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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겸의 차 이야기②]차는 무엇이어야 하는가?신분과 빈부를 넘어선 평등의 보이차(普洱茶)
하도겸 나마스떼코리아 대표 | 승인 2018.11.19 11:59

[여성소비자신문]“천하를 얻고도 건강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는 돈이나 명예가 있어도 건강이 없으면 다 허사라는 뜻으로 주로 사용되는 말인 듯하다.

하지만 이는 돈이나 명예가 없는 사람들이나 루저가 떠드는 말이라는 주장도 있다. 또는, 돈이나 명예를 갖지 못한 사람들을 비꼬는 데 사용하려는 말이라고도 한다. 말의 뜻보다는 ‘악용’의 치우쳐서 지나치게 해석한 것일 수 있다.

이미 21세기의 우리나라는 자본주의를 넘어 금권시대(金權時代)에 들어섰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닌 듯하다.  무한경쟁을 넘어 극단적인 경쟁인 치킨게임이 치러지고 있는 오늘날에 소위 ‘가진 자’들의 모든 행동은 갑질로 비춰지기도 하다.

'쩐(錢)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우리 서민들에게 쉬엄쉬엄 건강 챙기면서 일하라는 말은 정말 ‘걱정’을 해주는 ‘덕담’의 느낌으로만 다가오지 못한다. 이런 현실이 아쉽고 ‘시대유감’으로 표현할 수 있다. 이럴 때일수록 보이차 한잔 마시면서 여유를 찾고 더욱더 건강 잘 챙겨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 일까?

과거 차는 소위 부르주아[有産者, Bourgeois] 즉 가진 자들의 전유물이 아니었나 싶다. 지금의 차문화 관련 서적을 살펴보면, 삼국시대 이래로 왕가와 귀족 그리고 불교 승려들이 아니면 차의 역사를 논할 수 없다. 조선후기에서도 차를 만들거나 구할 수 있었던 양반인 다산 정약용과 승려인 ‘초의선사’ 그리고 이어지는 추사 김정희와 관련된 일화들이 대부분이다.

‘아름다운 차문화’로 포장된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민중 즉 민초들의 삶이나 일상의 고통은 왠지 실감되지 않는다. 대신 '유배'와 그리고 '참선 수행'이라는 왠지 ‘시간’이 넉넉해 보이는 ‘분’들의 이야기로만 받아들여지는 부분도 있다.

세도정치로 더욱 피폐해진 민초들의 일상에는 가뭄과 기근과의 전쟁을 비롯하여 108번뇌를 넘어선 온갖 고통이 있었다. 아무리 풍년이 들어 추수가 끝나도 고가의 비싼 차를 구해서 마실 수 있는 돈과 시간은 없었을 것 같다.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유비 현덕이 구하려던 귀한 ‘차’는 조선후기에 있어서도 '약'과 같은 소중한 것은 아니었을까? 숭늉도 얻어 먹기 힘든 시절에 ‘차’는 민초들에게는 사치 그 자체 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듯 싶다.

당시의 차가 정확히 오늘날의 녹차였는지는 누구도 잘 모를 듯 싶다. 자본주의에 선행하는 전근대사회에서 하루하루가 '목구멍이 포도청'이었던 민초들은 먹고살기 위하여 해서는 안 될 짓까지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시대에 몇몇 가진 자들의 ‘차’ 이야기를 ‘아름답다’고 논하는 것 자체가 당대 사람들이 들으면 특권신분층의 사치스럽고 도피적인 낭설은 아니었을까 싶다.

언젠가부터 우리의 차문화나 차 역사가 '센노 리큐'를 추앙하는 일본 다도를 흉내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일본 패러다임을 가져와서 리큐 자리에 다산 정약용이나 다성 초의선사 그리고 추사 김정희를 넣고 싶은 것은 아닐까?

그들이 정말 우리 차문화를 대표하는 아이콘이 되어도 되는 것인가에 대해 질문해야 할 때가 된 것은 아닐까 싶다. 우리 차문화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되묻고 싶다. 당신들에게서 ‘차’는 무엇인가?

완물상지(玩物喪志)라는 말이 있다. 쓸데없는 물건을 가지고 놀다가 정신이 팔려 소중한 자기 본성을 상실한다는 뜻이다. 우리 차문화에 있어 언젠가 대표적인 주제어가 된 다선일미(茶禪一味)라는 말과 상충되는 이 말을 사용하게 된 것이 왠지 송구스러운 점도 있다.

지난번에 언급했듯이 차는 잘 만들었을지 모르지만 초의선사가 깨달은 도인이 아닌 이상 다선일미란 말을 사용할 때는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차는 사라지고 지나치게 형식적인 예의만 남은 일본식 다도의 전철을 우리가 일제가 끝난 지금 밟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렇게 일본 다도의 아류를 만들고 싶을까?

우리가 전해준 다도라고 할지라도 이미 민주주의는 물론 우리 실생활과 멀어진 일본 다도의 종적을 쫓아서는 안될 듯 싶다. 아무리 부정해도 왜색으로 보이는 다도와 향도는 과연 무엇일까? 친일청산이 부족한 우리의 또하나의 역사적인 숙제와 같은 짐일까?

지금도 절에 가면 귀한 손님이 오셨다고 내 놓는 차를 전근대사회에서는 정말 아무나 맛볼 수는 없었다.  오늘날 누구나 차를 사서 마실 수 있다. 작은 절은 물론 교회나 성당에 가도 마실 수 있지만, 조선시대까지는 차를 만드는 승려와 인연이 있는 남부지방의 큰 절이나 가야 ‘귀한 차’를 마실 수 있었다. 지금은 남녀노소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차한잔의 여유’를 당시에는 특정 신분의 사람들만 누렸던 것을 알고 차문화에 접근해야 될 듯 싶다.

일기일회(一期一會)라는 말이 있다. 평생(平生)에 단 한 번뿐인 만남으로 만난 바로 지금을 소중히 한다는 비유로 손님을 극진히 대우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불가(佛家)에서 진심으로 손님을 대하는 데 사용된 ‘차’가 인문이나 예술로 보면 '아름다운 문화상품'이지만 그 사회경제적인 실체는 유배 간 사람이나 민중들의 눈에는 탈세속이 아닌 현실도피적인 승려들의 장난감에 불과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처럼 시문을 짓진 않더라도 그동안 쌓인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마음을 전하는 ‘차’를 우리는 시간은 참으로 정겹기만 하다. 잔을 비우고 채우면서 서운한 감정도 풀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어가게 하는 차 문화를 금권주의로 넘어 온 현대사회가 되어서야 우리 국민 모두가 향유하게 된 것은 새삼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일상으로 성큼 다가온 차 문화에 꼭 우리 전통이라는 ‘화장’을 한 ‘녹차’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전승과 명맥이 있다고 해도 지금의 차가 신라 이래 조선까지의 차와 같은지도 잘 모르겠다. 정말 똑같은 차로 제다법도 같았을까? 막걸리 하나만으로도 수천가지 맛이 나는데 차를 만드는 방법이 단 하나였을까? 정통 운운하는 것 자체가 제국주의적인 발상으로 독불장군의 말장난은 아닐까?

특히 커피와 콜라 등이 국적을 벗어나 전세계적 음료가 되어 있는 현실이다. 어떤 차를 마셔도 되는데 굳이 ‘우리 전통 녹차’만을 고집하는 것은 많이 낯설고 부담스럽기만 하다. 한 가지 차만을 고집하는 것은 ‘보수’를 넘어 어쩌면 ‘묵수(墨守)’라고 이해될 수도 있다.

일부 특정 신분층의 차문화에 쓰인 ‘차’가 지금의 발효가 거의 안된 녹차였는지 모르겠다. 녹차였어도 모차 형태의 산차(散茶)였는지 떡차였는지도 모르겠다. 어떤 제조방식의 것인지에 대해서는 불명확 부분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녹차에게 금관을 씌운 형식적인 다도나 건강해보이지 않는 티백으로 마시기를 강요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한 듯하다. 그냥 커피나 홍차라도 각각의 음료나 차의 장점을 인정하면 어떨까?

글로벌시대 우리의 음식은 이미 세계의 음식이기도 하다. 남녀노소 누구나 빈속에 5g정도 우려서 매일 매일 몇 달간 물보다 많이 마셔도 되는 차가 우리 곁에는 그리 많지 않다. 명대로 살기 위해서 열악한 환경에 놓인 우리 현대인들의 건강에 도움이 되는 차 가운데 중국 운남의 보이차도 한자리를 하고 있다. 따뜻한 기운으로 체온을 올려주고 면역력을 올려주며 노페물을 빼는데 효과적인 보이차는 엄마한테 받은 우리 몸으로의 되돌아가게 한다.

태어났을 때의 명대로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 차는 이제 신분과 빈부 그리고 국적을 넘어서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이차를 우려서 나누는 이 시간 우린 평등하고 서로 존엄하다.

비록 차를 즐기지는 못했지만 그런 소중한 자유를 가져다준 선조에 대한 고마움과 지켜서 다음 세대로 물러줘야 할 우리의 책임을 위해 이제 다시 찻잔을 채워 평등과 건강을 음미해야 할 여유를 찾아야 할 시간이 된 것 같다.

남 맹해의 남나산 차왕촌의 보이차 나무와 잎(방승환 제공)
운남 맹해의 남나산 차왕촌의 보이차 나무와 잎(방승환 제공)

 

하도겸 나마스떼코리아 대표  dogyeom.h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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