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소비자신문]“수업하는 동안 안 받았더니 문자가 100통은 온 거 같아요.”
교육이 끝나갈 무렵 미란씨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제가 집을 비우면 애가 이렇게 전화를 하고 문자를 한답니다. 제가 오늘 교육 있다고 말을 하고 왔는데도 그래요.”

미란씨의 딸 은서는 초등학교 4학년이다. 엄마보다 친구가 좋을 나이가 되었는데 은서는 늘 엄마를 찾는다고 했다. 겁이 많아서 혼자 집에 있지 못한다고 했다. 밤이 되면 불을 켜두어도 자기 방에 혼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미란씨의 부탁으로 상담실에서 은서를 만났다.    
“나는 엄마의 인생을 살고 있어요. 내가 내 인생을 사는 것 같지가 않아요.”
은서가 이렇게 말했다.

12살 아이의 입에서 나올 법한 말이 아니다. 엄마에게 매달리는 어린 아이 같을 것이라는 선입견과 달리 은서는 나이에 비해 성숙했다. 키도 크고  태도도 의젓했다.

은서는 자기 멋대로 행동하는 친구가 부럽다고 했다. 친구는 위아래 색깔이 안 맞는 촌스러운 옷을 입고, 옷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상한 머리핀을 하고 다닌다. 그런데도 당당한 그 아이가 왠지 멋있어 보이고 좋아 보인다고 했다.

한 번은 친구 집에 놀러갔다. 친구가 라면을 끓여먹자고 했다. 친구는 모든 일을 척척 해냈다. 친구가 너무 부러워서 집으로 돌아와 한참을 울었다.

“나는 엄마 인생을 사는데, 애들은 자기 인생을 사는 거잖아요. 나는 엄마가 머리를 묶어주고, 엄마가 주는 옷을 입고, 엄마가 다 해줘요. 나는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어요.”

이렇게 수준 높은 말을 하는 어른스러운 아이가 정작 무서워서 혼자 자기 방에 들어가지도 못한다. 불안해서 엄마의 곁을 벗어나지도 못한다. 밤이 되면 엄마에게 간지럼을 태워달라고 하면서 어린 아기 흉내를 낸다. 인형을 줄지어 세워놓고 엄마에게 아이 역할을 하라고 졸라댄다.

외향과는 달리 아이의 내면에는 불안한 어린아이가 자리하고 있다. 사고의 수준이나 학습의 수준이 떨어지지도 않는데 자기는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다고 말한다. 자존감이 낮다.

미란씨의 삶은 아이와 밀착되어 있었다. 늦게 낳은 딸을 잘 기르려고 열심을 다하고 있었다. 딸의 모든 일상이 궁금했다. 아이의 소소한 문제나 감정까지도 묻고 해결해주었다. 아이는 그럴수록 더 작은 일까지도 엄마에게 의존했다. 혼자 생각하고 판단하는데 두려움을 느꼈다.

엄마는 아이가 할 일을 모두 대신 해주었다. 실수하면서 배울 기회를 주지 않았다.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아이로 만들었다. 지나치게 보살펴서 아이가 자신을 믿을 수 없게 했다. 엄마에게 매달리고 세상으로 나가지 못하게 했다.

아이를 완벽하게 돌봐주는 것은 최선을 다해 아이를 꼭두각시로 만드는 것이다. 이런 유형의 엄마들은 대개 불안하다. 아이가 실패할까봐 엄마는 불안하다. 실수를 미리 막아준다. 대신 힘든 일을 처리해 준다. 엄마의 불안이 아이를 불안하게 한다. 아이는 엄마라는 안전지대에 갇힌다.

엄마를 벗어나 도전지대로 나아가야 하는데 아이는 두렵다. 엄마의 꼭두각시가 되는 길을 선택한다.

꼭두각시가 된 아이들은 열등감에 시달린다. 자존감이 낮다. 자신의 능력으로 무엇인가 이룬 경험이 없기에 스스로를 과소평가한다. 자신감이 없는 것이다.

많은 연구 결과에서 부모의 보호 아래 자란 아이는 끈기와 독립심, 자립심, 회복탄력성, 문제해결 능력 등에서 낮은 점수를 받는 것으로 나타난다. 또한 대인관계, 사회생활에도 어려움이 있으며 끊임없는 자극과 오락을 필요로 한다. 스트레스, 섭식장애, 과소비, 우울증 등에도 취약하다.

든든한 사랑과 애착으로 자녀를 돌보는 것 만큼 중요한 것은 분리와 독립을 돕는 것이다. 부모가 언제까지나 아이를 보호해 줄 수는 없다. 세상은 불공정하고 때로 위험하다. 자신의 삶을 개척해갈 수 있으려면 어려서부터 도전과 실패를 경험해야 한다. 개입하고 간섭하고 싶은 욕구를 누르고 아이의 독립을 응원해야 한다.

김진미 빅픽처가족연구소 대표  bigpicturefamail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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