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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의 ‘1984’ 빅브라더 망령, 숨겨진 욕망
강창원 건국대학교 명예교수 | 승인 2018.08.22 14:40

[여성소비자신문]전 세계가 뜬금없이 전체주의 ‘빅브라더(Big Brother)’ 망령의 등장에 깜짝 놀라고 있다. 북한, 러시아, 중국, 미국에 이어 우리나라 문재인 정부에도 빅브라더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기 때문이다.

50여 년 전 내가 대학입학을 전후하여 감명 깊게 읽었던 조지 오웰의 ‘1984’ 소설이 지난해부터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고 한다. 조지 오웰이 1940년대에 파시즘, 공산주의 등 전체주의를 혐오해서 쓴 소설이다.

‘1984’속의 빅브라더가 지배하는 전체주의 국가 오세아니아는 영락없는 북한 공산 독제정권이었다. 유토피아(utopia) 사회라는 달콤한 속임수에 현혹되어 정신 못차리다가 납북되어버린 기억에도 없는 아버지를 생각하며 감명 깊게 읽었던 소설이다.

대학에 입학해서는 거의 날마다 ‘독재자 박정희 대통령 타도’를 외치며 반정부 데모에 참여했던 시절이 있었다. 반정부 데모를 주도했기에 감시 속에 살아가는 나는 마치 1984의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라는 착각에 빠졌다.

그러한 혼란을 틈타 공산주의, 사회주의 이념의 운동권 학생들이 내게도 다가왔다. 민주와 민중을 강조하던 운동권들 역시 빅브라더의 추종자 ‘오브라이언’과 다를 바 없음을 깨닫고 이들을 멀리하기 위해 육군에 지원 입대하였다.

3년의 군대 생활은 나에게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커다란 성찰의 시간이었다. 이념으로 포장된 권력투쟁은 한갓 ‘숨겨진 욕망’ 실현을 집단으로 표출하는 것이라는 나 나름의 생각이 정리되자 복학 후에는 학업에만 전념하여 미국 유학의 길을 떠났다. 1984의 윈스턴이 사상이 개조되어 빅브라더를 사랑하게 되는 잘못된 길을 가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그런데 그간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1984 빅브라더’의 망령이 50년 만에 되살아나고 있음에 퍽 당황스럽고 언짢다. 2017년 1월 하순 미국 트럼프(D.Trump) 대통령의 취임식 이후 미국은 물론 서구의 공중매체들이 빅브라더가 출현했다고 그를 비꼬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취임식에 참석한 인파 수가 전임 오바마(B.Obama) 대통령 취임식 때보다 더 많았다고 자신의 인기를 치켜세웠다. 그러자 그를 달갑지 않게 여기던 공중매체들이 오바마 대통령 취임식 사진을 공개하며 트럼프 대통령의 거짓을 지적하였다.

권력 집단인 트럼프 참모들은 잘못을 시인하기는커녕 참모인 콘웨이(K.Conway)를 시켜 거짓정보를 ‘대안적 사실(alternative facts)’이라는 뜻도 애매모호한 신조어를 사용하며 거짓을 진실처럼 믿게 하려 했다.

‘1984 빅브라더’가 개인의 사상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신조어를 등장시키는 것과 너무 유사하였다. 그 후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에게 불리한 정보나 보도가 전해질라치면 이를 전하는 기자나 언론사를 향하여 “역겨운 가짜뉴스(fake news)”를 퍼뜨린다며 “언론은 국민의 적”이라고 공격을 해대고 있다.

그러자 미국의 350여 개의 신문사들이 ‘반(反)트럼프 사설연대’로써 트럼프 대통령의 빅브라더식 정치 행태에 맞서고, 미국의회도 언론자유에 대한 지지 결의안을 채택했다.

1984의 주인공 윈스턴이 살고 있는 오세아니아는 빅브라더를 무조건 숭배해야 하는 완벽한 전체주의 국가이다. 그 땅의 모든 사람들은 ‘진리부’에서 관리하는 텔레스크린이라는 통제시스템에 의해서 철저히 감시당하고 조작된 정보로 세뇌당하였다. 배신자는 소리 없이 증발(기록도 실체도 모두 사라짐)한다. 이 정권의 끔찍스러운 슬로건,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이 마치 북한 정권과 같다.

그런데 ‘칭찬 독점욕’에 사로잡힌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빅브라더 김정은을 한번 만나고 나서는 같이 찍은 사진을 집무실에 걸어놓고 절친처럼 자랑하는 것으로 자신이 세계 평화를 이룩하였다는 ‘대안 사실’을 과시하고 있다.

또 하나의 빅브라더식 통치행태로는 중국 시진핑 주석도 있다. 개인 휴대폰까지 검열해가며 14억 인구의 개인 생활을 감시한다는 신문 보도는 1984의 오세아니아 국가의 망령을 보는 것 같다.

그런데 더욱 안타까운 것은 빅브라더의 망령이 그토록 평화를 외쳐대는 우리나라 문재인 정부에서도 되살아나고 있다.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으로 절대왕정 북한의 3대 폭군 김정은을 평화의 사도로 등장시키고 그의 원맨쇼를 감격해 하는 집권 여당 모습은 영락없는 21세기 ‘1984’ 오세아니아 망령이다.

경제적 실패로 국가 경제가 흔들리고 취임하자마자 ‘일자리 정부’라고 큰소리치던 정부에서 ‘일자리 파국’의 재난에도 모든 책임을 지난 정부의 실정 및 날씨와 인구구조 탓으로 돌리는 것은 그나마 애교이다.

파워블로거 ‘드루킹’은 여당의 집권을 위해 매크로(macro)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여론조작과 허위정보를 SNS를 통하여 내보냄으로써 이를 ‘대안 사실’로 포장하였다.

그 후 그들이 지지하는 집단이 권력 쟁취에 성공하자 자신들의 숨겨진 욕망을 채우려다 세상에 알려진 ‘드루킹 사건’은 자유민주국가에서는 참으로 가공할 만한 사건이다. 더구나 이들을 찾아내서 수사해야 할 경찰이 그 권력 집단에 아부하기 위해 사건을 무마하려다가 덜미를 잡혔다.
이 사건이 특검의 손에 넘어가자 드루킹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정의당 원내대표 노회찬 의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토록 불법 자금 수수를 부인해오다 더 이상 빠져나갈 방법이 없었는지 뇌물 수수를 시인하는 유서를 남기고 떠났다. 죽음 앞에서 관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도 드루킹의 숨겨진 욕망의 희생자라고 했다. 일신의 안녕과 세속적 성공보다는 약자를 위해 헌신한 정치인으로 아쉬워했다.

어떤 대학의 철학 교수는 유식한 표현으로 그의 이중적인 행동을 ‘비자발적 이차 욕구’에서 벌어진 일탈이라면서 그의 죽음을 변호했다. 그러나 그런 철학적 표현에 익숙지 않은 나 같은 서민은 그저 고인도 그의 ‘숨겨진 욕망의 희생자’라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욕구와 욕망은 다르다. 식욕과 같은 인간의 욕구는 충족이 가능하지만 욕망은 실현된다고 해서 충족되는 게 아니다. 욕망은 더 큰 욕망을 불러오기에 욕망은 끝이 없으며 나의 욕망은 다른 사람의 욕망과도 같기 때문에 욕망은 갈등과 투쟁을 불러온다.

그러기에 인간의 평화를 위해서는 욕망을 억제하기 위한 도덕, 윤리, 법, 제도, 종교가 필요하다. 무서운 것은 같은 욕망을 지닌 개인이 집단화하여 욕망을 숨기고 불리한 제약이나 규제를 무력화시키거나 회피해 나가는 것이다.

욕망의 정점에 서있는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등장한 파시즘이나 공산주의 즉 전체주의가 대표적이다. 남북 분열이라는 민족적 비극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권력을 잡은 북한은 물론 대한민국 대통령들의 망명, 피살, 자살, 투옥 등 비극적 말로 또한 권력 집단의 숨은 욕망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라도 전체주의 권력에 버금가는 우리나라 대통령제를 권력 분산형으로 제도적 수정 즉 헌법 개정을 하는 것이 ‘1984 빅브라더’의 망령을 벗어나 불행한 대통령이 되는 것을 막고 자유민주국가로 진일보하는 길이라 여겨진다.

강창원 건국대학교 명예교수  kkuckang@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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