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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명숙의 행복한 시 읽기]못의 사랑
구명숙 숙명여자대학교 명예교수 | 승인 2018.10.19 13:59

[여성소비자신문]구명숙의 행복한 시 읽기
 
못의 사랑

      구이람

내 가슴 벽에
네 못이 박혀올 때면
나도 못이 되고 만다

내 안의 벽 속 대못이 뽑혀 나가고
내 가슴속을 파고드는 못 구멍에 숭숭
바람이 스며든다

못의 몸뚱이보다 깊어진 상처가
가슴에 꽂혀 와도 피 한 방울 솟지 않는다
피멍으로 엉겨 붙는 시간의 피붙이들

추억도 마르고 그리움도 시들어 가고
우리 서로 못 박힌 청춘 속에
지나가는 것은 허공의 흰 그림자일 뿐


-시 노트-

냉가슴에 생솔불 지피듯 맵게 타오르는 상처들, 환히 녹여줄 수 있다면 새 삶이 돋아나겠지요. 살아가면서 상처를 아물리고 지우려 애쓰지만 그 피멍의 딱지가 좀체 떨어지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첫 연에서 “내 가슴 벽에/네 못이 박혀올 때면/나도 못이 되고 만다” 고 노래 하네요. 가슴 벽에 깊게 박힌 너의 대못을 빼내려 하기 보다는 차라리 나도 못이 되고 말겠다는 내면의 의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너를 알기 위해 마침내 나도 못이 되는 것이지요. 다름 아닌 그의 아픔도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나를 얼마나 담금질해야 할까요.

이 시는 2연에서 바로 반전을 보여주는 바, “내 안의 벽 속 대못이 뽑혀 나가고/내 가슴속을 파고드는 못 구멍에 숭숭/바람이 스며든다”는 조용한 절규입니다. 너를 확 뽑아버린다 해도 끝내 가슴 저리게 남아 있는 너, 너의 그 자리를 파고드는 시리고 아픈 자신을 어찌할 수 없어 “나도 못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추억도 마르고 그리움도 시들어 가고/우리 서로 못 박힌 청춘 속에/ 지나가는 것은 허공의 흰 그림자일 뿐”이라 해도 못 박힌 붉은 사랑 하나는 무념(無念)으로 남겨둘 일인 듯합니다.

 

 

구명숙 숙명여자대학교 명예교수  k9350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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