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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MeToo)에 동수개헌으로 응답하라
김은주 한국여성정치연구소 소장 | 승인 2018.03.22 11:09

[여성소비자신문] #미투는 대변혁의 신호탄이다

2018년 1월 말 서지현 검사의 성추행 폭로로 시작된 #미투(MeToo)의 행렬은 문화계와 교육계, 법조계, 종교계를 넘어 정치권으로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미래권력의 정점에 있던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에 대한 미투는 권력형 성폭력의 전형을 드러냈으며, 이로 인해 6․13지방선거 출마자들에 대한 미투검증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누군가의 말처럼 관행처럼 자행되었던 성폭력이 관행이 아닌 범죄임을 폭로하는 절규의 목소리들이 사방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미투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한낱 성폭행범에 불과했던 가해자를 존경했었다는 사실에  수치심과 모욕감으로 분노하고 또 알면서도 침묵하고 방관했던 미안함에 고개를 들지 못한다. 그러나 여전히 일부에선 피해자를 조롱하고 의도를 왜곡하는 2차 3차의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

#미투운동으로 인해 우리사회는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했던 가히 혁명에 가까운 대변혁의 귀로에 서있다.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은 유사 이래 가장 뿌리 깊은 인류의 적폐이지만 현재까지 질긴 생명력을 이어왔다. 정치경제사회문화 전 영역에 걸쳐 구축되어 있는 남성지배카르텔은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을 은폐하고 정당화하는 기제들로 작동해왔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투가 던진 의제는 단기간에 몇 개의 정책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장기적이고 총체적인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연일 이어지고 있는 #미투의 행렬을 보면서 우리사회가 이 정도였던가에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이 지경이 될 때까지 국민의 안전을 보호해야하는 정부와 우리의 법체계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를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여성에 대한 성폭행이 관행으로 여겨지도록 만든 것은 단지 법만을 탓할 문제는 아니다.

우리의 바람과는 달리 #미투를 지지한다는 #위드유(withyou)의 행렬만으로는 여성에 대한 폭력은 줄어들지 않는다. 남성 지배 카르텔을 와해시킬 수 있는 보다 근본적인 변혁이 요구된다.

#미투는 권력의 문제다

#미투의 본질은 권력의 문제이다.

성폭력은 강자와 약자의 문제, 즉 남성 지배 사회에서 권력을 가진 남성에 의해서 무권력의 여성들에게 가해진 억압과 차별의 결과이다.

차별은 폭력을 정당화한다. 차별받는 사람들은 그들의 권리나 능력과는 무관하게 열등성을 부여받게 되어 무가치한 존재로 열등한 존재로 치부된다. 그래서 차별받는 사람들은 멸시받아도 되는 존재 더 나아가 폭력의 대상이 되어도 되는 존재로 전락하게 된다.

남성 지배 사회에서 남성들은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우월감이 학습된 반면 여성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열등한 존재로 취급되었다. 이러한 사회구조와 문화 속에서 여성들을 희롱하고 추행하고 폭행하는 일들이 남성들에 의해‘관행’처럼 자행되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미투를 통한 증언들은 성폭력은 일탈적인 개인의 변태적인 행위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과 남성간의 불평등한 권력관계에서 비롯된 문제임을 폭로하고 있는 것이다.

인구의 절반, 시민의 절반, 국민의 절반이 여성이지만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영역에서 힘이 있는 자리, 권력의 핵심에는 여성이 없다. 권력의 피라미드 어디에도, 최하위 단위에서부터 최고위 단위에 이르기 까지 여성의 존재는 드러나지 않는다. 국민의 대표들이 모여 있는 국회에도 여성들은 17%에 불과하다.

의회권력의 83%를 남성들이 장악하고 있다. 문제는 여성의 과소대표성이 아니라 남성의 과잉대표성이다. #미투에 대한 응답은 바로 여성과 남성간의 불평등한 권력관계를 해소하는 데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평등한’ 자유를 위한 길, 동수

모든 인간은 타인과 동등한 존엄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평등하고 인간은 누구나 권리와 자유를 차별 없이 동등하게 향유해야 한다는 점에서 평등하다. 즉 모든 인간은 차별 없이 동등하게 존중받고 대우받아야 한다.

그러나 불평등한 권력이 작동하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자유의 확장은 특정계층이나 특정개인만의 자유와 권리의 확장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오늘의 #미투의 절규는 이런 기울어진 운동장의 전복을 요구한다. 불평등을 야기하는 사회 구조와 문화를 혁신하여 모든 구성원들이 진실로 ‘평등한’ 자유를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헌법은 모든 개인의 평등을 보장하고 있다. 헌법 제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헌법 제11조 “모든 국민은 법 앞에서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헌법 제37조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가 그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조항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은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받고 폭력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 이유는 이러한 조항만으로는 여성과 남성이라는 생물학적인 성차가 사회구조적인 성차별과 성불평등으로 전환된 구조와 권력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최고규범으로 헌법이 사회구조적인 성차별과 성불평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법 앞의 평등이라는 형식적 평등을 넘어 권력에 있어서 실질적 평등을 실현할 수 있는 새로운 규범인 ‘동수(parity)’대표성을 보장해야 한다.

동수개헌이 답이다

#미투운동을 통해 성폭력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권력과 구조에서 남성지배의 문제임이 적나라하게 폭로되었다. 문제해결의 첫 걸음이 여성과 남성에게 동등한 권력을 보장하는 일에서 시작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여성과 남성의 권력공유를 통하여 기울어진 운동장의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 헌법은 최고 법으로써 국가의 통치구조와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근본규범이다. 1987년 이후 30년 만에 제10차 헌법 개정이 진행되고 있다.

헌법은 전통으로서 물려줘야 할 화석화된 유산이 아니라 시대변화에 맞게 그리고 미래를 향하여 끊임없이 갱신되어야 한다.

#미투를 통해 드러난 가부장적인 적폐를 청산하기 위해서는 선출직・임명직 등 공직 진출에서의 남녀의 동등한 참여를 보장하는 국가의 책무가 규정되어야 한다. 대의민주주의체제하에서 여성은 주권적 시민의 성별 이원성에 기초하여 남성과 동등하게 대표되어야 할 권리를 가진다.

더 나아가 남녀동수는 성차와 교차하는 인종, 종교, 계급 등 많은 사회적 관계들을 대표하여 권력에 있어서 성별간의 평등만이 아니라 사회적 다양성을 실현할 수 있는 최적의 대안이다.

남녀동수는 민주주의의 공평한 대표성 실현과 더불어 대한민국 헌법 제1조의 진정한 국민주권을 실현하는 길이다. 진정한 국민주권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선언에서 그쳐서는 안되며, 주권을 가진 남녀국민들이 동등하게 대표자가 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공적 생활 등 모든 영역에서 여성의 등등한 참여가 없는 민주주의는 완전한 민주주의일 수 없다. 동수개헌은 #미투운동에 대한 응답이자 더 좋은 민주주의, 더 자유로운 민주주의로 나아가기 위한 시작이다.

김은주 한국여성정치연구소 소장  ejkim668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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