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여 년 간 여성폭력을 추방하기 위한 여러 움직임들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특히 지난 1980년대 이후 여성인권운동단체의 피해자 지원 활동에서 시작된 반여성폭력운동은 성폭력특별법과 가정폭력방지법 등 관련 법 제도 마련의 기반이 되기도 했다.

전국에 450개소의 성·가정폭력상담소와 보호시설, 원스탑지원센터 등이 생겨나고 정부와 국회에서도 앞 다퉈 새로운 법과 정책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과거와 달리 현재의 여성들은 여성폭력에 대해 대처하는 자세가 많이 달라졌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젠더 관점에서 반여성폭력 정책을 재구성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이유다.

신고해도 처벌 안돼

처음 가정폭력 관련법이 시행되던 1998년에는 많은 언론에서 경찰을 비롯한 공권력의 개입이 가정을 파괴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그러나 현재에 이르기까지 가정폭력 문제의 가장 핵심은 ‘처벌되지 않는다’는데 있다.

지난 2009년 검찰의 가정폭력 사건 처리를 살펴보면 전체 처리된 사건 중 불기소 처리가 50%에 달한다. 또, 가정보호사건으로 송치되는 경우가 약 38%인 반면, 기소되는 경우는 10%에 머물러 있다.

검찰에서 법원으로 송치된 가정폭력 역시 불처분이 전체의 30%를 차지한다. 대부분의 가정폭력 사건이 경찰, 검찰, 법원의 단계를 거치면서 가벼운 처분으로 끝나거나 아무 조치도 받지 않고 있는 것이다.

또한 지난 2007년 여성가족부에서 전국의 1000여 가구를 대상으로 실시한 ‘2007 전국 가정폭력 실태조사’에 의하면 가정폭력 발생률은 50.4%로 나타났다. 이는 2가구 중 1가구에서 가정폭력이 발생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가정폭력 내용으로는 정서적 폭력이 46.2%로 가장 높았으며 신체적 폭력 30.7%, 방임 16%, 성학대 9.6%, 경제적 폭력 3.5% 순이다.

성폭력도 비슷한 실정이다. 우리나라는 대부분의 피해자들이 피해 사실을 드러내지 않고 있기 때문에 연간 몇 건의 성폭력이 발생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이에 대해 여가부는 지난 2010년 연구결과를 통해 전체 성폭력 신고율이 7.6%, 강간과 강간미수의 경우는 12.3%로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신고된 건수만을 대상으로 한 통계이am로 실제 발생률은 훨씬 더 높음을 알 수 있다.

성폭력 기소율 역시 지난 2008년부터 지금까지 43%선에 머물고 있는데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성폭력 피해의 판단기준에서 피해자의 경험이 제대로 고려되지 못하는데 기인한다고 말했다.

법 안에서 외면당하는 여성폭력

가정폭력 관련법은 ‘가정폭력방지법’이라는 명칭으로 한국여성의전화를 비롯한 여성운동단체들이 지난 1994년 유엔이 정한 세계가족의 해에 제정운동을 시작했으며, 1997년 12월 ‘가정폭력 범죄 처벌에 관한 특례법’과 ‘가정폭력방지 및 피해자 보호에 관한 법률’로 나눠 제정됐다.

그러나 가정폭력방지법 제정 15년을 맞은 현재, 가정폭력에 대한 경찰과 검찰, 법원의 태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최근에는 가정폭력 사건과 관련해 경찰의 미온적 대응에 대한 문제제기와 끔찍한 가정폭력 사건이 연일 언론에 보도되면서 가정폭력 사건에 대한 경찰의 권한이 강화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경찰의 권한 강화가 즉각적인 가정폭력에 대한 적극적 대응으로 이어질 것이라 기대하는 현장 전문가들은 거의 없다. 현재 강화된 권한은 이미 시행이 가능했던 조치들이며, 경찰 스스로 자신들의 직무유기 상황을 드러내고 있는 것뿐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생각이다.

국내 성폭력 피해자 권리와 연관된 법과 제도는 헌법, 형법, 형사소송법,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등 다양하게 마련돼 있다. 지난 20년 동안 여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상담소나 보호시설 등의 인프라도 괄목할만한 변화를 이뤘다.

가정폭력은 240개 상담소에서 12만여 건의 상담을 받고 있으며 가정폭력 피해자 보호시설은 전국 65개소가 운영되고 있다. 이외에도 중장기 쉼터 4개소, 주거지원사업 11개소, 가족 쉼터 8개소가 운영 중이다.

1994년 한 곳에 불과했던 성폭력 상담소와 보호시설은 현재 전국적으로 200여개로 늘어났으며, 해바라기 아동센터와 원스톱 지원센터 등으로 보다 세분화됐다.

개인적인 문제 아닌 사회적 문제

가정폭력 문제의 해결에 앞서 가장 큰 문제는 가정폭력을 개인적인 문제로 여기고 있다는 점이다. 가정폭력 사건이 처벌되지 않는 이유와 가정폭력 피해자에 대한 의료지원을 가해자에게 구상해야 한다는 발상 역시 가정폭력을 사적인 문제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여성에 대한 폭력은 폭력 발생의 장소와 상관없이, 폭력의 양태와 상관없이, 폭력의 가해자 피해자의 관계와 상관없이 성차별적인 사회구조로부터 발생하는 젠더 폭력이며 그 본질은 힘과 통제에 있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가정폭력’이라는 용어가 성중립적이며 가정폭력 최대의 피해자인 여성을 드러내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일고 있다. 또한 ‘성폭력 유발론’에 의한 피해자 의심과 비난은 2차적인 피해를 일으켜 때로는 1차적인 피해보다 더한 고통을 주기도 한다.

과거 성추행을 당한 경험이 있는 이모(26)씨는 “당시(고등학교 재학 중)에는 너무 놀라 소리도 지르지 못했다. 정신을 차린 뒤 근처 지구대를 찾아갔는데 짧았던 교복치마를 문제로 삼았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이 씨와 같은 사례는 많은 여성들이 경험한 바 있다.

이에 전문가들은 “여성폭력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사회구성원 모두의 노력과 헌신이 요구된다”며 “특별히 여성폭력 근절을 위한 민간단체와 정부의 평등하고 일상적인 협력체계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처벌되지 않는 가정폭력과 전문성이 결여된 성폭력 담당자 문제, 인권감수성의 확보 등을 막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여성폭력 피해생존자의 보호와 지원 중심이었던 기존의 법과 정책을 이제는 피해자의 권리보장과 역량강화, 사회문화적 인식의 변화로 초점을 맞춰야 할 때다.

정효정 기자  hj@wsob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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