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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명숙의 행복한 시 읽기]다 어디 갔을까
구명숙 숙명여자대학교 명예교수 | 승인 2018.11.20 16:02

[여성소비자신문] 다 어디 갔을까

            구이람
           
1
가슴속까지 푸르던
차돌처럼 단단하던

감이파리 숲에 싸여
무더운 여름밤을 견디던
그 많던 땡감들

세월이었을까, 천둥 번개였을까
바람이었을까

2
빨갛게 익어 이제
홍시로 매달려 있지만

어느 바람결에 누가 먼저
떨어져 버릴지 모르는
너와 나의 운명

사람 하나를 견디고 사는 일도
그렇게나 많이 회오리쳐 오고
또 가겠지

-시평-

현대인을 가장 외롭고 슬프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물질중심 시대를 살아가고 있으면서 내가 갖지 못한 다른 물질에 대한 소외감인가. 물질에 치우쳐 정신세계가 빈곤해진 탓인가. 일의 단순한 반복에서 오는 권태 때문일까.

시지프스의 돌멩이를 이고 날마다 산을 오르는 일이 삶의 전부라면 견디기 어려운 허무가 엄습해 올 것이다. 어쨌든, 오늘날 ‘견딤’에 점점 나약해지는 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현상 같다.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 누구나 이미 가족 관계에 놓여 있다. 성장과정 또한 많은 관계망 속에 얽히게 되고, 그 관계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창출하며 살아가게 된다. 구이람의 시 ‘다 어디 갔을까’에는 관계망 속 ‘견딤’의 미학이 숨어있다.

“감이파리 숲에 싸여 /무더운 여름밤을 견디던/그 많던 땡감들// 세월이었을까, 천둥 번개였을까/바람이었을까” 어린 감들이 푸른 이파리들 속에 묻혀 한더위를 견딘다. 느닷없는 천둥번개, 비바람도 철모르는 땡감이 가지에서 떨어지지 않고 견뎌내도록 혹독하게 단련시켰음을 암시하고 있다.

떫은 땡감이 빨간 홍시로 익어갈 때까지 외로움, 두려움, 슬픔, 그리움, 그리고 무수한 아픔과 고통을 참고 견딤이 있어 가능했음을 말한다. 그 행간에 숨겨진 의미는 삶이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 견딤의 끝은 잘 익은 빨간 홍시이지만 이 또한 오래 머물 수 없는 것, 누가 먼저 자리를 떠나가게 될지 모르는 일이다.

“사람 하나를 견디고 사는 일도/그렇게나 많이 회오리쳐 오고/또 가겠지”하면서 홍시가 될 때까지 참고 기다려주는 견딤의 깊은 삶이 있어, 위로가 된다.

구명숙 숙명여자대학교 명예교수  k9350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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