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 2018.12.13 목 13:13
HOME 여성 파워인터뷰
신용현 의원 "4차산업혁명 시대에 과학기술인 출신으로서 사명감 가지고 입법 발의할 터"
김희정 기자 | 승인 2018.09.21 21:18

[여성소비자신문 김희정 기자] 청소년 시절 여성 과학자를 꿈꿨던 신용현 의원은 과학기술계를 대표하는 여성 과학자로서 원내 3당 비례 1번으로 국회에 입성했다. 국회에 과학기술인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정치입문 제안을 받았을 당시 그는 한국표준과학연구원 회장과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부회장을 맡고 있었고, 정치에 전혀 뜻이 없어서 제안을 거절했다. 정치 입문 제안을 계속 거절하다가 그가 결정적으로 마음을 바꾸게 된 계기는 비례대표 후보 발표가 난걸 보고 나서였다.

“가족과 주변에서도 반대를 많이 했죠. 정치인이라는 게 좋은 소리 못 듣고, 남의 입에 맨날 오르내리잖아요. 반면, 연구원장은 굉장히 좋은 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은 제가 30년 이상 근무했던 곳이고, 원장이 끝나면 65세까지 안전하게 대우받으면서 있을 수 있는 자리이기도 했죠.

그러나 여러 당을 통틀어 현장 과학기술인은 한 명도 없는 것을 확인하게 되면서 4차산업혁명 시대에 과학기술인으로서의 사명감을 가지고 국회에 입성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됐습니다.”

신 의원이 과학자를 꿈꾸던 청소년 시절만 해도 여성 과학자를 꿈으로 간직한 여학생이 드문 시절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600만불의 사나이’에서 주인공을 돕는 과학자처럼 되고 싶었습니다. 거기에 나오는 과학자는 지금으로 치면 기계공학, 생체공학 등에 박학다식한 만능해결사였죠. 주인공이 사고로 왼쪽 눈과 오른팔, 두 다리를 잃지만 과학자의 도움을 받아 생체공학 눈과 인공 팔·다리를 이식 받고 특수요원으로 거듭나는 장면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좋은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과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키우면서 관련 전공으로 선택한 것이 모든 자연과학의 기초학문인 물리학이었어요.”

신 의원은 첫 여성 과학자 단체인 대한여성과학기술인회를 발족하는 데 앞장선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가 이 단체의 산파 역할을 하게 된 것은 여성 연구원들의 육아와 살림에 대한 고민 등 담론을 논의하기 시작하면서 만들어지게 되었다.

“1984년 10월에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 들어갔어요. 그 당시 내가 속한 연구소에는 여성 연구원이 많지 않아서 육아와 살림에 관한 고민을 공유할 상대가 없었습니다. 우리 연구원 옆에 화학연구원이 있었는데, 대한여성과학기술인회 초대 회장을 지내신 오세화 박사님이 당시에 화학연구원에 계시면서 여성 연구원들을 모아서 가끔 밥을 사주셨어요. 처지가 비슷한 여성들이 모이니까 여러 가지 정보도 공유하고 수다떠는 게 재미있었어요. 처음엔 순수한 친목단체였는데 여성 인권 향상도 도모할 겸 모이는 걸 정례화하면 좋겠다고 생각해 1994년에 사단법인으로 등록했고, 그것이 바로 대한여성과학기술인회입니다.

IMF 외환위기 때 IMF 권고안 중에 은행 구조조정이 있었는데 그것보다 우선순위가 ‘이공계 여성인력을 활용하라’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당시 김대중 정부 때 이공계 여성 인력을 활용하는 방법이 국가적 아젠다가 됐거든요. 그때 여성단체라고는 대한여성과학기술인회 하나밖에 없어서 우리 단체가 ‘여성 과학기술인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안’ 초안을 만드는데 기여를 많이 했어요.

채용할당제라든가 여성연구책임자 가산점제, 여성 연구원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 과제, 여교수 정규 TO 외 채용 등 모두 그 당시에 마련한 제도에요. 당시 활동했던 일들이 현재 여성과학기술인을 돕기 위한 근간이 되고 있습니다.”

한국의 여성과학자들은 그동안 성별 격차로 인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어왔다. 이들 여성과학자들이 지속적으로 과학자로서 실력을 발휘하려면 무엇보다 제도적인 뒷받침이 가장 절실했다.

“국회에서 제일 이루어내고 싶은 일이 경제활동에서의 남녀 성별 격차 해소에요. 예를 들어, 과학기술계에서는 사람을 뽑을 때 최근 3년 간의 연구실적을 요구합니다. 그런데 여성들이 결혼을 해서 박사학위를 받을 때쯤 출산을 하게 되면 예전에 아무리 잘했어도 최근 2~3년 간 실적이 없기 때문에 채용이 안 돼요.

이 같은 문제 때문에 대부분의 여성들은 채용이 되고 나서 출산을 해야 하죠. 그러면 기업이나 연구소에서는 다시 ‘여성은 뽑아놓으니 애를 낳더라, 그러니까 안 뽑아’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거에요. 먼저 이런 점을 고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출산을 했거나 육아를 해야 하는 여성의 경우에 그 기간 만큼 채용 평가와 관련한 유예를 해줘야 합니다.

사실 근무고과도 마찬가지입니다. 출산을 한 해에는 3개월을 쉬게 되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12개월 일한 것과 9개월 일한 것을 똑같이 비교하면 출산을 한 여성의 근무고과가 나쁠 수밖에 없어요.

바로 이런 점 때문에 근무고과에 대해서도 출산을 한해나 다음해 정도쯤은 그해 평균을 받게 해주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법안 발의까지는 아니지만 회사 내규만 고쳐도 도움이 많이 됩니다. 여기에 법령을 고치는 법안발의와 정책적 토대 마련을 통해 여성과학자들을 지원한다면 다양한 분야의 여성과학자를 발굴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문사회 기반 융합 연구 위해 노력

얼마전 신 의원은 인문사회 기반 융합 연구 성과와 활로 모색을 위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4차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인문사회 기반 융합 연구는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4차산업혁명 시대는 아날로그와 디지털, 예술과 기술, 인문학과 공학 등 서로 다른 분야 간 융합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어요. 그 과정에서 무한한 경제적‧산업적‧사회적 가치가 창출되고 있습니다. 4차산업혁명 시대에는 활발한 산업적 융합 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융합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는 특정한 분야가 주도하거나 독점하는 형태로 발전을 이루기 어려워요. 다양한 분야가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융합해 나아가야 합니다. 여기에 우리의 삶과 근원적으로 맞닿아 있는 인문사회를 빼놓을 수 없어요. 이를 위해 앞으로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연구자에게 더 나은 융합연구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필요한 정책이 무엇인지 등이 지속적으로 논의되고 수행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신 의원은 창의적 도전적 연구를 지원하는 성실실패법도 발의했다. 이 법은 신 의원이 연구개발을 하는 과학자로서 겪어온 성실실패에 대한 과학자들의 부담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법이다.

“현행법상 연구개발의 결과가 실패한 것으로 판정되면, 책임연구자의 참여를 제한하거나 정부가 이미 출연한 사업비의 전부 또는 일부를 환수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다만, 연구개발을 성실하게 수행한 사실이 인정되는 경우에는 시행령을 통해 '성실실패'를 인정받을 수 있어요. 그러나 막상 현장에 있는 연구자들은 법률에 비해 상대적으로 개정이 쉬운 시행령에 대해 법적 안정성을 느끼지 못하고 도전적인 연구를 꺼리는 실정이에요.

지난 몇 해 동안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국가과학기술연구가 연구자들의 성실실패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자 '매뉴얼' 수준의 가이드라인을 안내하는 등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연구를 촉구해 왔지만, 그동안 과학기술 현장에서는 정량적인 잣대로 성과를 평가하는 부담을 줄이고 연구자들에게 신뢰와 자율권을 명확히 부여하는 성실실패 인정제도의 법적 안정화에 대한 요구가 끊임없이 있어 왔어요. 이러한 이유로 법개정을 통해 연구자들이 도전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토대를 갖추고, 기초과학 육성의 기틀을 마련하고자 한 것이에요.”

사실 한국의 미래는 과학산업의 발전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4차산업혁명과 관련해 지금도 많은 행사들이 진행되고 단체들이 만들어지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이것이 산업발전에 구체적으로 연결될지에 대해서는 의문도 든다.

“과학기술 혁명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산업혁명이 일찍 된 나라는 경제적으로 앞섰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식민지가 됐어요. 기술력을 가지고 판가름이 나죠. 4차산업시대가 바로 그런 전환점입니다.

이제까지 우리 경제를 지탱해줬던 자동차 산업, 중화학 산업은 투자하면 눈에 보이는 성과를 냈어요. 반면 4차산업은 자율자동차나 핀테크 정도만 실질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정도에요. 그 외에는 사실 잘 느껴지지 않는 게 현실입니다.

4차산업은 현재 태동 단계이기 때문에 어떤 눈에 띄는 성과를 당장 만들어내기는 어려워요. 장기간에 걸친 정책이 만들어져야 하죠. 4차산업에 맞는 직업군이 아직 나오지 않아 더욱 추상적으로 느껴질 수 있어요. 이전에는 어떤 기술을 배우면 어떤 직군에서 일하는지 예측 가능했어요. 자동화가 진행되면 일자리가 줄어드는데 4차산업 유망 직업군은 떠오르지 않는 것이죠. 내 자식이 당장 어떤 직업을 가질지 알 수 없으니 체감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이처럼 4차산업시대에는 일자리는 줄어든다고 하는데 새로운 직군이 나오지 않으니 체감이 더욱 어려운 것이에요.

보통 4차산업혁명 시대에 대표적으로 사람들이 경쟁력 있다고 생각하는 분야가 의료, 자동차 쪽입니다. 그런데 이들 분야는 기업 등 민간에서 더 잘 해낼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정부는 어떤 분야를 키운다는 것보다는 누군가가 다양한 아이디어가 있으면 기술로 구현될 수 있도록 다른 사람과 연결시켜 준다거나 자금을 지원하는 등 시도를 많이 해볼 수 있도록 판을 깔아줘야 합니다.

4차산업혁명 시대에는 공급자가 판을 깔아주는 게 아니고 수요자가 원하는 것을 잘 찾아서 공급해줘야 사업이 클 수 있습니다. 판을 깔아주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지, 정부가 어떤 분야를 육성하겠다는 전략은 이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비동의 간음죄 도입 입법 마련에 힘 보태

신 의원은 얼마전 몇 몇 여성의원들이 비동의 간음죄 도입을 위한 입법 마련에 뜻을 같이 했다.

“현행 법률은 폭행이나 협박으로 성폭행한 경우만 처벌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번 법안은 사실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명시적 동의 없는 강간으로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해 최근 ‘안 전 지사 무죄판결’과 같은 일이 다시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법안은 기존에 ‘폭행 또는 협박’에 의해서만 강간죄로 처벌되는 현행법을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여’ 간음하는 경우 처벌하고, 업무상 관계뿐만 아니라 다른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에 대해 ‘명시적 동의 없이’ 간음한 경우에도 처벌하며, 이러한 과정에서 ‘폭행 또는 협박’에 의한 경우는 가중처벌 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최근 일련의 성차별적인 편파수사 의혹, 또 ‘위력에 의한 성범죄’ 무죄 판결 등에 따라 이어지고 있는 여성들의 요구는 결국 우리 사회 곳곳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남성 중심적 시각을 바꿔야 한다는 데 있어요. 그리고 그 시작은 바로 입법 및 집행 양면에서 철저하게 가해자의 시각만을 반영하고 있는 성범죄 관련 제도를 개선하는 데 있다고 봅니다.”

신 의원님은 최근 ‘노 민즈 노 법안‘의 조속 처리를 주장하면서 국회에 계류된 성폭력 처벌 강화 법안을 빨리 처리하도록 촉구하기도 했다. “국회에 현재 계류되어 있는 미투 관련 법안이 130여개가 넘습니다. 하지만 하반기 상임위 구성 등 여러 이유로 다수의 상임위가 관련 논의와 의결을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에요.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달 22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들과 함께 산적해있는 ‘미투’ 법안을 조속히 심사하도록 촉구했습니다.

사안의 심각성을 인식하며 여야 구분 없이 초당적으로 미투 법안을 논의해야 하는 전 상임위에 이와 같은 입장을 전했어요. 이어, 여가위에서는 미투 관련 법안을 신속히 상정하는 등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미투와 관련된 법안을 논의해야 하는 다른 상임위들에서도 조속히 논의가 이루어지고 관련 법안들이 의결되어 더 이상 권력형 성범죄로 고통 받는 피해자가 없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신 의원은 지난 7월 여권통문 선언일인 9월 1일을 여권통문의 날로 정하고 이후 1주간을 여성인권주간으로 정해 기념하도록 하는 취지의 양성평등기본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또 이를 기념하는 행사도 개최하는 등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인권선언문을 재조명하는 데도 앞장서고 있다.

“1898년 9월 1일, 서울 북촌 여성들이 주축이 되고 300여명의 여성들이 찬동해 우리나라의 최초 여성인권선언문인 ‘여권통문(女權通文)’은 여성의 참정권(정치권), 노동권(직업권), 교육권 등 크게 3가지 권리에 대한 주장을 담고 있습니다.

이는 세계여성의 날이 촉발된 1908년 미국 여성 노동자들의 시위보다 10년이나 앞서고 있어요. 올해 9월 1일 국회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인권선언인 여권통문 발표 120주년을 맞아 뜻 깊은 행사를 주최할 수 있어 그 의미가 깊었습니다. 여권통문이 우리나라 여성인권운동의 시작점이라는 큰 의미가 있는 데도 대다수의 국민들이 잘 몰라 아쉬움이 많았는데 이번 기념식이 여권통문에 대한 관심을 높여주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김희정 기자  penmoim@wsobi.com

<저작권자 © 여성소비자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희정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