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 2019.10.16 수 17:37
HOME 오피니언 칼럼
구명숙의 행복한 시 읽기 '할머니의 행커치프'
숙명여자대학교 국어국문과 명예교수 | 승인 2017.11.20 09:57

[여성소비자신문]할머니의 행커치프
            구 이람

할머니 옷소매 속에 숨어있던 하얀 손수건
한겨울 콧물 줄줄 흘리던 손녀딸
입가를 알뜰살뜰 닦아주시던 행커치프
잔칫집에 다녀오실 땐 꼭꼭 접어
밤, 대추, 알사탕 싸다 주시던 날렵한 핸드백

할머니 갈퀴손 잡고 시내 건너 마실 갈 때
우르르 쾅쾅 소낙비 쏟아지면
내 머리를 폭 덮어 펼쳐 주시던 하늘 우산

꼬부랑 고갯길 훠이훠이 넘으실 땐 땀수건
할머니는 그렇게 손수건 요술쟁이셨네   
오늘따라 할머니의 마술 손길이 포근포근
봄 아지랑이 꽃가지 피우며 하늘거리네

-시평-

요즘 젊은이들에게 할머니에 대한 추억은 어떤 것일까? 생각해 보며 이 시를 읽는다. 미당 서정주 시인, 그리고 나태주 시인도 외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시인이 되었다고 한다. 그 뿐 아니라 대개의 문학인들은 할머니의 옛날이야기를 깊숙이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옛날 우리 할머니들은 구수한 이야기보따리를 가지고 있었다. 밤마다 잠들 때까지 그 보따리를 풀었다 쌓으며 그날그날의 마음을 다독여 주고, 무한한 환상의 세계를 펼쳐주고, 통틀어 어린 시절 상상력을 키워 주셨다.

할머니의 손수건은 손자손녀에 대한 사랑이 가득 담긴 명품 핸드백이다. 할머니가 잔칫집에 초대되어 가면 극진히 어르신 대접을 받으신다. 할머니는 특별히 그 잔칫상에 놓인 밤, 대추, 곶감이나 과자를 드시지 않고 손수건에 싸서 손자손녀들에게 나눠주시는 것이다.

엄마는 집안일에 바빠 종일 왔다갔다 손 한 번 잡아주기 어려운 처지이니 아이들은 할머니 품에 안겨 마냥 어리광부리며 할머니와 흠뻑 정이 들게 된다. “꼬부랑 고갯길 훠이훠이 넘으실 땐 땀수건/할머니는 그렇게 손수건 요술쟁이셨네”라는 시 구절에서 보듯이, 분명 어머니와는 다른 ‘요술쟁이’사랑이 할머니에게 숨겨져 있는 것이다. 그 시절 아이들은 그렇게 할머니 곁에서 정서적으로 푸근해지고 푸르게푸르게 자라났다.

그런데, 오늘날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손자손녀를 거의 볼 수조차 없어 병이 날 정도로 슬퍼하는 모습을 본다. 며느리가 보여줘야 겨우 만날 수 있는 처지여서 그 그리움에 눈물 흘리며 세상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살맛조차 없다고 하소연하는 할머니들이 주변에 허다하다.

스스로의 건강 챙기며 즐겁게 여행도 하고 나머지 인생을 여유롭게 지내라 말해 보건만, 이 세상 손지손녀를 보는 것보다 더 기쁘고 행복한 일은 없다고 메아리친다. 이를 어찌 하리오?
 

 

 

숙명여자대학교 국어국문과 명예교수  k9350m@hanmail.net

<저작권자 © 여성소비자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숙명여자대학교 국어국문과 명예교수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Back to Top