쉬게 하는 휴식의 공간이었을 것이다. 몽골의 대초원을 질주하는 말과 조용히 풀을 먹는 양떼들은 하늘의 떠 다니는 구름같은 모습을 상상 속에서 연출한다.

바쁜 일상의 삶 속에서 틈틈이 차 한 잔 마실 여유를 가지자고 말하곤 했다. 결국 차는 우리에게 있어 ‘여유’의 의미가 있나 보다.

여유(餘裕)란 먹을 것(食)이 남았다(余)는 뜻으로 사전적으로도 물질적ㆍ공간적ㆍ시간적으로 넉넉하여 남음이 있는 상태를 말한다. 여유로운 휴식이라는 말이 있듯이, 정말 바뻐도 너무 바쁜 요즘 여유란 휴식과 같은 말로 사용되기도 한다.

차를 마시고 싶지만 커피를 마신다는 사람들 대부분은 차를 우리고 끓이고 하는 번거로움을 지적한다. 과도하게 다례가 강조되고 녹차 시음이 ‘아름다운 이야기’로 포장된 폐해는 아닐까?

마시고 싶을 때 보온병에 따스한 물 넣고, 정성스럽게 티백에 마시고 싶은 차를 담아서 마시면 될 일이다. 차는 지켜야 할 의무나 강요가 아니라 즐겨야 할 권리이자 재미이다. 가끔 3분정도만 시간을 내면 차를 끓이고 우리고 마실 수 있다.

다른 차는 산화가 되어 보관상 열어 둘 수 없지만 보이차는 침실 책장이라도 냄새나 습기가 없으면 충분히 용기 없이 보관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가까이 차를 두는 것은 늘 묵묵히 옆을 지켜주는 휴식의 반려자가 바로 차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잠들 때 보이차는 은은하게 향기를 내어 꿈속에서 넓은 초원을 만들어 줘 꿈수행도 가능하게 해 준다.

외로움 피할 수 없다면 받아들여서 나누고 즐기면 어떨까? 나눌 상대가 없다고 생각하지 말고 보이차가 담긴 찻잔을 비우고 채우면서 즐거운 ‘차놀이’를 하면서 말이다. 그러다보면 사람이 더 그리워지게 되고, 결국 스스로가 벗에게 차를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 될 준비도 무르익을테니 말이다.

사진은 자사로 만든 오복돼지를 찍은 것이다. 다상과 행복을 상징하는 돼지. 그 머리는 신에게 비치는 신성한 제물이 되었다. 앙증맞은 돼지 얼굴 위해 관, 록, 재, 복, 수 등의 좋은 희망이 적혀 있다.

하도겸  dogyeom.h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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