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소비자신문]미투운동은 잊혀진 여성 역사의 복원 과정

#MeToo, 이건 미국에서 수입된 새로운 운동일까? 미투운동의 이름은 분명 헐리우드 유명 배우들의 선언에서 “영어 그대로” 사용되는 것은 분명히 맞지만, 한국의 미투는 이미 이전에 많은 여성들로 현현하였다.

일례로 경향신문에서 최근 기획한 #미투100년사, #여성들_말하다는 지난 한 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여성에 대한 억압과 폭력으로 점철된 “세상을 고발한 여성들”이 한국의 역사 면면히 존재해왔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러나 여성의 목소리는 항상 있었으나, 남성에 의해 지배되고 서술된 역사에서 여성은 곧잘 지워지고 잊혀졌으며, 하기에 여성운동은 그녀들을 복원하는 작업을 항상 병행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사회에 지금 폭발적인 에너지로 사회변혁의 지각 변동을 일구고 있는 미투운동은 이 에너지를 발생시키는 심층구조에 대한 이해를 요구한다. 한국의 미투운동은 켜켜이 쌓아올려진 분노의 탑이 한국의 남성지배의 지형을 뚫고 올라오며, 지금까지 축적된 여성운동의 지반을 끌어올려 만들어진 분지와 같다.

미투운동은 증언의 정치이자 연대의 거대한 물결
 
2018년 3월 22일 오전 9시 22분부터 시작된 2018분간의 이어말하기는 여성이 “기억”하는 성성차별·성폭력의 증언이었다. 가해자의 다수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피해자는 그 일이 벌어진 장소와 그 사건 현장을 감싸는 공기와 색감도 구체적으로 기억한다.

하기에 정봉주 전 의원의 성추행 사건을 증언한 피해자를 미국 SLG APC 법무법인 대표 변호사이자 공인회계사인 서권천 변호사는 “천재”라고 비꼬았으나, 그것은 지금까지 역사의 피해 증언자들을 모독한 말과 다름없다.

미투운동의 가해자로 지목된 안태근, 이윤택, 조재현, 김기덕, 안희정 등의 성폭력을 폭로하는 증언자들은 폭로 이후 자신들에게 돌아올 2차 가해의 두려움을 무릅쓰고, 개별화된 고통의 기억을 나눔으로써 타인의 고통과 연결한다.

미투운동은 본질적으로 위드유의 정신이며, 이는 집단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여성의 피해와 고통에 대한 기억의 증언이다. 장자연을 비롯한 수많은 성폭력의 피해에서 목숨을 잃은 여성들, 남성에 의해 살해당한 여성들, 그리고 위안부 여성은 대한민국 여성의 세포에 각인된 고통이다.

민주주의는 증언의 기록으로 발전되어 왔다. 하기에 문재인 대통령 헌법개정안의 전문에는 부마항쟁과 5・18 광주민주화운동, 6・10 항쟁이 담겨져 있으며, 이것이 촛불혁명과 그를 통해 탄생한 민주 정권의 지반이자 정통성을 확인하는 것이다. 미투운동의 발화자들은 지금까지 개별 남성 독재의 그늘에서 개별화되고 파편화된 고통의 기억을 꺼내 서로를 확인하고, 이 독재의 시간을 끝내자고 연대하는 강력한 움직임이다.

“미투에 성평등 개헌으로 응답하라” 

미투운동의 여러 주장 중 하나는 “미투에 성평등 개헌으로 응답하라”는 것이다. 내가 소속한 단체를 비롯해 다양한 여성단체는 정부 수립 70년, 제헌 70년을 맞이하는 2018년의 10차 개헌은 성평등의 가치와 원칙이 담겨야 한다고 줄곧 주장해왔다.

여성에 대한 폭력은 여성의 권력으로 무력화시켜야 한다. 가해자를 처벌하고 피해자를 보호하는 것은 단순히 성폭력특별법으로만 이루어질 수 없다.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주체가 될 때  성희롱과 성추행이 관용되는 사회문화를 바꿀 수 있다. 그를 위해 성평등 개헌의 핵심은 여성과 남성의 동등한 정치 참여를 헌법에 담는 것이다.

이러한 발상은 2018년에 새롭게 주장되는 것이 아니다. 1948년 제헌의회가 꾸려지기 이전부터, 1963년 제3공화국이 건설되기 전, 1980년, 1987년 헌법 개정이 이루어질 때 여성은 여성의 대표성을 보장할 수 있는 헌법의 명문화를 주장해왔다. 그러나 헌법의 작성하는 입법자들은 이를 번번이 무시해왔다. 그리고 2018년 문재인 대통령의 개헌안에도 이는 철저히 외면당했다.

지난 3월 19일 보수와 진보의 정파를 아우르는 범여성계는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을 해소하고 실질적 평등을 실현하기 위하여 적극적 조치를 실행하여야 하며, 선출직 임명직의 공직 진출에서 여성과 남성의 동등한 참여권을 보장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을 청와대 앞 기자회견을 통해 전달한 바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개헌안은 여성에 대한 배반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 헌법 개정안에는 여성계의 최소한의 주장도 담기지 않았다. 대신 ‘국가는 성별 또는 장애 등으로 인한 차별상태를 시정하고 실질적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11조 2항으로 대체했다.

이에 대해 3월 23일 진성준 청와대 정무기획비서관은 대통령 개헌안에 대한 설명에서 “선출직이나 임명직 등 공직진출에서 여성과 남성의 동등한 참여”를 헌법에 명시하지 않는 것에 대해 “헌법은 가급적 간결해야 한다는 원칙 때문”이며, “차별상태를 실질적 평등을 넣는 것으로도 공직 진출에서의 여성과 남성의 동등한 참여를 포괄할 수 있는 개념이라며 구태여 따로 열거할 필요가 없다”고 밝히며, 여성계의 “양해”를 구했다.

1948년 제헌헌법을 제정하기 위한 과도입법의원들 중 4명의 의회에서 여성의원은 1/4의 의석을 여성에게 특별 지정하는 것을 조문화할 것을 요구하였고, 조선일보 1947년 5월 14일자에 따르면 법제사법위원회의 수정안에는 총 의석 266석 중 22석 이상(8%)의 특별조례가 들어가 있었다. 그러나 남성의원들은 "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조건에서 경쟁해야 한다", "한국여성도 외국여성이 과거에 했던 것과 같이 정계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투쟁해서 승리해야 할 것"이라는 주장을 했고, 결국 여성의석 22석 특별조례는 통과되지 못했다.

제헌의회부터 여성할당제가 실시된 이웃나라 대만은 지금은 여성의원 비율이 38%에 달하고, 여성과 남성의 동등한 정치 참여가 상식적 규범이자 사회적 문화로 자리잡았다. 여성의원이 17%에 불과하면서도 여전히 여성의 정치참여에 대해 회의적인 한국의 문화는 그와 대조적이며, 이는 제헌헌법 제정 과정에서 보인 반동적인 남성의 태도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여성에게 권력을!

그리고 다시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남성 기득권 정치인들은 여성에게 양해를 해달라고 주장한다. 양해를 부탁하는 2018년의 모양새와 여성에게 남성과 동등하게 경쟁하라, 투쟁하라고 오히려 여성을 윽박지른 1947년의 상황은 얼마나 다른 모양새인가?

10차 개헌의 전반적인 과정에서 여성의 비율은 10%에도 미치지 못했다. 미투운동의 효과 중 하나로 펜스 룰(Pence Rule)이 도입되어 여성과 동석하는 것을 거부하는 행태가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여성은 정치의 펜스(fence) 밖에 예외상태로 존재한다.

베스트셀러가 된 '82년생 김지영'』을 읽은 62년생 김지영과 72년생 김지영은 말한다, 자신의 삶과 달라진 게 전혀 없다고. 적어도 18년생 김지영은 다른 삶을 살 수 있도록, 10차 개헌은 여성과 남성이 권력을 분점하는 성평등 개헌이어야 한다. 성폭력과 성차별은 성평등 헌법으로 극복되어야 한다. 미투운동의 증언에 정치권이 응답할 수 있는 손쉽고 명료한 방법이 성평등 개헌이다. 성평등 없이 민주주의는 없다.

이진옥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  wopo@womanpower.or.kr

<저작권자 © 여성소비자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