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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옥 E컨슈머 회장 "40년 소비자운동 3E 컨슈머 운동으로 이어간다"
한지안 기자 | 승인 2018.04.20 15:11
사진=여성소비자신문

[여성소비자신문 한지안 기자]한국 소비자 운동의 배경엔 ‘소비자의 권리와 이에 대한 보호’라는 개념이 생기기도 전에 이미 소비자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던 이가 있다. 바로 소비자단체 E컨슈머의 김재옥 회장이다.

김재옥 회장은 서울YWCA사회문제부 및 소비자보호위원회 활동을 시작으로 소비자시민모임 창림멤버로서 사무총장, 회장을 거치며 소시모를 국내외적으로 영향력있는 단체로 발전시키는데 기여하고 한국소비자원동의 역사를 이뤄왔다.

소시모 국제회장, 국제소비자기구 부회장, 그린스타트 상임공동대표와 에너지시민연대, 기후변화센터 공동대표, 자원순환연대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40년간 한결 같이 소비자운동에 전력한 그의 발걸음을 어떻게 시작됐을까. <여성소비자신문>이 김 회장을 만났다.

김재옥 회장은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중과 여화여고, 이화여대 사회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소비자운동으로의 첫걸음은 1969년 대학 졸업과 함께 시작됐다. ‘여성이 대학에 간다는 것 자체가 사회로부터 특혜를 받은 것’이던 시절이다.

이화여자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한 그에게 NGO 활동을 권한 건 ‘한국 여성 운동의 대모’로 불리는 이효재 교수다. 이 교수는 졸업을 앞둔 김 회장에게 “가정에 묻히지 말고 사회활동을 했으면 좋겠다. 사회로부터 받은 특혜를 사회에 돌려줘라”며 졸업 후 YWCA에 들어갈 것을 권했다. 소비자 이슈에 대한 목소리가 처음으로 대두되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소비자 운동가로서의 시작

“1970년 초 서울 YWCA 사회문제부에 간사로 들어갔을 당시 새우젓을 담아 파는 드럼통의 위생 상태에 대한 문제를 해결해야 했어요. 소비자 문제 위원회에 사진을 들고 오는 등 제보를 많이 받았는데, 기술 부족으로 가장자리가 날카롭게 제작된 압력밥솥에 설거지하다가 손을 다쳤다는 유명 작가도 있었고, 설탕이나 분유를 넣는 커피 숟가락의 가장자리에 혀를 다쳤다는 사람도 있었죠. 소비자 문제에 대한 얘기가 시작되자 수많은 고발, 상담들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김 회장에 의하면 그의 활동 초기는 산업제품의 대량 생산이 처음 시작되면서 기술 부족으로 인한 피해가 일어나던 시절이다. 안전의 문제, 먹는 것의 문제 같은 소비자 문제들은 그때 처음 등장하기 시작했다. 사회학과 출신으로서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시민단체에 들어갔지만  막상 시민단체에서 소비자 이슈를 더 많이 경험하게 됐다.

김재옥 회장이 “안 되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여기서 부터였다. 그는 소비자들에게 좋은 물건을 사게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당시 상공부와 함께 좋은 상품 전시회를 열기도 하고 “이런 제품이 좋은 제품이니 불량을 사지 말라”는 캠페인을 벌였다. 또 어린이 만화의 선정성·폭력성 문제가 심각하다는 생각에 좋은 만화 전시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그 당시 자기 권리를 찾게 하는 소비자의 의식화 문제를 다루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기획재정부 물가 정책국장 등 관련 정책의 결정권자들에게 ‘왜 이런 정책들에 대해  소비자는 제외하고 생산자 위주로만 만들어졌느냐’ 하면서 일일이 따지고 개선을 요구하는 일을 하다 보니 결국 소비자운동의 길로 들어서게 됐어요.”

사진=여성소비자신문

‘소시모’ 설립과 국제 활동으로의 확장

김 회장은 YWCA에 소속되어 있었지만, 소비자 문제는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소비자 단체 또한 여성 단체의 부속기구로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여성과 남성, 각 분야의 모든 전문가들이 모여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1983년에 송보경 교수와 전문가 몇 분이 함께 ‘소비자시민모임’을 시작했어요.”

소시모를 창립하며 김재옥 회장은 국제적인 연계도 활발히 했다. 그는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을 ‘국제소비자기구(IOCU)’에서의 활동으로 꼽았다. 이는 전 세계 120개국 25개 단체가 소속된 비정부기구다. 김 회장은 2011년부터 5년 동안 이 기구의 부회장으로 역임했다. 소시모가 이 기구의 회원으로 가입하던 당시 전 세계의 이슈는 ‘제3 세계의 문제’였다. 김 회장은 국제소비자기구와의 인연을 설명하며 과거를 떠올렸다.

1984년 그는 소시모 대표로서 국제소비자기구 방콕 총회에 참석했다. “당시는 여러 제약회사가 약품을 개발하면서 그 부작용이 일어나기 시작하던 때였어요.” 김 회장은 일부 제약회사에서 제조된 약품에는 복용 후 오른팔 아랫부분에 신경마비 증상이 나타나고, 휠체어에 앉게 되고, 그 후 출산한 여성들은 장애아를 낳게 되는 문제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당시만 해도 우리 정부는 해당 약물을 수입하면서도 아무런 규제나 제재를 가하지 않고 있었다.

“저는 이것이 전 세계적으로 심각한 문제라고 인식했지만, 정보가 빨라 문제의 의약품을 수입 금지 조치하는 등 일찍 대처할 수 있었던 미국, 유럽, 러시아 등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보건복지부가 국내에서 유통되던 의약품만으로도 족하다고 생각했던 시절이었어요.

더군다나 UN에도 가입되어있지 않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정보가 완전히 차단되어 있었죠. 담당자들은 외국에서 어떤 의약품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도 알지 못했고, 관료들은 약품 지식이, 전문가들은 의식이 없었어요. 제약회사들은 선진국에 약을 수출할 수 없게 되자 그 약을 제3 세계에 팔면서도도 그 부작용을 설명하지 않았어요.”

김 회장이 이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얻은 건 방콕총회에서다. 당시 국제소비자기구의 회장을 맡고 있던 안와 파잘 회장은 한국에서 온 김 회장과 일행들을 눈여겨보고 일반인이 접하기 힘든 자료였던 유엔 통합자료를 연구하라고 건넸다.

두꺼운 책에 각국이 금지, 회수, 제한하고 있는 위해 한 화학물질, 의약품 성분, 농약 성분 등이 정리되어 있었다. ‘어떤 물질에 발암 성분이 포함됐고 어느 국가가 그것을 금지하거나 규제하는지’를 기록한 수백 장의 리스트였다.

그는 소시모의 동료들과 그 책을 보면서 수차례 국내 시장을 조사했다. 다른 나라에서 사용을 금지하던 18종과 규제하던 16종의 화학 원료가 총 150개 회사의 약 450개 약품으로 제조, 판매되고 있었다.

김 회장은 이 같은 조사결과를 당시 보건사회부의 이헌기 차관에게 전달했다. 그 결과 18종의 위해 의약품 원료가 국내에서 사용 금지 처분이 내려졌다.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을 국제적인 연계 속에서 활동한 첫 번째 사례로 꼽는다. “전문가들의 영역이라며 소비자 이슈임에도 소비자는 다가서지 못했던 분야의 문제를 처음으로 찾아냈다”는 것이다.

개발도상국가 소비자운동의 본이 되길 바래

“업적이라고 한다면, 여러 정보를 가지고 우리나라의 소비자들이 안전하고 좋은 상품을 구입해서 먹고 쓰고 하게 한 것이었습니다. 의미 있는 일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김 회장은 ISO(국제표준화기구)의 소비자 정책위원회 의장을 역임했다. 그가 2006년에서 2008년까지 의장을 맡은 동안의 참여국은 102개국에 달했다. 그는 임기 동안 전 세계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각종 표준을 결정하는 작업을 했다. 가장 의미있게 생각되는 것은 이 기간 동안 제3세계 국민들이 국제기구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이끌어냈다는 점이다.

“당시 소비자 정책위원회를 주도하는 것은 미국, 캐나다, 유럽 등 선진국이었어요. 제3세계는 그야말로 아무도 없었죠. 제3세계 출신으로 의장이 된 게 제가 처음이에요. 이렇게 해서는 제3세계의 목소리를 반영할 수 없다는 생각에 제가 ISO 산하 위원회들의 위원장을 선진국에서 한 명, 제3세계에서 한 명씩 뽑자고 건의했어요. 개발도상국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게 하는 일을 한 것이 가장 보람입니다.”

그는 2002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유엔 ‘지속가능한발전위원회’ 회의에 NGO 실행이사회 아시아 대표로 참석해 NGO 회의를 주관하고 주최했다.

우리나라의 소비자 보호를 위해서는 ‘금융소비자 보호’ 관련으로 G20 정상회의를 설득했고, 팔당 상수원에 보호구역이 지정되게 만들었다. 국내에 밀과 바나나 등이 처음 수입되기 시작했을 당시 식품에 농약이 남아 있음을 밝혀 국내 최초로 잔류농약의 기준을 만들었고, 체르노빌 방사능으로 오염된 식품을 찾아내기도 했다. 그는 지난 40년을 소비자의 생명을 보호하려 했던 세월이라고 말했다.

시장을 바꿔야 생명이 산다

김 회장은 소비자시민모임을 공동 창설한 송보경 교수와 함께 2014년 책을 발간했다. ‘시장을 바꿔야 생명이 산다’다. 소비자들의 생명을 보호하려고 애쓰는 동안 일어났던 여러 가지 일 중 가장 중요한 사건들을 이 책에 담았다. 소비자 운동 40년을 돌아보는 회고록인 셈. 그는 “외국에서 책을 보내달라는 얘기가 많다”고 설명한다.

“개발도상국의 소비자운동은 과거 우리가 진행했던 것과 굉장히 비슷해요. 우리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 알리는 게 의미가 있겠다 싶어 번역과 에디팅을 거쳐 책을 출간했어요. 아시아에서는 25개국의 소비자 운동가들에게 보냈고 유럽, 아프리카, 남미 등지에도 필요로 하는 곳에 보냈어요. 아시아 여러 저 개발 국가들이 성장 중에 일어나는 문제들을 우리 사례를 보며 규제하고 정책을 만들 수 있어요.”

그는 며칠 전 책이 스위스 모 대학의 대학원 도서관 안에도 비치됐다는 소식을 받았다. 김 회장의 설명에 따르면 ‘전 세계 도서관에 비치해야 하는 책 리스트’에 등재된 책들만 입성할 수 있는 곳이다. 김 회장은 이에 “참 영광입니다. 전 세계에서 소비자 운동에 대해 검색하면 이 책이 나온다는 뜻이죠.”라고 전했다.

지난해 11월 한국기후환경 네트워크 대표의 임기를 마친 김 회장은 현재 본래의 단체인 ‘E컨슈머’에서 활동 중이다. E는 에틱(ethic), 에너지(energy), 이팅(eating)등 그가 소비자 활동의 주요 가치라고 생각하는 바를 담은 이름이다.

김 회장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지금 현재도 중요하지만 미래의 자손들과 관련된 일들, 기존의 소비자 단체들이 손대지 못하고 있는 일들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품의) 안전성은 이제 누구나 얘기하지만, 석유등 에너지와 환경, 윤리, 국제적인 식품 문제를 다루고 있는 단체가 없어요. 저는 이것이 미래의 우리 자손들을 위한 활동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소비자운동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제는 한국전문가들이 외국 단체의 멘토가 되어 지식을 나눠야 한다는 것. 그는 “우리가 도움을 받던 당시 이 경험을 제 3세계와 나누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 약속을 지키고 싶습니다.”라고 덧붙였다.

 

한지안 기자  hann9239@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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